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족의 효용
만족이란 감정이 쾌감을 동반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칸트에 의하면, 만족이 효용이 될 수있는 이유는 세가지다. 우선, 외부자극이 주는 유쾌한 기분이 있다. 시원한 바람이 온 몸을 흔들어 주고, 상쾌한 꽃 내음이 코 끝을 자극할 때가 그것이다. 두 번째는 현재 상황이나 주변 사람들이 ‘좋다’라는 판단이 들 때, 미래에 희망이 있다는 판단이 들 때가 그것이다.
마지막으로 ‘아름다움’을 느끼는 순간이다. 칸트는 ‘아름답다’는 느낌만이 외부대상에 의존하지 않고 자발적 기준과 판단에 의해 결정되는 오롯이 자유로운 만족이라고 하였다.
결국 만족이 만족답고, 안분지족(安分知足)이 안분지족(安分知足)답기 위해서는 스스로 ‘아름답다’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상황에 따라 외부조건에 따라 ‘아름다움’을 규정한다면, 만족에 다다르기 어렵다는 결론이 나온다.
■ 만족의 이중성
일본에 사토리 세대라는 용어가 있다. 1980년대 후반에 태어난 세대로서 ‘바라는 게 없는 젊은이들’을 지칭하는데, 이들은 자동차나 명품 등을 바라지도 않고 출세나 승진 등에는 아예 관심이 없다. 필요 이상의 돈을 벌고자 하지도 않는다. 사토리라는 말은 ‘깨달음’, ‘득도’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사토리 세대’는 안분지족(安分知足)의 정신을 구현하는 깨달음의 세대인가, 아니면 일본의 장기불황이 낳은 자포자기의 세대인가? 여기에 만족이란 단어가 주는 이중성이 숨어 있다.
사실 문제는 일본만이 아니다. 한국의 삼포세대 역시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자포자기현상’ 을 보여주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만족이란 자발적인 기준과 판단에 의해 ‘아름답다’는 느낌이 들 때 비로소 만족의 참된 의미가 살아난다. 현실의 고단함 때문에 강요된 만족은 쾌감은 물론 아름다움은 없다.
■ 牛生馬死의 지혜
우생마사(牛生馬死)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헤엄 잘 치는 말은 죽고 그렇지 못한 소는 살아 남는다는 이야기다. 소와 말이 함께 물에 빠졌을 때 소는 물살에 순응하여 살아 남고 말은 재빠름과 힘만 믿고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다 제풀에 지쳐서 죽는다는 뜻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우선, 일이 잘 풀릴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지만 흐름을 거스르기 보다는 순리에 따르는 법을 아는 사람이다. 대세를 파악하고 대세를 따라가며 그 과정에서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단순히 대세를 따르기만 하지 않는다. 대세를 따르되, 새로운 기회를 찾는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소가 물살에 떠 내려가기만 하고 강에 떠다니는 부유물을 잡는 노력을 포기하거나 강 기슭에 닿아서 힘써 올라 오려는 노력을 포기하는 데도 살아 남을 수 있을까?
소가 말보다 지혜로운 이유는 대세를 따르되, 대세가 선사하는 또 다른 기회를 찾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만족이란 결국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되, 더 아름다운 삶을 위한 노력, 그 자체이다.
글_최경춘 한국능률협회(KMA) 상임교수
► 리더십교육/ 성과향상 코칭/ 감정코칭 등 다수 경영분야 강의
►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미국 University of Washington(MBA)/ 국민대학교 일반대학원 경영학 박사(수료)/ LG 인화원 기획팀장(부장)/ 팬택 아카데미 본부장(상무)/ 엑스퍼트컨설팅 본부장(상무)/ LG CAP,Work-out Facilitator/ Hay Group Leadership Facilitator/ KMA Assessment Center Assess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