중국 여자 장대높이뛰기의 리링(李玲, Li Ling) .
[일요신문] 육상의 전설들이 돌아왔다! 지난 8일부터 시작된 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의 육상 종목에서 세계적인 스포츠 스타들의 화려한 플레이가 펼쳐지고 있다
암과 싸우면서도 유니버시아드 출전을 포기하지 않았던 벨기에 육상 선수 토마스 반데르 플레센은 이번에도 육상 10종 경기를 택했다. 8일부터 시작된 육상 10종 경기의 남자 장대높이뛰기 예선에서는 A조 1위를 기록했고, 그 외 멀리뛰기, 높이뛰기 등에서도 2, 3위를 차지하며 준결승을 향하고 있다.
호주의 섹시 허들 스타 미셸 제네커 역시 여자 100m 허들 결승으로 진입했다. 귀화한 아제르바이잔의 국기를 달고 출전하는 에티오피아 출신의 육상 선수 헤일 이브라히모브는 10일 남자 5000m 예선전을 치른다.
특히 여자 육상에서는 세단뛰기 챔피언인 러시아 예까쩨리나 코녜바의 화려한 귀환과 아시아 기록을 두 번이나 경신한 중국의 장대높이뛰기 선수 리링의 활약도 돋보인다. 우먼파워가 돋보이는 여자 육상 경기의 두 헤로인을 만난다.
◇여자 세단뛰기의 전설, 예까쩨리나 코녜바(Ekaterina Koneva)
여자 세단뛰기 유럽 챔피언인 예까쩨리나 코녜바가 2015 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의 출전 주자로 돌아왔다. 1988년생인 그녀는 이번 광주U대회가 벌써 3번째 유니버시아드 출전이다.
지난 2011 센젠 유니버시아드와 2013 카잔 유니버시아드 대회에 출전한 코녜바는 두 번 모두 여자 세단뛰기 부문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자신의 이름을 알린 러시아 육상의 간판스타다.
하지만 코녜바가 처음부터 3단 뛰기 종목으로 육상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단거리 주자와 멀리뛰기 선수로 육상을 시작했던 그녀는 안타깝게도 2007년에 실시된 도핑 테스트에서 테스토스테론 양성반응을 보여 대회출전이 2년 동안 정지되고 만다.
이후 2년 동안의 쓰라린 공백기를 가진 그녀는 2009년 다시 100m 달리기와 200m 달리기 주자로 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재기의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다. 심지어 육상을 그만 둬야 할 지 고민의 기로에 서야했던 그녀는 2010년에 다시금 세단뛰기 주자로 종목을 변경했고 마침내 이 분야에서 인정을 받으며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세단뛰기를 통해 육상선수로서 제 2의 삶을 얻은 코녜바는 러시아 육상 선수권대회에서 3위를 기록한 뒤, 2011 센젠 유니버시아드에 출전해 금메달을 따냈다. 이후 그녀는 각종 세계 대회에서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2013 세계 육상선수권대회에서는 은메달을 획득했으며, 2013 카잔 유니버시아드에서는 금메달을 차지하고 개인 최고기록을 세웠다. 또 2014 유럽 육상 세계선수권 대회의 은메달, 2014 세계 실내육상세계선수권대회의 금메달을 획득하며 세단뛰기 세계 챔피언으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스물일곱 세계 챔피언인 코녜바의 활약은 올해도 계속됐다. 그녀는 2015 유럽 실내육상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금메달을 차지하며 세단뛰기 유럽 랭킹 1위의 자리를 지켰다.
세단뛰기를 자신의 종목으로 선택한 이후,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또 도전해서 원하는 결과를 성취해냈던 그녀는 현재 세단뛰기 세계 랭킹 2위를 기록하고 있다. 현재 육상 세단뛰기에서 예선전을 조1위로 가뿐하게 통과하고 결승을 앞둔 그녀가 이번 광주 유니버시아드에서도 세계 최고의 자리를 지키며 유니버시아드 3연패를 달성할 수 있을지 결과가 주목된다.
◇미녀새, 하늘을 날다 - 중국 여자 장대높이뛰기의 리링(李玲, Li Ling)
1989년생, 12살의 나이에 이미 180cm의 키를 가졌던 여자 아이, 이후 여자 장대높이뛰기 부문의 아시아 기록을 두 번씩이나 경신한 중국의 신예, 그녀의 이름은 리링이다.
