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위원회’가 출범한 지 한 달여가 됐지만 계파 간 통합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고 갈등과 반목만 거듭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한 김상곤 혁신위원장(왼쪽)과 문재인 대표.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갈길 바쁜 문재인 대표와 김상곤 혁신위원장이 갈등설에 휩싸였다. 예상한 대로다. 제1야당의 수권정당화를 위한 ‘혁신위원회’가 출범한 지 한 달여가 됐다. 하지만 통합은 없다. 혁신도 없다. 내용은 더더욱 없다. 갈등과 반목만 지뢰밭처럼 깔렸다. 당의 원심력은 확산일로다. 새정치연합 관계자는 이에 대해 “나만 옳다는 선민 의식이 원인”이라며 “혁신은커녕 당이 쑥대밭이 될 처지”라고 힐난했다.
이 같은 인식은 계파를 가리지 않고 터져 나왔다. 친노계 관계자는 “대표 권한을 흔들면 무슨 일을 하자는 것이냐”라고 불만을 드러냈다. 이에 비노계 관계자는 “(문재인) 총재를 만들자는 것인가”라고 맞받아쳤다. 그간 이슈를 놓고 ‘친노계 대 비노계’, ‘진보파 대 중도파’, ‘호남 대 비호남’ 등의 구도로 흐른 것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그만큼 제1야당이 미증유의 위기에 봉착했다는 얘기다.
이들의 갈등 정황이 포착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혁신위 1차 혁신안 발표날인 지난달 23일. 외부는 조용했지만, 내부는 들끓었다. 당시 김상곤 혁신위는 ‘선출직 공직자 평가위원회’를 골자로 하는 혁신안을 제시했다. 상징성을 의식한 탓인지, 광주시의회에서 혁신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반향은 없었다. 기존 당내 기구인 ‘원혜영 정치혁신실천위’의 내용을 짜깁기한 데다, 지역위원장 공직선거 120일 전 사퇴 조항은 2011년 당 개혁특위의 180일 사퇴보다 후퇴했다. 당 소속 선출직의 부정부패 등 재·보궐선거 발생 시 무공천도 재탕·삼탕 정책에 불과했다. 김상곤 혁신위는 비판 여론을 예상한 듯 ‘중앙위 의결’을 고리로 문 대표를 압박했다.
친노계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다”고 비판하면서도 “(혁신위원들이) 정치경험이 많지 않다 보니까 새로운 혁신안을 내놓는 데 한계를 드러내는 것 같다”고 평가 절하했다. 친노계 내부에 파다한 ‘김상곤 아마추어리즘’ 논란에 기름을 부은 셈이다. 그간 친노계 내부에선 정치경험이 전무한 김 위원장이 당 내부에서 혁신안을 한들, 얼마나 관철할 수 있겠느냐는 부정적인 관측이 적지 않았다. ‘김상곤 불쏘시개론’도 이 지점과 맥을 같이한다.
비노계는 정반대 해석을 내놨다. 비노계 관계자는 “문 대표를 위한 혁신안이 아니냐”라며 “무공천 방침도, 선출직공직자 평가위에서 단행할 선출직 공직자 교체지수도 당 주류에 유리하다”고 잘라 말했다. 오는 10월 재보선이 호남 지역에 집중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무공천이 현실화될 경우 ‘문재인 평가’ 기회를 원천봉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선출직 공직자 교체지수는 사실상 하방론의 진원지 ‘호남그룹’을 겨냥한 게 아니냐는 불만도 나왔다.
김상곤 혁신위 내부도 들끓기는 마찬가지였다. 1차 혁신안이 정치권과 언론 등에서 폄훼 당하자 존재 자체에 대한 위기감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관계자는 “기다려봐라. 준비 중이다. (깜짝 놀랄만한 혁신안이) 곧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첫 번째 혁신안으로부터 일주일여 뒤인 지난 8일 2차 혁신안이 베일을 벗었다. 애초 예정된 시간보다 하루 앞당겨 발표했다. 예측 불가능한 시점을 선택해 ‘허’를 찌른 것이다.
핵심은 ‘사무총장·최고위원제’ 폐지 등이다. 내년 4월 총선 직후 최고위원제를 없애고 지역·세대·계층 등을 아우르는 새 지도부 구성을 제안한 것이다. 앞선 혁신안에 대한 비판을 의식한 듯, 파격에 초점을 맞춘 셈이다. 혁신위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계파 갈등의 싹을 자르기 위해서 ‘집단 지도체제’를 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중앙위 의결을 재차 요구했다.
