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일 고 최진실의 발인 날 동료 연예인들이 고인의 시신을 운반하고 있다. 임영무 기자 namoo@ilyo.co.kr | ||
정확한 자살 동기가 밝혀지지 않고 있는 가운데 악성 루머가 결정적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지만 한편에선 고인의 죽음을 둘러싼 또 다른 악성 루머가 피어오르고 있다. 과연 고인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또 하나의 풀리지 않는 연예계 미스터리로 남을 고인의 자살을 입체적으로 접근해봤다.
최진실의 자살이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까닭은 안재환의 자살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들려온 비보이기 때문이다. 정선희와 각별한 사이인 터라 고 안재환의 장례식에서 최진실이 오열하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이번에는 그가 영정사진 속에서 장례식장을 찾은 정선희를 맞은 것. 게다가 두 연예인의 자살 사이에 묘한 연관관계까지 감지돼 세간의 이목을 더욱 집중시키고 있다.
현재 가장 결정적인 자살 동기가 된 사안은 안재환의 죽음을 둘러싼 악성 루머다. 최진실이 바지사장을 통해 안재환에게 사채 25억 원을 빌려 줬다는 ‘사채설’에 이어 최진실이 안재환에게 빌려준 돈을 받기 위해 정선희를 소개해줬다는 ‘정략중매설’까지 떠돌았다. 다행히 악성루머의 최초 유포 용의자인 25세의 증권사 여직원이 입건됐지만 한 번 상처받은 가슴이 쉽게 아물진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 2일 새벽 0시경 침실에서 모친과 마지막 대화를 나눌 당시에도 고인이 “세상 사람들에게 섭섭하다. 사채니 뭐니 나와는 상관이 없는데 나를 왜 괴롭히는지 모르겠다”고 얘기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럼에도 악성 루머는 계속되고 있다. 아니 고인이 자살한 뒤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돼 고인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로 발전하는 양상이다. 사채설로 힘겨워하는 상황에서 자살하자 마치 사채설이 사실임이 밝혀지는 게 두려워 자살을 결심한 게 아니냐는 추측성 루머가 급격히 퍼지기도 했다.
고인의 자살 하루 전인 10월 1일 고 안재환의 자살을 재수사 중인 노원경찰서에서 고 안재환의 노트북을 증거로 입수했다는 얘기가 전해지면서 루머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노트북에 사채 내역이 담겨져 있다고 알려지면서 여기에 최진실의 이름이 올라 있다는 루머가 떠돈 것.
이에 대해 노원경찰서는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담당 형사는 “노트북을 복원했지만 그가 제작하려던 영화 시나리오를 제외하면 별다른 게 없다”고 설명했다. 최진실의 자살이 알려진 뒤 고인의 최측근 인사 가운데 현직 사채업자가 있어 그를 통해 고인이 사채를 돌렸다는 구체적인 루머까지 나돌았지만 노원경찰서 측은 “안재환의 채무 관계와 최진실 측 사이에는 아무런 상관관계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최진실의 자살을 수사하는 서초경찰서 역시 “명확한 사실 관계 확인을 위해 고인의 계좌 등을 통해 사채설도 확인 중이지만 드러난 정황이 전혀 없다”며 “사채설은 사실무근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사체 발견 및 신고 과정을 둘러싼 미스터리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 2일 자정 무렵 귀가한 고인은 모친과 잠시 대화를 나눈 뒤 욕실로 들어갔다. 욕실에서 절친한 지인 이 아무개 씨에게 죽음을 암시하는 문자를 보낸 뒤 또 다른 지인 김 아무개 씨와의 전화통화에서도 죽음을 암시하는 발언을 했다. 이를 걱정한 김 씨가 고인의 집에 전화를 해 불안하다는 얘기를 건네자 다시 모친이 고인에게 말을 걸었고 고인은 욕실 안에서 괜찮다고 답했다.
새벽 4시경 불안한 마음에 다시 고인의 침실로 향한 모친은 여전히 고인이 욕실 안에 있자 문을 두드리며 고인을 불렀지만 묵묵부답이었다. 그리고 욕실 문이 열린 시간은 열쇠업자가 온 오전 6시 무렵이다. 사체를 확인한 모친은 아들 최진영에게 연락했고 최진영의 신고로 구급대가 고인의 집에 온 시각은 7시 30분 무렵이다. 최초 발견 시간인 4시부터 문을 연 시간까지 두 시간이나 소요됐고 다시 119 구급대가 집에 오기까지 1시간 30분이나 걸린 것. 왜 조속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는지 의문이 남는 대목이다.
