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시가 도내 우수 인재 및 인구 유출을 막기 위해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글로벌아카데미’ 사업이 그 실효성과 재단 기금 고갈 등을 둘러싸고 논란에 휩싸여 있다. 사진은 군산시청 전경.
지역 인구 유출을 막고 우수한 지역 인재를 육성하겠다는 지자체의 교육 사업이 ‘못된 장학사업’이 된 모양새다. 덩달아 서울 종로학원도 지방 진출에 나섰다가 곤경에 처한 양상이다. 더욱이 최근 사법당국에서 내사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져 ‘불똥’이 어디로 튈지 장담할 수 없는 형국이다.
전북 군산에 설립된 전북외국어고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7시30분과 토요일 오후 1시30분이면 시내 고교생들이 몰려든다. 지역 고교에서 선발된 성적 우수 학생들이 ‘특별과외’를 받기 위해 매주 2회 이 학교 별관인 교과 교실을 찾는 것. 금요일은 3시간, 토요일은 4시간동안 국·영·수·논술과목을 진행하는데 7명이 종로학원 강사들이다. 강사들은 1시간 강의에 23만 원씩 강의료를 받는다. 공교육 현장인 외고에서 사설학원이 버젓이 운영되고 있는 셈이다.
글로벌아카데미 사업은 이른바 ‘SKY대’로 불리는 명문대학 진학을 부추기는 일종의 과외학습이다. 그것도 연간 250명 남짓한 성적 우수자만 뽑아 혜택을 주는 ‘못된 장학사업’이란 게 교육시민단체의 시각이다. 이들은 더 큰 문제로 연간 5억 원 안팎의 기금을 쏟아붓고서도 그 실효성이 의심스럽다는 점이다.
재단 측이 이 사업을 시작한 것은 인구유출을 막기 위해서는 교육사업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재단은 시민 설문조사 결과 ‘일자리 및 교육 문제로 인해 군산을 떠난다’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나오자 서울 종로학원과 손잡고 ‘지역으뜸인재육성사업’으로 글로벌아카데미를 시작했다. 학교에서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을 추천하면 위탁계약을 맺은 종로학원 강사들이 특별과외를 시키는 것이다.
군산시와 재단은 그간 매년 5억 원 안팎의 기금을 들여 전임강사를 채용하는 등 투자를 해 왔다. 교육인프라가 열악한 중소도시에서 지자체가 고안해 낸 고육지책이지만 사업 시행 초기부터 연간 250명 남짓한 성적 우수자만 뽑아 혜택을 주는 ‘편향적 장학사업’이란 비판을 받았다.
논란은 교육시민단체의 입을 통해 다시 불거졌다. 22개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군산교육발전진흥재단 정상화를 촉구하는 군산교육 및 시민사회단체’는 지난 9월 3일 “군산시는 군산교육발전진흥재단을 통해 사교육업체인 종로학원과 손을 잡고 판에 박힌 입시 사교육을 펼치고 있다”면서 “군산시민과 학생들을 위한 미래지향적인 교육을 펼치는 데 매진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대표적인 문제 사례로 기금 고갈을 꼽았다. 2005년 출범한 재단에서 2014년까지 10년 동안 조성한 기금은 군산시 출연금액 110억 7900만 원, 민간 출연금액 104억 9400만 원 등 모두 215억 7300만 원이다. 기금 중에서 147억 원이 집행되고 3분의 1에 해당하는 68억 원만 남았다. 초저금리인 1.5%를 계산해도 연 3억 원이 넘는 이자수익을 올릴 수 있었음에도 심각한 재정상태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중도 포기자 속출도 문제 삼았다. 문제의 중도 포기자는 2010~14년 사이 2배 이상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포기율로 따지면 22%, 27%, 38%, 43%, 47%까지 치솟았다. 교육시민단체는 “글로벌아카데미 사업의 중도 포기자가 2010년 51명(22%), 2011년 72명(27%), 2012년 101명(38%), 2013년 99명(43%), 2014년 106명(47%) 등으로 매년 증가했고, 학생 만족도도 떨어졌다”고 지적했다.
논란은 군산교육발전진흥재단 운영 전반의 부실 문제로까지 번지는 양상이다. 이들 단체들은 9월 14일 또다시 성명을 내고 시의회의 조속한 조사특위 구성을 촉구했다. 시민단체들은 이날 군산시를 향해 군산교육발전진흥재단 장학기금이 고갈 사태에 이르게 된 경위를 시민들 앞에 명명백백히 공개하고 이러한 사태를 만든 모두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을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군산시의회도 지난해 말 행정사무감사에서 “군산교육발전진흥재단이 교육의 공공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 흔적은 보이지 않았고, 성적 우수 학생을 대상으로 한 입시 준비 위주의 틀에 박힌 ‘학원식’ 교육사업을 실시하면서 공익법인이 지켜야 할 법령을 어겼다”는 보고서를 냈다.
이에 대해 군산시는 “재단의 기본재산(50억 원)은 손대지 않고 시·도비를 지원해 인재육성사업을 벌이고 있다”면서 “지역인재가 지역에서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기 위한 사업으로 주민들도 공감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교육 인프라가 열악한 지역에서 사교육에 들어갈 비용을 공교육을 통해 해소하려는 것이고 도비와 시비를 투입해 진행하는 사업”이라면서 “지자체에서 인구를 붙잡기 위해서는 교육사업을 펼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이해해 줬으면 한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감독청이 목적 외 사업으로 지적된 글로벌리더아카데미사업과 그동안 적법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기부금의 사용을 문제 삼을 경우 위법성 논란에 휩싸일 것으로 보인다. 교육발전재단은 군산시 행정사무조사에서 장학사업으로 보기 힘든 일선학교 교사 격려금 지급과 교직원간 친목회비 지원 등의 사실이 들통 난 바 있다. 심지어 남몰래 장학사업에 뛰어들어 5000만 원가량의 강사료와 보직수당 등을 챙긴 현직 교사까지 적발됐다. 당시 군산시는 인재 양성 사업에 대한 비판과 물의가 빚어지자 담당 과장과 계장만 교체했다.
문동신 시장이 교육발전재단 이사장이다. 수백억 원대의 장학기금이 이 재단으로 들어와 조성됐다. 엄청난 액수의 기금이 쌓이도록 공무원이 암암리에 압력을 행사하지나 않았는지, 아니면 기업들의 자발적(?)임을 내세운 ‘준조세’는 아니었는지, 실제 종로학원 본원에서 수업하는 강사들이 맞는지 등은 여전히 의문이다.
본지가 확인한 결과, 군산경찰서는 최근 이 문제와 관련해 수사에 돌입한 것으로 밝혀졌다. 군산시의회도 특위를 구성해 조사에 나설 것인지를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법당국과 군산시의회에 의해 제기된 의혹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이뤄질 것인지, 극소수 성적 우수자에 집중된 기금 운용 기조가 변화할 것인지 등에 대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정성환 기자 ilyo66@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