리링의 부모님은 모두 운동선수 출신이었다. 아버지는 농구선수, 어머니는 배구선수였다. 태어날 때부터 운동선수의 유전자를 가졌지만, 리링은 공 운동에 아무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리링은 당시의 심정을 한 인터뷰에서 밝힌 적이 있다. “나는 농구나 배구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내가 좋아했던 것은 높이 뛴 다음 고공에 떠 있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장대높이뛰기는 나랑 딱 맞았다.”
선택은 빨랐지만 리링이 장대높이뛰기 선수로서 인정을 받은 것은 한참 이 더 지나서였다.
허난성(河南省) 출신의 리링은 어렸을 때 여기저기 옮겨다니며 살아야 했다. 12살 때 이미 키가 180cm 가까이 자랐고, 당시 학교 선생님이 리링의 큰 키를 보고 북경체육학교의 한 코치에게 소개했다. 원래는 높이뛰기를 하려 했으나 코치의 추천으로 장대높이뛰기 종목을 선택했고, 2001년 아마추어 육상훈련을 시작했다.
하지만 리링이 장대를 이용해서 완벽하게 높이뛰기를 하기까지는 장장 4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어렸을 때 키가 너무나 빨리 크는 바람에 리링은 몸이 약한 아이였다. 약한 기초 체력은 늘 리링의 약점이 되었고, 빨리 뛰다가 장대를 잡고 순간 뛰어올라야 하는 장대높이뛰기 기술이 리링에게는 어렵고 힘들기만 했다. 결국 리링은 장대높이뛰기의 기술 뿐 아니라 약한 체력을 보강하기 위한 기초훈련을 받아야 했고 동기들보다 한참을 뒤쳐질 수 밖에 없었다.
여러 해 동안의 기다림과 준비 과정이 필요했고, 결국 2005년 그녀의 16번째 생일 이전에 리링은 처음으로 장대와 하나가 되어 하늘을 날아오르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다. 하지만 첫 번째 경기의 결과는 그녀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내 첫 경기는 상하이의 실내경기장에서였다, 경기 이후 나는 울었다, 왜냐하면 나는 3.60m 밖에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의 상대는 3.80m의 높이를 뛰어넘었다, 그들이 결승에서 진짜 경기를 시작했을 때, 나는 이미 탈락된 상태였다. 그때는 정말 속상했다.”
리링의 두 번째 출전 경기는 베이징에서였다. 이번에는 기록이 나쁘지 않았다. 그녀는 당당하게 3.9m를 넘겼다, 이후에도 장대를 든 그녀의 행보는 계속됐다.
2006년 전국 청소년 육상선수권대회에서 리링은 개인 최고기록인 4.15m로 전국 1위를 했다, 그리고 1년 후, 성인이 된 리링은 쑤저우(苏州)의 전국육상선수권대회에서 4.30m를 뛰어넘으며 자신의 기록을 경신했다.
또 2008년 2월에 열린 전국실내선수권대회에서는 4.45m로 또 다시 금메달을 따내며 개인 최고기록을 경신했다. 1년 동안 자그마치 45cm나 자신의 기록을 뛰어넘으며 하늘로 날아오른 것이다.
이러한 쾌거는 2008 베이징올림픽의 출전권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처음으로 올림픽이라는 세계대회에 출전했던 리링은 채 긴장을 풀지 못했고, 4.15m의 기록으로 첫 출전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게다가 총 2번의 올림픽과 3번의 선수권대회를 치렀지만, 제일 좋은 성적은 늘 결승까지였다.
하지만 2013년 리링은 모스크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4.45m의 기록으로 11위를 차지했다. 높은 등수는 아니었지만, 개인최고기록을 달성하며 그녀는 충분한 자신감을 얻었다, 이 때의 자신감은 2013년 9월 썬양(沈阳)에서 열린 제12회 전국육상대회로 이어져 그녀는 이 대회에서 장대로 4.65m를 뛰어넘으며 아시아 기록을 경신했다.
이 기세를 몰아 리링은 2014년 모로코 인터콘티넨털컵 경기에서 4.55m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따냈고, 그것이 당시 아시아태평양지역 대표팀의 유일한 승리였다, 또 지난 해 한국에서 개최된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도 그녀는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국제대회의 경험이 많아질수록 더 이상의 두려움도 없었고, 스스로 긴장감을 콘트롤하는 힘도 생겼다.
이제 리링은 2015 광주하계유니버시아의 장대높이뛰기 금메달에 도전장을 던졌고, 4.45m의 기록으로 1위를 차지했다. 시작은 더디었지만 그 끝은 여전히 창대한 리링, 그녀의 이름은 챔피언이다.
정성환 기자 ilyo66@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