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동원(뒷줄 왼쪽서 두번째)이 동료 김용철의 장난으로 모 자를 푹 눌러쓴 채 손을 흔들고 있다 | ||
선발투수가 7경기 중 5경기에 출전하여 코피를 쏟는가 하면, 미처 표를 구하지 못한 관중들이 출입문을 뚫고 경기장으로 들어간 일도 있었다. 국내 야구팬들을 웃기고 울렸던 한국시리즈의 해프닝 속으로 들어가 보자.
84년 - 한국시리즈에서 혼자서 4승을 따내 단일 한국시리즈 최다 등판 및 최다승 기록을 갖고 있는 최동원(당시 롯데). 최동원은 당시 총 7경기 중 5경기에 출전(4경기 선발 등판), 무려 40이닝을 던지며 탈삼진 35개를 솎아 내는 괴력을 발휘했다. 오로지 우승에 대한 집념 하나로 필사적으로 던졌지만 목표달성 뒤엔 심한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
최동원은 당시의 상황에 대해 “후유증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나중엔 코피가 줄줄 흐를 정도였다”며 힘겨웠던 상황을 회상했다. “그때는 지금처럼 투수들의 업무 분담이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에이스들이 혹사를 당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혼신을 다했기 때문에 우승이라는 영광도 얻을 수 있었다”는 자부심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이토록 분전한 최동원은 시리즈 내내 1할대 타율에 머물다가 최종 7차전에서 역전 3점 홈런 한방을 날린 동료 유두열에게 MVP를 넘겨줘 아쉬움을 남겼다.
87년 - 10월23일 저녁. 해태와의 한국시리즈 3차전을 치르기 위해 대구에서 광주로 이동, 모호텔에 여장을 푼 이만수(삼성). 당시 동행 취재를 나와있던 MBC 촬영팀의 요청으로 대구 집에 ‘도착 보고’를 하게 된 이만수는 호텔 전화기를 들자마자 ‘헐크’답게 ‘어머니!’라고 당당하게 외쳤다. 그러나 이만수는 한참을 떠들고 난 뒤에 수화기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순간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전화를 받은 사람이 어머니가 아니라 장모였던 것. 당시 한국시리즈에서 사위가 활약하는 모습을 함께 보기 위해 대구 집에 들렀다가 사위의 전화를 직접 받은 장모는 너무나 살갑고 정겨운 ‘어머니’란 소리에 순간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이 광경을 옆에서 목격했던 김소식 MBC 해설위원은 “만수가 원래 소문난 효자다. 그래서 어디를 가든 어머니한테 수시로 보고하곤 했는데 그때도 워낙 큰 소리로 ‘어머니’라 외쳐서 장모라는 것을 안 뒤에 한참이나 웃었다. 물론 방송에도 그대로 나갔다”고 설명했다.
96년 - 10월23일 해태와 현대의 6차전을 앞두고 있던 잠실야구장에서는 한국 프로야구 사상 초유의 일이 발생했다. 전날 관중이 던진 쓰레기통에 기자가 맞아 병원으로 후송되는 등 유난히도 치열했던 두 팀간의 승부 탓에 입장권이 일찌감치 매진됐다. 전날 밤부터 경기장 앞에 텐트를 치면서 기다린 극성팬들 때문에 오후 2시부터 발매된 입장권이 3시 이전에 동이 나버리자, 반나절을 기다리고도 표를 구하지 못한 관중들이 출입문을 뚫고 경기장으로 들어간 것.
3루측 출입문으로 돌격(?), 운영요원들을 무색하게 만든 2백여 명의 관중들은 경기장에 들어가자마자 시치미를 뚝 떼고 관중석에 앉았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당황한 구단과 KBO 관계자들은 ‘무단 침입자’들을 색출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직감, 망연자실하게 쳐다만 볼 수밖에 없었다.
91년 한국시리즈 때 입장권의 1/3이 암표상들에게 흘러 들어가 이미 한 차례 곤욕을 치른 바 있는 KBO로서는 ‘프로야구의 인기 탓’이라고 애써 자위해야 했다.
2001년 - 10월28일 잠실야구장에서는 한국시리즈 사상 처음으로 경기 중에 조명탑이 꺼지는 ‘사고 아닌 사고’가 발생했다. 두산이 삼성에게 3승 2패로 앞선 가운데 벌어진 6차전, 5-3으로 뒤지던 두산이 8회말에 6-5로 뒤집은 뒤에 맞이한 삼성의 9회초 마지막 공격. 2아웃 상황에서 김종훈이 받아친 타구가 평범한 땅볼로 3루수 김동주에게 향하자 경기는 그대로 끝나는 듯했다.
그런데 김동주가 잡아서 던진 송구가 1루수의 글러브에 맞고 떨어져 김종훈이 세이프 되는 순간, 갑자기 경기장이 ‘암흑’ 속에 빠져버렸다. 당연히 경기는 중단되었고, 샴페인을 터뜨리려고 준비중이던 두산 선수단에서는 ‘누군가가 고의로 끈 것이 아니냐’는 음모론(?)까지 조심스럽게 대두됐었다.
이날 경기가 두산의 승리로 끝나면 우승축하 폭죽을 터뜨리려고 했던 KBO가 조명실에 ‘경기 직후 조명을 꺼줄 것’을 사전에 부탁했었고, 이에 조명실 직원들이 평범한 김종훈의 땅볼을 잡은 김동주가 1루로 송구하는 것을 본 순간 상황이 종료된 줄로 착각했던 것이다.
한재성 스포츠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