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대표(왼쪽) 사위 마약사건과 최경환 부총리 인사압력 의혹의 출처와 관련, 친박계와 비박계와 서로 상대 진영을 배후로 지목하며 전면전을 벌이고 있다. 사진은 지난 4월 국회 회동 당시 모습. 연합뉴스
그런데 최근 새누리당 상황은 다소 바뀌었다. 친박과 비박이 ‘막장’으로 가는듯한, 그동안 볼 수 없는 양상의 일전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친박계의 한 의원은 “친박과 비박 모두 대통령을 배출해낸 세력이다. 대선 성적표 1승 1패인 셈이다. 대선 전초전이라고 할 수 있는 총선을 앞두고 계파는 사활을 건 승부를 벌여야 한다. 지는 쪽은 곧 계파 소멸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 친박과 비박은 사생결단식의 전쟁을 벌일 것”이라고 점쳤다. 대선은 차치하고서라도 의원 개별적으로도 ‘배지’를 다시 달기 위해선 이번 계파 전쟁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정치권을 뜨겁게 달군 김무성 대표 사위 마약사건과 최경환 부총리의 인사압력 의혹은 무수한 뒷말을 낳고 있다. 도마에 오른 김 대표와 최 부총리가 각각 비박계와 친박계 좌장 역할을 맡고 있는 이유에서다. 더군다나 둘은 차기 대선 경선에서 계파 대표 주자로 출마해 맞붙을 가능성이 높은 ‘잠룡’이기도 하다. 이러다보니 계파 내에선 자신들의 수장을 향해 상대방이 고의적으로 정보를 흘리거나 확산시키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물론 여권 내에선 그럴 가능성에 대해 ‘소설 같은 얘기’라며 일축하는 기류가 우세하다. 우연의 일치라는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이 차갑다는 것만큼은 부인하기 어려워 보인다.
먼저 타격을 입은 쪽은 김 대표다. 사위가 마약사건에 연루됐고, 또 이 과정에서 봐주기 판결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김 대표는 ‘딸을 둔 아비’의 심정으로 적극 해명에 나서며 진화에 나섰지만 사위를 둘러싼 여러 소문들이 재생산되면서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는 형국이다. 여권 차기 주자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는 김 대표에게 치명타가 될 것이란 게 정가의 관측이다.
김 대표 측은 이번 사위 건을 놓고 친박계를 곱지 않은 눈으로 본다. 지난 2월에 선고가 난 사건이 뒤늦게 불거진 배경에 뭔가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김 대표 측으로 분류되는 한 의원은 “친박이 그랬을 것이라곤 믿고 싶지 않다. 그런데 해당 내용이 특정 언론사로 흘러들어가는 과정이 석연치 않다는 주장들도 제법 있다. 사정기관 고급정보에 접근이 용이한 권력 핵심부가 움직였을 것이란 추측이 당 내에 파다한 상태”라고 귀띔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비박계를 이끄는 김 대표가 사위 문제로 곤혹스러워할 무렵 이번엔 친박 좌장 최 부총리가 구설에 휩싸였다. 최 부총리가 의원 시절 데리고 있던 인턴 직원이 지난 2013년 중소기업진흥공단 신입사원 채용과정에서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다.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였던 최 부총리는 ‘실세 중 실세’였다. 감사원은 이러한 내용에 대해 검찰에 수사를 의뢰한 상태다. 최 부총리는 일반인들에게 김 대표만큼 대선주자로서 각인돼 있진 않지만 주류인 친박이 차기 후보로 밀 가능성이 가장 높은 정치인이다. 오는 12월 국회 컴백이 유력한 최 부총리가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여권 지형 역시 요동을 칠 수밖에 없다. 친박으로선 최 부총리가 흠집이 나는 게 달가울 리 없다는 얘기다.
정치권에선 김 대표 가족 문제 못지않게 취업 특혜 논란도 최 부총리에겐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점친다. 청년 실업 대책 마련의 필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했던 최 부총리가 정작 지인의 채용 문제에 외압을 행사한 것은 국민 정서상 받아들여지기 힘들 것이란 관측에서다. 그러자 이번엔 친박 진영에서 ‘기획설’이 퍼지고 있다. 김 대표 사위 마약사건 배후로 친박을 의심했던 비박계가 이번엔 최 부총리 건에 관여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정치권에선 이를 두고 ‘친박과 비박이 장군과 멍군을 주고받았다’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한 친박계 의원은 “국감에서 야당 의원이 제기하긴 했지만 정황상 여권이 ‘소스’일 가능성이 높다”면서 “그렇다면 친박은 아니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윤상현 정무특보
순서대로라면 비박계의 공격 차례였다. 김 대표 사위 마약사건→최경환 부총리 취업 특혜 의혹→윤상현 의원 ‘김무성 불가론’ 발언 직후 비박계의 총공격이 예상됐던 것이다. 실제로 김 대표계로 분류되는 몇몇 의원들은 ‘집단행동’까지 검토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비박계의 한 중진 의원은 “윤 의원 발언이 있던 날 저녁에 여러 건의 ‘번개’가 여의도 인근에서 마련됐다. 식사 자리에서 윤 의원을 향해 쌍욕을 하는 의원들도 있었다. 어떤 의원은 다음 날 윤 의원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성명서를 낸다고 해 말리기도 했다”면서 “어찌됐건 그냥 있을 수는 없다는 데 의견을 모았고, 공동 대응책을 만들기로 했다. 이 기회에 아예 힘을 합쳐 친박과 전면전을 벌이는 것도 배제하지 않았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비박계 ‘결단’은 이뤄지지 않았다. 여기엔 김 대표가 직접 만류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는 후문이다. 당 내홍이 확산되는 것을 막고자 김 대표가 측근들을 직접 설득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치권에선 김 대표가 친박의 공격 뒤에 숨겨진 노림수를 읽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사실 친박은 주류이긴 하지만 수적으로 비박계에 열세다. 지난해 전당대회, 올해 원내대표 선거 등에서 비박계가 모두 승리한 것은 이를 방증한다. ‘정공법’으론 승산이 낮다는 얘기다. 지금의 친박계 움직임을 놓고 김 대표 공격을 통한 ‘판 깨기’의 일환으로 보는 이유다.
권대우 정치평론가는 “김 대표가 흔들리면 친박은 바로 비대위 구성을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 김 대표 체제로 총선을 치르는 것보단 외부 인사가 이끄는 비대위 중심이 유리할 것으로 내다보기 때문”이라면서 “더군다나 최근 박 대통령 지지율이 50%대를 회복하면서 자신감을 얻은 친박으로선 지금이 김 대표와 싸울 ‘적기’라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앞서의 비박계 중진 의원은 “우리도 차근히 생각을 해 봤다. 그런데 맞대응하면 오히려 친박 측에 당할 수도 있겠다는 판단이 들더라. 그래서 분하지만 일단은 신중한 스탠스를 보이기로 했다”고 말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