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에서 소외되었던 지역여성의 삶’이라는 부제를 붙인 이 책은 해방되던 1945년부터 현재인 2015년까지 경남지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알려지지 않은 경남여성 70년의 삶과 도전의 역사를 10년 단위로 밝힌 최초의 책이다. 경상대학교 사회학과 이혜숙 교수와 경남대학교 사회학과 강인순 교수가 공동집필했다.
요즈음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는 영화 <암살>에는 김원봉(1898~1958) 선생이 등장한다. 김원봉 선생의 부인은 박차정(1910~1944) 의사다.
박차정은 국내에서 항일운동을 주도하다가 일제에 의해 옥고를 치른다. 그 후 중국으로 망명하여 1931년 김원봉과 결혼한다. 박차정은 남편과 함께 조선혁명간부학교를 설립해 여자교관으로 활동하고 민족혁명당 부인회를 결성한다.
이후 조선의용대 복무단장으로 중국 강서성 곤륜산에서 일본군과 전투 중에 총상을 입고 그 후유증으로 해방을 한 해 앞둔 1944년에 만 34살의 젊은 나이로 순국한다. 해방 후 김원봉 선생은 부인의 유골과 피 묻은 적삼을 자신의 고향인 밀양 부북면 감천리 뒷산에 묻고 통곡했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박차정을 비롯해 모두 210여 명의 경남여성들이 등장한다. 일제강점기 때의 혁명가부터 우리 주위의 평범한 주부까지 각계각층 경남여성의 다양한 삶을 다루고 있다.
책에서는 박차정에 이어 사회주의 여성운동가 권은해, 항일여성사회운동가 한신광, 최후의 빨치산 정순덕 등 우리 현대사에 이름을 남긴 경남의 여성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들 굵직한 인물뿐만 아니라 여자 운전사 김미순, 여자 면도사 문향숙, 여자 은행원 김영란 등 1970년대의 여성 직장인과 아후강 뜨는 구정자, 양재 하는 박수자, 편물 짜는 김행혜 등 부업하는 평범한 여성들도 소개하고 있다.
이어서 가톨릭여성회관 초대관장 하마리아, 복싱계 최초 여성이사 조창순, 진주 검무 인간문화재 김수악, 고성 농요 인간문화재 유영례, 한국 수미다 노동조합을 결성한 황현자와 정현숙, 지역여성 노동운동의 대들보 이경숙, 노동자 출신 경남 최초 지역구 여성의원 이종엽, NGO활동가에서 의정활동가로 변신한 임경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경남여성들의 삶을 다루어 흥미를 일으킨다.
또한 이 책의 놓칠 수 없는 장점은 바로 170여 장에 이르는 풍부한 사진자료들이다.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전후, 한국전쟁, 4ㆍ19혁명, 산업화와 민주화, 부마항쟁 등에 이르기까지의 사진들이 들어 있다.
이들 사진만 봐도 경남여성 70년의 살아온 과정과 그 시대의 모습을 읽어내기에 충분하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없는 희귀한 사진들이 대거 수록되어 있어 더욱 가치가 있다.
무엇보다 본문에 활용한 다양한 사진도 눈길을 끌지만 권두에 별도로 구성된 사진 섹션은 매우 인상적이다.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수업 모습, 1936년 마산여자고등학교의 기숙사 식사시간 모습, 한국전쟁 당시 경남여자고등학교의 노천교실 풍경, 결핵예방주사를 맞고 있는 함안 가야초등학교 학생들 모습, 1960년대 줄지어 등교하는 김해 금동초등학교 학생들의 이색적인 모습, 4ㆍ19혁명에 참여한 진주여자고등학교 학생들 모습, 김해 이작초등학교의 운동회 모습, 1969년 미스경남 후보들 모습, 1970년대 거창여자중학교의 반공안보연합대회 장면, 밀양 무안중학교 학생들의 우리말 순화운동 장면, 어머니날 학예회 모습, 추억의 점심 도시락 장면 등을 아련하게 들추어낸다.
<나는 대한민국 경남여성>은 서울과 남성 중심의 역사 서술에서 벗어나 그동안 잊혀 졌던 지역 여성들의 삶과 활동을 밝혀내고 있다. 특히 경남여성의 역사를 전체적인 한국사회 변화의 맥락 속에서 다루면서도 경남여성의 삶의 지역적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특별한 여성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평범하게 살았던 여성의 이야기를 폭넓게 다루고 있는 점도 이 책에서 주목할 부분이다. 각종 자료들을 활용하여 해방 이후 10년을 단위로 각 시기별로 주제나 특성을 살려 서술했다.
이 책 <나는 대한민국 경남여성>은 <조선 선비들의 답사일번지>에 이어 경상대학교출판부에서 기획한 ‘지앤유 로컬북스’ 시리즈의 두 번째 책이다.
경상대학교출판부는 ‘지식과 정신의 다양함, 한 톨의 볍씨에서 우주를 보다!’는 슬로건으로 우리 땅의 지역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의 지역까지 아우르는 ‘지앤유 로컬북스’ 시리즈를 기획하고 있다.
경상대학교출판부는 경남의 역사ㆍ인물ㆍ자연ㆍ환경ㆍ민속 등 전 분야에 대해 경남 지역을 잘 드러낼 수 있는 주제를 참신한 방식으로 접근한 출판기획안을 수시로 접수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출판부 홈페이지 공지사항을 참고하면 된다.
한편 경상대학교출판부에서는 <나는 대한민국 경남여성> 출간을 기념해 9월 10일 저녁 7시 경상대학교 대경학술관에서 북 콘서트를 개최한다.
저자인 이혜숙, 강인순 교수와 패널 3명이 참석해 경남여성의 어제와 오늘에 관한 재미있는 토크쇼를 진행할 예정이다.
북 콘서트에서는 여성단체의 공연과 일제강점기부터 오늘날까지 추억의 70년 사진전도 개최할 예정이다.
박영천 기자 ilyo3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