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과거의 결과물이 아니라, 미래의 사실이겠다!’
또한 해방 이후 6?25전쟁까지 이념의 갈등으로 수백만 명이 희생되고 전국토가 폐허가 된 시기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선진 한국을 만들어낸 ‘고난 속의 기적’이라는 성장의 역사 또한 없었다. 바로 이러한 시기를 치열하게 살다간 많은 유명 인사들과 서민들이 망우리공원의 역사(1933~1973)와 함께하였다.
액자처럼 잘라낸 이 40년의 기간을 오롯이 간직한 이 공간은, 이제 우리 역사의 가장 격동적인 근현대사와 그들의 삶을 비명을 통해 전해주고 있다. 더군다나 이제 망우리공원은 울창한 수목과 최고의 경관을 갖춘 서울둘레길의 제2코스에 속하며, 어제와 오늘 그리고 삶과 죽음의 ‘사잇길’을 걸어가는 사색의 장소이기도 하니, 진정 최고의 인문학적 공간으로 거듭났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이러한 의미를 담아 망우리공원에 잠들고 있는 우리 근현대사의 주역들을 처음으로 발굴 및 정리하여 소개한 『그와 나 사이를 걷다 - 망우리비명으로 읽는 근현대인물사』(2009년 4월, 골든에이지)는 출간 그 해에 문광부 우수교양도서로 선정되는 등 망우리공원의 인문학적 토대를 마련해 주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관심 있는 독자의 사랑을 받았다.
그동안 저자는 지속적인 현장답사 안내 및 실내 강연을 통해 망우리공원의 인문학적 가치와 인물들의 스토리를 대중에게 널리 알리는 데 노력하였고, 그 결과 2012년에는 한국내셔널트러스트로부터 산림청장상(‘꼭 지키고 싶은 우리 문화유산’ 부문)을, 2013년에는 서울연구원으로부터 서울스토리텔러 대상을 받았으며, 2014년에는 서울시의 ‘망우리공원의 가치제고’ 및 ‘인문학길 조성’ 용역에도 참여하게 되었다.
유명인사 묘역을 안내하는 이정표 하나 없던 망우리공원이 이제 비로소 행정당국에 의한 인문학길 조성을 앞두고 있다. 저자는 이곳을 찾는 답사 객들을 위해 초판 내용의 전반적인 수정 및 보완을 거쳐 보다 정확하고 튼실한 개정판을 내어놓았다. 기존 소개 인물에 대해서는 그동안에 새로 밝혀진 사실 및 연구 결과를 덧붙이고, 자료 부족으로 미처 소개하지 못했거나 출간 후에 새로 발견한 10여 명의 인물에 관한 이야기를 추가하였다. 이제 망우리공원에서 근현대사를 들려주는 인물은 무려 53명에 이른다.
특히 등장인물로는(53명)계용묵, 권진규, 김말봉, 김봉성, 김상용, 김이석, 김호직, 노필, 명온공주와 부마 김현근, 문명훤, 문일평, 박승빈, 박원희, 박인환, 박찬익, 박희도, 방정환, 삼학병(3인), 서광조, 서동일, 서병호, 설의식, 설태희, 송석하, 신경진, 안창호, 오긍선, 오기만, 오세창, 오재영, 유상규, 이경숙, 이광래, 이병홍, 이영민, 이영준, 이인성, 이중섭, 장덕수와 박은혜, 조봉암, 지석영, 차중락, 최신복, 최학송, 채동선, 한용운, 함세덕, 사이토 오토사쿠, 아사카와 다쿠미 외 등장인물로 선정했다.
본서는 그동안 단편적이고 산발적으로 알려진 망우리공원 내 저명인사의 묘와 비문을 한데 모아 최초로 정리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서가의 한 자리를 차지할 자격이 있지만, 이에 그치지 않고 그동안 전혀 혹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사들의 묘를 찾아내 망우리공원의 문화자원을 크게 늘려주었다는 점 또한 높이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대다수가 알고 있는 만해 한용운, 소파 방정환, 화가 이중섭, 시인 박인환, 정치인 조봉암과 장덕수, 서화가 오세창, 사학자 문일평 등 유명인 외로도, 가수 차중락, 연극 및 영화「동승」의 원작자인 극작가 함세덕, 「탈출기」의 소설가 최학송, 민족대표 33인의 한 분이지만 친일 행적으로 그 이름이 생소한 박희도, 대구 출신의 천재 화가 이인성, 근대 조각의 선구자 권진규,
해방 후 좌우익의 투쟁 속에 희생된 삼학병, 반민특위의 선봉장이었던 국회의원 이병홍, 몰락한 왕조의 상징과도 같은 명온공주와 부마 김현근, 한일 양국인으로부터 존경을 받는 일본인 아사카와 다쿠미, 포플러와 아카시아를 도입한 총독부 초대 산림과장 사이토 오토사쿠, 뒤늦게 서훈을 받은 사회주의계 독립지사 오기만과 박원희, 안창호의 조카사위 김봉성과 안창호의 비서 유상규 등, 여러 이유로 그 존재가 알려지지 않았던 근현대 인물들의 삶도 비명(碑銘)을 통해 새로 소개하고 있다.