당은 혼돈 속으로 빠져들었다. 친노계는 “가까스로 앉힌 사무총장을 그냥 나가라고 하는 것이냐”라고 반발했다. 반면 비노계는 “최고위원회를 폐지하면, 당 대표 권한만 강화된다”라고 반격했다. 당 내부는 벌집을 쑤신 듯 온종일 뒤숭숭했다. 이들이 첨예하게 대립한 혁신안은 ▲사무총장 폐지 ▲최고위원제 폐지 ▲선출직 평가위원회의 임명권 논란 등이다. 친노계와 비노계는 모든 사항마다 정반대 해석을 내놨다.
사무총장 폐지를 놓고는 “문 대표 팔을 잘라버린 격이다(친노계) vs 조직본부장에 측근을 앉히면 그만 아니냐(비노계)”라고 충돌했다. 최고위원제 폐지의 경우 “첫 번째 혁신안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 못한 혁신위가 너무 나간 것이다(친노계) vs ‘친노 당을 만들자는 것이냐(비노계)” 등의 반응이 쏟아졌다. 문 대표도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 “미리 얘기 좀 해 주지”라며 불만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김 위원장이 기자들에게 “지금 당헌·당규에는 ‘위원회 임명권’은 대표에게 있다”고 한 발언이 친노계와 비노계 갈등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일부 기자들이 ‘위원장에 대표 측근을 앉히면, 친노계 권한만 강화되는 게 아니냐’라고 묻자 김 위원장과 혁신위원들은 “좀 더 세부적으로 다뤄서 논의하자는 것”이라고 원론적인 발언만 되풀이했다.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김상곤 위원회가 ‘디테일’에서 세밀하지 못하면서 논란이 가중됐다”고 꼬집었다.
논란이 일자 김 위원장은 초·재선과 중진급(3선 이상) 의원들에게 ‘SOS’를 쳤다. 두 번째 혁신안 발표 다음 날 그는 당 의원들과 잇따라 회동을 했다. 반응은 기대 이하였다. 김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기득권을 모두 해소하고 판을 새로 짜는 정도로 개혁해야 한다”라는 취지의 발언으로 설득했지만, 중진급 회동에는 10명 정도만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은 정면 돌파를 시도했다. 2차 혁신안을 발표한 지 하루 만에 ‘당원소환제’를 핵심으로 하는 3차 혁신안을 발표한 것이다.
혁신안의 핵심은 ▲당 대표 포함 선출직 당직자에 대한 당원소환제 ▲ 당무감사원 신설을 통한 당직자 상시적 직무감찰 ▲ 지역 대의원에 대한 상향식 선출제도 도입 등이다. 핵심은 당원의 권한 강화다. 혁신위 관계자는 당시 상황을 “밀리면 죽는다는 ‘사즉생’의 각오가 아니었겠느냐”며 “김 위원장이 사실상 배수진을 친 것”이라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선출직 평가위원회의 임명권 논란과 관련해 “최고위의 의결을 거친 뒤 당 대표가 임명한다”고 한 발 후퇴하면서 친노의 권한 강화를 경계했다.
비노계의 공세는 멈추지 않았다. 주승용 최고위원은 “혁신위에다가 헌법까지 바꿀 수 있는 권한을 준 것은 아니다”라며 “문 대표도 그런 권한은 갖고 있지도 않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친노계와 비노계의 극한 반발 속에 진행된 13일 당무위원회가 열렸다. 정원 66명 중 35명이 참여한 가운데 찬성 29명, 반대 2명, 기권 4명으로 사무총장 폐지 등 일부 혁신안이 통과됐다. ‘직’까지 걸었던 김 위원장이 한고비를 넘긴 것이다.
박준영 전 전남지사가 16일 국회 정론관에서 탈당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하지만 최고위원제 폐지와 선출직공직자평가위원회 인선 등은 이번 당무위 안건에서 배제, 논란의 불씨는 여전하다. ‘사무총장 폐지’ 안건도 최대 800명가량인 중앙위에서 격론이 불가피해 최종 의결까지는 난항이 예상된다. 또한 당무위 날 예정에 없던 ‘정청래 최고위원의 재심사 요구’가 가결되면서 제1야당은 또다시 분열상을 노출했다. 호남그룹인 박준영 전 전남지사는 16일 전격 탈당하며 신당 창당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새정치연합 당직자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2기 체제를 출범시켰는데, 우리는…”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문재인 대표와 김상곤 혁신위원장의 갈등이 낳은 제1야당의 민낯인 셈이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