▲ 장례식장을 빠져나가는 고 최진실의 운구 차량. 임영무 기자 namoo@ilyo.co.kr | ||
열쇠업자가 도착해 욕실 문을 열어 사체를 확인한 뒤 놀란 모친은 곧장 아들 최진영에게 연락했다. 경찰 측은 노모인 모친이 너무 놀란 나머지 경찰이나 소방서에 신고할 경황이 없어 아들에게 연락을 취했고 최진영이 도착한 뒤에서야 비로소 정식 신고 절차가 이뤄졌다고 설명한다.
자살 동기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자 일각에선 타살설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부검을 통해 사인이 질식사로 알려지면서 자살에 대한 이견은 사그러들었다. 그렇다면 고인이 자살을 선택한 결정적 동기는 무엇일까.
경찰에 따르면 고인은 자살 이틀 전 인터넷에 ‘사채업 괴담’과 관련한 글을 올린 혐의로 입건된 증권사 여직원과 전화통화를 한 뒤 잠을 못 자고 울었다고 한다. 이 탓에 다음날 약속된 광고촬영을 하지 못하자 소속사 사장 등과 함께 근처 순댓국집에서 오후 5시부터 7시까지 소주 3병을 나눠마셨으며 다시 자리를 옮겨 오후 11시께까지 술을 마시다 매니저와 함께 귀가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는 사채설과 관련된 대화도 없었고 자살을 연상시킬 만한 언급도 없었다는 것이 동석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고인은 평소 집 인근의 한 찜질방을 자주 찾곤 했는데 찜질방 직원들 역시 비슷한 반응이었다. 사채설이 불거지자 찜질방 직원들이 악성 루머로 힘들지 않냐며 위로했지만 “하루 이틀 겪는 일도 아닌데 괜찮다”고 답했다고 한다. 다만 사채설이 불거지면서 아들의 운동회에 참석하기가 불편한 입장이 된 게 오히려 가장 결정적인 자살 동기라는 지적도 있다. 기다렸던 아이의 운동회에도 참석하기 어려운 처지를 비관했을 수 있다는 것. 실제 지난 2일 술자리가 끝난 뒤 귀가하는 차량에서 고인은 매니저에게 “운동회에 가기 싫다, 속상하다”고 얘기했다.
이런 상태가 이날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계속된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고인이 2일 오전 0시 47분께 메이크업 담당자에게 유서성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한 여성잡지사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3분 정도 서럽게 울었으며 단정적으로 ‘죽겠다’라는 말을 했다고 밝혔다.
자살 징후로 보이는 행적은 그 전에도 있었다. 전 남편 조성민과의 이혼 분쟁으로 가슴앓이를 하며 우울증증세를 보이기 시작한 뒤 “죽고 싶다”는 얘길 종종 하긴 했지만 요즘 들어 부쩍 이런 얘길 자주 했다는 게 지인들의 설명.
20여 년 동안 최정상부터 밑바닥까지 인기의 등락을 거듭한 고인은 심각한 정신적 스트레스와 싸워왔다고 한다. 올 초 방영된 드라마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을 통해 다시금 정상의 자리를 확인했지만 지인들은 드라마 종영 이후 더 힘들어 했다고 얘기한다. 정상의 자리에서 언제 다시 내려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려왔다는 것. 드라마 종영 이후 신경안정제 복용량을 늘린 것이 이를 뒷받침해준다다. 또 다른 지인은 전 남편 조성민이 한 여성지와의 인터뷰에서 아이들의 성을 ‘조’에서 ‘최’로 변경한 데 대한 아쉬움을 토로한 것을 두고 고인이 화를 많이 냈었다고 얘기한다.
결국 그렇지 않아도 괴로운 심경이었던 고인에게 안재환의 자살, 이로 인한 절친한 동료 정선희의 고통, 그리고 정선희를 도우려는 자신의 모습이 괜한 악성 루머를 불러오는 일련의 과정이 상당한 정신적 압박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딱 한 가지를 자살의 결정적 동기로 손꼽기는 힘들지만 이런 연속된 상황이 그렇지 않아도 우울증으로 괴로워하는 고인을 충동적인 자살로 몰아갔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 최고의 스타로 발돋움해 ‘똑순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던 고인, 연예관계자들이 독종이라 부를 정도로 자기 일과 지인과의 관계에서 한 치의 흐트러짐도 보이지 않았던 고인이기에 그의 자살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겉으로 보이는 강한 모습 뒤편의 인간적인 외로움과 말 못할 고통이 결국 고인을 자살이라는 막다른 길로 몰아간 게 아닌가 싶어 연예관계자들과 팬들을 더욱 안타깝게 만들고 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