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양 마커스 힉스 | ||
하지만 이번 시즌에도 외국 용병들의 역할은 클 것으로 보인다. 각 팀 전력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용병들 중 이번 시즌에 반짝 스타로 떠오를 만한 선수는 누구일까. 용병들이 경기에 몰입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 도와주는 존재가 통역이다. 경기력 향상을 위해서라면 피부색도 다른 이들과 ‘일심동체’의 수준까지 자신을 희생해야 하는 통역사들. 그들의 시각을 통해 용병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접근해봤다.
●구관이 명관
이번 시즌에 뛸 새로운 용병과 붙박이 용병의 비율은 6:4 정도이다. 붙박이라면 지난 시즌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탄력과 ‘기술’로 용병 MVP를 거머쥔 마커스 힉스(동양)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통역 생활 3년째인 문상운씨는 이제 힉스가 친구 같다. 처음에는 힉스의 불같은 성질과 잘 삐지는 성격 때문에 속을 썩인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새로 들어온 에이제이 롤린스에게 통역을 대신해서 기본적인 교육을 시킬 정도로 ‘형’노릇을 톡톡히 해낸다고. 덕분에 용병들이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상하관계나 선후배 관계에 대해 거부감이 없을 정도다. 롤린스는 이제 필드에 나가서 공도 챙기는 모습까지 보여줘 스태프들의 입이 함지박 만하게 벌어졌다는 것.
문씨는 “힉스가 나 없이는 재계약하지 않겠다고 버티는 것을 봤다. ‘겉치레’일수도 있지만 그래도 보람을 느낀다”며 이번에도 동양에서 힉스의 활약을 장담했다.
코리아 텐더의 안드레 페리와 에릭 이버츠는 이젠 어디가도 밥을 굶지 않을 정도로 ‘눈치’가 늘었다. 모기업인 코리아 텐더의 경영위기로 구단의 운영이 거의 정지됐던 형편을 아는지 웬만한 불편은 감수한다. 통역인 정건씨는 “구단이 아무리 어려워도 월급은 꼬박꼬박 챙겨줬다. 이를 고맙게 여기는지 먹는 것마저도 불평이 없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외국인 선수는 음식에 매우 민감하다고 한다. 그러나 페리는 뭐든지 가리지 않고 잘 먹는다.
특히 초밥과 생선회도 척척 잘 먹는다고. 미국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것이 꿈인 이버츠는 교통사고와 선수생활에 부침을 겪어서인지 ‘우승’만을 생각하며 ‘성실’ 하나로 살아가고 있다고.
▲ 코리아텐더 에릭 이버츠 | ||
이번 시즌 용병들은 대체로 착하다는 게 통역들의 중론. 그러나 지난 시즌에는 대마초 사건으로 KCC의 재키 존스, 제런 콥, SK 마틴 등 10명이 영구퇴출 됐고, 지난 8월 삼성의 카를로스 윌리엄스가 미국에서 총격으로 사망하는 등 용병들이 수난을 겪었다.
시즌이 시작하기 전에는 팀의 스태프들도 용병들의 군기 잡기에 나선다. 지금이야 시즌이 시작되어서 플레이에 신경이 집중되었지만 시즌 전에는 일부 용병들은 꽤 혼쭐이 나야 했다.
특히 대학 농구의 간판 최희암 감독의 첫 프로 데뷔팀인 모비스의 경우 그렇다. 아이제아 빅터와 채드 핸드릭. 이들은 처음 개인 플레이로 일관하다가 최 감독의 서릿발 같은 호통을 듣고 ‘장난’이 아님을 깨달았다고.
모비스는 부상당한 채드 핸드릭 대신에, 2년 전 SBS에서 뛴 데니스 에드워즈를 긴급 수혈했다. 최 감독은 완벽한 데뷔를 위해 용병에 대한 인터뷰도 자신을 통하게 하는 등 팀 장악에 힘쓰고 있다.
KBL규정에도 훈련에 불성실한 용병은 퇴출시킬 수 있고 향후 5년 간 한국 무대에서 뛰는 것이 금지되기 때문에 용병들은 한국 무대를 그냥 쉬어 가는 무대로 볼 수 없다.
모든 용병들의 척도는 실력이다. 그러나 한국은 아직까지 용병에 대한 대우가 다른 리그보다 ‘인간적’이어서 조금만 성실성을 보이면 대부분 구단이 그 용병을 다시 찾곤 한다.
●개그 듀엣 리온, 퀸튼
국내 용병들은 대부분 미국 출신 흑인. 흑인들은 성격상 대부분 낙천적인 편이다. 특히 중부나 동부보다 서부 흑인들이 더 아시아에 적응을 잘 한다고 한다. 서부에 아시아인들이 많이 살아 자연히 접할 기회가 많고 이질감이 적다는 이유다. 특히 SK나이츠의 리온 트리밍햄과 퀸튼 부룩스는 자타가 공인하는 개구쟁이. 리온은 호주리그에서 올스타로 뽑혔었고 퀸튼은 비록 2부리그이지만 극심한 경쟁 속에서도 득점왕에 오른 적이 있는 선수다. 하지만 실력만큼 장난에 능한 이들에게 통역 박준씨는 간혹 ‘밥’이 되곤 한다.
어느날 먼 발치에 있는 박씨를 갑자기 큰일났다며 리온이 불렀다. “무슨 일이냐”며 다급히 뛰어온 박씨에게 리온이 건넨 말은 “그냥 불러봤어”. 퀸튼은 리온이 장난을 시작하면 옆에서 맞장구를 친다. 박씨는 뻔히 알면서도 나름대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어 보려는 그들의 노력이 가상(?)해 매일 속아주고 있다고.
▲ SK 퀸튼 브룩스(왼쪽)와 리온 트리밍햄 | ||
통역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가 선수의 일거수 일투족을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상부에 보고하고 안하고는 통역의 재량이지만, 사고가 일어날 경우 미리 방지하지 못한 책임이 크기 때문이다. 아직 시즌 초기여서 모두 긴장한 상태라 제어가 가능하지만 중반쯤 되면 서서히 긴장이 풀린다는 것.
특히 각 구단 용병끼리 모두 모여서 놀기 때문에 ‘미꾸라지’ 용병 하나가 모두를 망쳐놓기 쉽다. 특히 화려한 덩크로 유명한 A는 알아주는 플레이어(흑인속어로 플레이보이). 원년부터 4시즌 동안 한국에서 활약한 클리프 리드를 다시 보는 것 같다고 관계자들은 혀를 내두른다. 클리프 리드는 ‘여자’와 ‘술’을 밝히기로 유명했다.
A는 이태원에 한 번 ‘밤마실’을 나오면 꼭 여자를 안고 숙소로 향해야 하는 성격으로 알려져 있다. 심할 때는 더블도 불사한다고. 처음에는 그냥 그러려니 하다가 이제는 콘돔이라도 꼭 쥐어주면서 ‘아버지 같은 심정’으로 애만 태우고 있다고. 그러나 시즌이 시작된 후 자제하는 듯해서 한결 마음이 놓인다고.
각 구단의 통역들은 새 용병과 시즌을 매번 시작하면서 생각하는 것이 있다. 비록 돈으로 사온 ‘상품’이지만 한국리그 특유의 정을 느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외국리그에서 다시 복귀해 자신을 찾는 용병 선수를 볼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는 통역맨들. 오늘도 선수들과 같이 코트를 뛰는 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