무엇보다 본서의 가장 큰 장점은, 단지 사료로서의 가치를 뛰어넘어 독자에게 읽는 재미까지 안겨준다는 점일 것이다. 망우리공원이라는 문화자산을 넓이뿐 아니라 깊이와 재미까지 더해주었다는 말이다. 단순히 그곳에 묘가 있다는 지리 정보의 차원을 벗어나, 구한말 개화기부터 1960년대 말까지의 우리 역사를 고인의 비석을 통해 말하면서, 알려지지 않은 비화도 많이 소개하고 있다.
예를 들면, 소파 방정환의 묘 바로 아래에는 방정환의 숭배자요 후배인 최신복의 가족 3대가 함께 묻혀 있다는 사실, 화가 이인성과 방정환의 인연, 가수 차중락의 숨겨진 애인 미국 여대생 알린의 사진과 편지, 이중섭의 묘에 소나무가 서 있는 사연, 동아일보 편집국장 설의식과 배우 김보성과의 관계, 야구선수 이영민과 미야다케가 벌인 숙명의 한일 라이벌전의 기록, 도산 안창호가 비서 유상규 옆에 잠들었던 사연, 소설가 김말봉의 드라마틱한 러브스토리, 유관순 열사와 이태원무연분묘합장비와의 관계, 그리고 망우리의 독립지사들과 악연이 깊어 막간 인물로 등장시킨 미와 경부 관련의 최초 발굴 사료 등이 그것이다.
본서에 소개된 고인들의 직업은 가수, 체육인, 시인, 소설가, 아동문학가, 작곡가, 화가, 조각가, 교육자, 독립지사, 변호사, 의사, 정치인, 종교인, 사회주의 운동가, 언론인, 총독부 관료 등으로 다양하며, 이념적으로는 친일파와 좌파까지 아우르고 있어 마치 우리 사회의 축소판을 보는 듯하다. 기념비(탑) 4개를 포함해 이 책은 우리 근현대사의 각 분야를 두루 조망할 수 있는 무려 57개의 크고 작은 창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추천사,이제는 더없이 중요한 역사 공간이 된 망우리공원을 우리는 하나의 문화재로 받아들일 때가 되었다고 생각된다. 청순한 산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날 때 망우리공원을 거닐다 보면 인간은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아들임을 떠올리며 멀리 한강을 처연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몇 차례 학생들과 여기를 답사 다녀왔고, 또 어느 해 봄엔 여기를 찾아갈 것이다. 유홍준 <명지대 교수, 전 문화재청장>
망우리론,망우리라는 땅의 성격은 대체로 연로하신 어머님의 ‘내 방’ 같은 느낌이다. 어머님에게 ‘내 방’은 세상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천하의 명당이다. ‘내 방’은 나만의 ‘둥지’이다. 둥지는 안온함과 안전을 보장하는 곳으로 믿는다. 망우리에서 어머님의 ‘내 방’ 맛을 보라. 죽음도 생각해보라. 이 책은 망우리 사색객에게 좋은 참고서가 될 것이다. 최창조 <전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
김영식 저자 소개,작가?번역가. 부산에서 출생하여 네 살 때 상경. 망우리공원에 가까운 중랑구 중화동과 상봉동에서 대학 때까지 살았다. 대학생 때 한 번 찾아갔던 망우리와의 인연은 오랜 세월 후에 그 결실을 맺게 되었다. 문예진흥원 우수문학사이트로 선정된(2003년) ‘일본문학취미’ 블로그를 통해 일본 문학과 문화를 소개하고 있으며, 2002년 계간『리토피아』신인상(수필)으로 등단했다. 역서로는『기러기』(모리 오가이),『라쇼몽』(아쿠타가와 류노스케),『무사시노 외』(구니키다 돗포),『조선』(다카하마 교시) 등이 있다. 본서와 관련하여 산림청장상(2012, 한국내셔널트러스트), 서울스토리텔러 대상(2013, 서울연구원)을 받았다.
임진수 기자 ilyo7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