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박근혜’를 노리는 김태호 최고위원이 3일 국회 정론관에서 20대 총선 불출마선언을 했다. 작은 사진은 황교안 총리(왼쪽)와 최경환 경제부총리. 일요신문DB
김태호 최고위원은 평소 튀는 발언과 돌출행동으로 익히 유명하다. 8월 3일 김 최고위원이 아무런 사전 예고 없이 기자회견을 자청하자 취재진들 사이에선 “또?”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이 자리에서 김 최고위원은 내년 4월 총선 불출마를 전격 선언했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에서 하루 종일 회자된 메가톤급 발언이었다. 김 최고위원은 “내년 20대 총선에 출마하지 않기로 했다”면서 “최연소 군수와 도지사를 거치면서 몸에 밴 스타 의식과 조급증은 지나치게 많은 사람을 만나게 했고, 반대로 몸과 마음은 시들어 갔다”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지난해 7월 전당대회에서 김무성 대표와 서청원 최고위원 뒤를 이어 3위로 당선된 김 최고위원의 갑작스런 불출마를 놓고 정치권에선 여러 견해가 난무했다. 지역구 사정이 어려워질 가능성이 제기되자 미리 선수를 치는 것 아니냐는 곱지 않은 시선에서부터 입각을 노린 행보라는 말까지 나왔다. 그러나 정치권에선 김 최고위원이 차기 대권을 염두에 두고 있을 것이란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김 최고위원 역시 기자회견에서 “미래에 어울리는 실력과 깊이를 갖춘 김태호로 다시 설 수 있도록 열심히 공부해 보겠다”고 했다. 대선 출마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
당 안팎에선 김 최고위원을 바라보며 오세훈 전 서울시장을 떠올리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김 최고위원이 오 전 시장을 ‘벤치마킹’하고 있다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16대 국회의원 시절 유망한 정치신인이던 오 전 시장은 이른바 ‘오세훈법’으로 불리는 정치자금법을 통과시킨 뒤 17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바 있다. ‘클린 이미지’로 큰 인기를 끌었던 오 전 시장은 2006년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에 당선되며 화려하게 복귀했다. 권대우 정치평론가는 “오 전 시장이 새누리당 텃밭인 강남 지역구까지 포기하면서 불출마를 선언할 때 서울시장 출마 수순이라는 말이 파다했다. 김 최고위원으로선 오 전 시장 케이스를 고려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최고위원의 총선 불출마 선언 이후 친박 내부에선 미묘한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김 최고위원 스탠스가 차기 대권과 맞물려 받아들여지고 있는 이유에서다. 사실 김 최고위원은 지난 정권에서 총리 후보로까지 발탁됐을 만큼 친이계로 분류됐다. 그러나 현 정권 들어 친박과의 거리를 좁혔고, 유승민 전 원내대표 거취 논란 당시엔 가장 선봉에서 박 대통령을 ‘엄호’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김 최고위원이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자 사실상 무주공산이나 다름없는 친박 내 차기 전쟁에 불을 지핀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친박계 재선 의원은 “김 최고위원으로선 김무성 대표가 독주하고 있는 비박계에서 설 자리가 별로 없다. 반면, 친박계에선 아직 마땅한 ‘선수’가 없는 게 사실이다. 김 최고위원이 선수를 치고 나간 것”이라고 전했다.
정치권 일각에선 김 최고위원이 여권 핵심부와의 교감 하에 불출마 카드를 꺼내들었다는 소문도 나오고 있다. 청와대가 김 최고위원에게 모종의 역할을 부여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 최고위원은 “사전 교감은 전혀 없었다. 다른 사람이랑 상의할 수 없는 개인의 결단이다. (입각 제의 등은) 전혀 없었다. 우리 부모님 이름을 걸고 (사실이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친박 중진 서청원 최고위원도 “사전에 전혀 한마디 전화나 상의가 없었기 때문에 왜 불출마를 선언하는 것인지 당 간부들도 아는 분들이 없다”고 했다. 청와대 정무 관계자는 “당 지도부는 물론 우리 쪽과도 논의가 없었던 것으로 안다. 김 최고위원의 독자적 판단이라는 결론”이라고 귀띔했다.
김 최고위원의 이러한 행보에 여권에서는 박 대통령 후계자가 누가 될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고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김무성 대표와 후보 자리를 놓고 맞붙을 친박 내 차기 주자에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 황교안 총리도 그 중 한 명이다. 몇몇 친박 의원들은 “황교안 총리가 차기 대권에 있어서 다크호스가 될 것”이라고 점치기도 했다. 검찰 재직 시 대표적인 ‘공안통’이었던 황 총리는 법무부 장관 재직 시 박 대통령의 남다른 신뢰를 얻은 것으로 전해진다. 김기춘 전 실장 최측근으로 불리는 황 총리는 ‘신 7인회’ ‘실세 중 실세’ 등으로 불리며 현 정부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물론 정치권에선 황 총리가 정치 경험이 전혀 없을 뿐 아니라 공안통 이미지가 너무 강해 대선주자로 성장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뒤따르긴 한다. 이에 대해 앞서의 친박 재선 의원은 “정치 경험 부족은 조직력으로 메꾸면 된다. 현직 대통령이 밀고 친박이 끌어준다면 별다른 문제가 되진 않을 것이다. 과거에 대법관 출신이던 이회창도 총리를 하다 바로 유력 대선주자로 발돋움하지 않았느냐. 공안 전문가라는 점도 오히려 보수 진영에선 플러스가 될 수 있다. 본인의 권력 의지가 가장 큰 변수”라고 반박했다. 더군다나 황 총리가 밀어붙이고 있는 부패척결이 성공할 경우 대중적 지지도는 단숨에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 황 총리와 가깝게 지냈다는 한 법조인은 “총리가 된 후 조금 변한 것 같더라. 딱딱한 이미지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관료가 아닌 정치인으로서 한 발짝 발전한 듯한 느낌”이라고 귀띔했다.
이처럼 김 최고위원과 황 총리가 친박 잠룡군으로 분류되고 있는 것에 대해 다소 언짢아할 법도 할 인사가 있다. 바로 최경환 부총리다. 박 대통령 복심으로 통하는 최 부총리는 진작부터 거의 유일한 ‘포스트 박근혜’로 꼽혀왔다. 김 최고위원이나 황 총리가 ‘신박’이라면 최 부총리는 ‘원조 친박’이다. 박 대통령에 대한 로열티는 두 말 할 것도 없다. 친박 내에선 최 부총리가 박 대통령의 ‘적자’인 셈이다. 최 부총리는 경제부총리로 옮긴 뒤에는 이른바 ‘초이노믹스’를 주창하며 경제 사령탑 역할을 했다. 그러나 정치권에선 최 부총리의 경제 성적표가 신통치 못했고, 대중성이 부족하다는 점 등을 들어 대선주자로선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친박계 전직 의원은 “최 부총리는 내년 총선 출마를 위해 조만간 직을 던질 것이 확실하다. 박 대통령이 최 부총리를 놓아주려 하지 않는 것 같은데 늦어도 연말 전까진 국회로 돌아올 것이다. 급격히 세가 위축된 친박계에서도 구심점 역할을 할 최 부총리 컴백을 원하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최 부총리는 김 최고위원이나 황 총리와 ‘스펙’부터가 다르다. 그동안 관료 이미지가 강하긴 했지만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가 시작되면) 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자신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