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상황은 사실 그가 총리로 지명되는 순간부터 예상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미 정치개혁을 위한 고강도 사정을 주문한 데다, 이 전 총리가 했던 대로 공직기강 확립 등 4대 구조개혁에 올인할 경우 사정은 필연적으로 따라올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더구나 청와대는 그를 총리로 지명하게 된 배경과 관련, “부패척결 적임자”라고 밝히기도 했다.
다만, 그의 발언 후 검찰 일각에선 “사정 발언을 하기엔 다소 이른 감이 없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최소한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종식선언 후 사정의 신호탄을 쏘아 올릴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장기화되고 있는 메르스 사태나 국회법 개정안 파동에서 비롯된 여권 분열 등이 사정 정국을 좀 더 빨리 불러온 것으로 보인다.
황교안 총리가 지난 3일 기자 간담회에서 “부패 척결은 성역 없이 이뤄질 것”이라며 본격적인 사정을 예고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황교안 총리가 사정을 공식화하지 않았더라도 검찰은 이미 하반기에 본격적인 사정 수사를 진행할 계획이었다. 상반기에 진행했던 자원외교나 포스코 수사에서 큰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이를 만회할 다른 사건이 필요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자원외교의 경우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 자살로 수사의 동력을 거의 상실했고, 포스코는 정준양 전 회장과 정동화 전 부회장까지 가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포스코를 비롯해 기존에 해오던 사건들이 마무리되면 그동안 내사했던 새로운 사건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릴 계획”이라며 “오는 10월까지 이 사건들 수사에 매진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특히 박성재 서울중앙지검장이 김수남 대검찰청 차장과 차기 검찰총장 자리를 놓고 경쟁하고 있는 상황이야말로 사정 수사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현재로선 김 차장이 유력한 것으로 거론되고 있지만, 최경환 경제부총리 라인으로 알려진 박 지검장이 하반기 사정 수사에서 성과를 낼 경우 상황이 역전될 수 있다는 관측이 있다.
다른 검찰 고위 관계자는 “사실 상반기 사정 수사는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자살하는 등 실패한 기획 사정이라는 비판을 받지 않았느냐”고 반문하며 “따라서 박 지검장과 서울중앙지검 간부들의 경우 하반기 사정 수사에서 반드시 성과를 내려고 할 것이고, 실제로 그렇게 될 경우 총장 인선 관련 어떤 상황 변화가 생길지 장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검사장 출신의 한 중견 변호사도 “일선 간부들의 경우 박 지검장이 김 차장과 비슷한 조건에서 경쟁할 수 있는 구도를 조성하려고 할 것”이라며 “그러기 위해선 당장 성과가 나와야 하고, 성과를 내기에 가장 좋은 게 바로 사정”이라고 설명했다. 이 변호사는 특히 “만약 10월쯤 좋은 결과물이 나온다고 하면 현 정부 입장에서는 김 차장보다는 오히려 박 지검장이 더 눈에 들어올 것”이라고 말했다.
#출발은 기업, 목적지는 정치권
박성재 서울중앙지검장, 김수남 대검 차장.
일선 수사팀 관계자도 “내년에 있을 총선까지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정국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사정을 통해 야당의 손발을 묶으려고 할 가능성이 크다”며 “그렇다고 여당 인사들이 수사 대상이 아니라고 낙관하기도 어려운 게 이번에 유승민 사태에서 봤듯이 청와대의 뜻을 거스를 경우 새누리당이라도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황 총리도 지난 3일 기자간담회에서 “국민에게 불편과 고통을 준 고질적 비리를 찾아내 개혁하고, 부패 척결은 예외나 성역 없이 이뤄질 것”이라며 “적발과 처벌에 그치지 않고 제도 개선을 강구해 부정부패가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구조적 개혁 노력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치권 사정이 곧바로 현역 의원들에 대한 직접 수사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른 일선 수사팀 관계자는 “하반기에 있을 사정은 특정 정치인을 타깃으로 한 수사로 보면 안 된다”며 “기업을 뒤지다가 정치권과 연루된 뭔가가 나오는 그런 그림을 그리는 게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 실세들을 줄줄이 구속시킨 ‘파이시티 사건’의 경우에도 서울 강남구 양재동 옛 화물터미널 부지에 복합유통센터를 짓는 개발사업의 인허가 과정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박영준 전 차관 등이 이 사건에 연루된 사실이 드러난 바 있다. 수사 대상으로 거론되는 기업들이 많은 건 아니다. 금융권부터 일반 기업체까지 한두 곳이 수사 대상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만의 하나 정치인으로 수사가 확대되지 않더라도 검찰의 이 같은 흐름을 정치권에서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압박카드가 될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서초동의 한 인사는 “박근혜 정부가 사정의 칼날을 다시 들고 나선 건 결국 정국 주도권을 계속 가져가겠다는 것 아니겠느냐”며 “실제 공개수사까지 가지 않고 내사 단계에서 끝난다 하더라도 여든 야든 이런 상황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김현웅 장관 첫 업무도 사정 지시될 듯
지난 9일 취임한 김현웅 신임 법무부 장관의 첫 임무도 사정 수사 지휘가 될 것으로 보인다. 황 총리도 법무장관 재직시 이완구 전 총리와 함께 부패와의 전면전을 선언한 후 검찰 사정 수사를 직접 지휘한 바 있다. 이와 관련, 김 장관은 취임사에서 부정부패 척결과 투명한 사회의 중요성을 강조, “공공분야의 적폐와 민관유착 비리, 비정상적 관행을 바로잡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얼마 전까지 서울고검장으로서 김진태 검찰총장의 지휘를 받던 입장이었던 만큼 그가 사정 수사와 관련해 검찰을 지휘한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수도권 일선 검찰청 관계자는 “김 장관이 검찰 수사를 지휘하기는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며 “결국 황교안 총리나 박성재 지검장, 김수남 대검 차장,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등의 물밑 접촉을 통해 사정이 진행될 것이고, 김 장관이 수사지휘를 하더라도 이들의 지원을 받아 이뤄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김근호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