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봉주 | ||
아시안게임 2연패의 위업을 달성한 뒤 정신 없이 쏟아지는 스케줄로 인해 뱃속의 아기를 위한 태교에 동참하지 못하고 있다며 못내 아쉬워하는 이봉주와 마라토너가 아닌 인간 이봉주 대 기자로서 술잔을 주고받았다.
사실 이봉주 하면 언뜻 떠오르는 이미지가 순박함과 ‘바른 생활의 사나이’의 전형을 보여주는 성실, 근면함일 것이다. 그러나 술자리에서 이봉주를 대면하게 된다면 ‘팔색조’가 울고 갈 정도의 화려한 변신을 선보이며 좌중을 휘어잡는 카리스마와 눈과 귀가 번쩍 뜨일 만한 춤과 노래 솜씨를 제대로 확인하게 될지도 모른다.
전날 과음을 했다며 집으로 기자를 초대해 술자리를 마련한 이봉주는 처음엔 속이 거북한 듯 따라 놓은 술잔에 제사를 지내는 듯했으나 대화가 무르익고 대작하는 기자가 권하는 ‘원샷’에 결국 무릎을 꿇고 말았다.
자연스레 술에 관한 추억담이 하나 둘씩 흘러 나왔다. 서른두 해를 사는 동안 술을 가장 ‘쎄게’ 마셨을 때가 스물한 살 생일파티에서였다고 한다. 고등학교 동기들과 신촌에서 기차를 타고 백마라는, 당시의 유명한 ‘술동네’를 찾았다가 오후 2시부터 다음날 새벽 3시까지 13시간 동안 마라톤 술 대회가 벌어졌던 것. 맥주, 양주, 소주에다 동동주까지 백마에 나와 있는 술들을 모두 섭렵해가며 ‘계주’를 마친 뒤 새벽 기차를 타고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동안 화물칸에서 ‘꼭지가 돈’ 친구들과 춤을 추고 ‘난리 부르스’를 쳤던 기억이 너무나 새롭다고 한다.
춤을 잘 추냐고 물었더니 “한춤 한다”고 자랑 아닌 자랑이다. 아내는 ‘한춤’이 아닌 ‘막춤’이라고 정정하는데 이봉주는 아주 의기양양한 표정이다. 추측컨대 발바닥이 단단한 남자라 스테이지 위에서 현란한 스텝을 밟는데 큰 무리가 없을 것도 같다.
“제가 술자리에선 분위기를 주도하는 편이에요. 술도 꺾어 마시지 않고 들이붓는 스타일이죠. 술잔을 앞에 두고 빼거나 ‘원샷’ ‘파도타기’에 동참하지 않을 경우는 거의 ‘죽음’이죠. 더 먹인다는 소리예요.”
이봉주랑 같이 술을 마셔본 측근에 의하면 넥타이를 머리에 묶고 마이크를 빙빙 돌려가며 공간 이동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모습에 일행들의 넋을 빼놓기 일쑤라고 한다. 아마도 마라톤하면서 머리에 태극 문양의 머리띠를 묶은 습관이 술자리에선 넥타이로 변신하는 모양이다.
“훈련과 대회가 계속되다보니 주로 휴가 때 폭음을 하는 스타일이에요. 돌아가신 아버지가 애주가이셨거든요. 어렸을 때 결심한 게 있다면 이담에 어른 되면 절대로 술 마시지 않겠다는 거였어요. 그런데 핏줄은 속일 수 없나봐요.”
▲ 이봉주와 부인 김미순씨가 다정스럽게 포즈를 취했다.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
“정말 긴가 민가 했어요. 전지훈련 중에 아내의 전화를 받고 알게 됐는데 그후 전화할 때마다 사실이냐고 물어봤을 정도로 믿기지가 않더라구요. 제가 아기 아빠가 된다는 게 꿈만 같아요. 빨리 봤으면 좋겠어요. 어떻게 생겼을지 여간 궁금한 게 아닙니다.”
얼마전 초음파에 나타난 ‘이봉주 주니어’를 직접 봤는데 사람의 형체가 갖춰진 모습도 신기했지만 심장 소리를 직접 들은 황홀함은 평생 잊지 못할 거라고 한다. 이봉주는 전지훈련 중에도 아내와 전화 통화를 하며 아기에게 아빠의 존재를 확인시켜주려고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했는데 그중에서 자주 동요를 불러줬다. 곡명이 ‘꼬마 자동차 붕붕’이었다나.
두 부부만이 알고 있는 아시안게임 에피소드 한 가지. 마라톤대회에서 메인스타디움을 얼마 남기지 않은 40km 지점부터 이봉주는 우승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그때부터 뛰는 데 전혀 부담이 없었다. 갑자기 아기에게 불러줬던 동요가 생각났다. 역시 ‘꼬마 자동차 붕붕’ 이었다. 그 노래를 흥얼거리며 메인스타디움을 들어섰고 골인 지점까지 뛰었다고 한다. 어쩌면 아내와 2세의 존재가 아시안게임 2연패를 달성하게 만든 ‘에너지’였는지도 모른다.
달리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사는 남자는 어떤 애환을 안고 살까. “모든 걸 접고 살아야 할 때가 가장 힘들죠. 가정보다 달리는 일이 더 우선시 될 때가 많아 아내에게 미안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또 레이스 자체에 오르막과 내리막의 경사는 있지만 큰 돌발 변수가 없다는 것도 엄청난 집중력을 요구하는데 가끔은 재미없을 때가 있어요.”
그래도 마라톤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최근 상황들은 마라톤 선수들에게 큰 힘이 된다. 이봉주도 마찬가지다. 이젠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육상계뿐만 아니라 체육계의 큰 스타로 자리잡은 탓에 마라토너로서의 애환을 솔직히 고백하기는 어렵지만 최근 취미를 붙인 골프가 재미있다고 말하는 걸 보면 달리는 일이 어렵긴 어려운가보다.
마라톤을 시작한 이래 우승만 8차례. 가장 감격적인 우승을 꼽으라고 한다면 지난해 열린 보스턴마라톤대회에서의 우승이다. 아버지가 지병으로 돌아가신 직후에 참가했던 대회라 더 큰 의미로 남는 것 같다. ‘가장’ 이라는 주제로 한 가지를 더 물어보았다. ‘가장 잊지 못할 사람은?’ 역시 고 정봉수 감독이다. 정 감독의 훈련 스타일에 반기를 들고 숙소를 뛰쳐나온 장본인으로서 여러 가지 회한이 많을 듯한데 돌이켜보면 정 감독만큼 카리스마가 뛰어나고 선수 관리와 지도 방법이 특출 났던 분도 없다는 생각이다.
집에 있는 양주(병 모양만 봐선 꽤 비싸 보이는데 절대로 술 이름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 솔직히 무슨 술을 마시고 ‘알딸딸’해졌는지 잘 모르겠다)를 접대용으로 내놓은 이봉주와의 취중토크는 한 병을 다 비울 무렵 끝이 났다. 그런데 술을 마셨다고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멀쩡하고 쌩쌩해서 아내 미순씨가 여간 놀라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봉주의 집을 나서는 순간 취기가 올라왔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아내와 팔짱을 낀 채 취재진을 배웅하는 이봉주의 얼굴이 너무 멋져 보이는 것이다. 와이프가 이 기사 보면 당장 전화할 것 같다.
“언니, 신경 꺼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