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미국행을 거의 확정지은 홍명보 | ||
그렇다면 정작 당사자는 어떤 기분일까. 처음엔 기분이 좋겠지만 그런 반응이 거듭될수록 극심한 스트레스에 빠지지 않을까. 최근 미국 LA 갤럭시행이 사실상 확정된 홍명보(33·포항) 얘기다. 미국 진출이 확정된 소감을 묻는 중 “한국에선 더 이상 보여줄 게 없다”고 속내를 털어놓는 모습에서 그간의 고뇌와 고통이 전해진다. 월드컵 직후부터 불거진 미국 진출설은 ‘맑음과 흐림’을 반복하며 홍명보의 앞날을 불투명하게 만들었다. 엄청난 이적료 차이(포항측 1백만달러 요구, LA 갤럭시측 20만달러 제의)로 인해 오랫동안 답보 상태에 머물면서 홍명보를 둘러싼 이상한 소문들과 비판들이 나돌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명보의 중심엔 결코 미국행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가 들어 있었다.
그 의지 때문에 홍명보가 직접 나서서 이적료 차액를 메우기로 약속함에 따라 어렵사리 미국행을 성사시켰다. 즉 포항의 이적료 요구액이 1백만달러에서 83만달러로 하향 조정 됐지만 여전히 20만달러를 고집하는 미국측과는 63만달러의 차액이 생길 수밖에 없다. 나머지 금액은 국내외 스폰서 등을 통해 마련해야 하는데 홍명보는 그 부분에 대해 비교적 낙관적이다. 홍명보를 구제(?)해주기 위해 팔을 걷어 부친 기업은 아직 없지만 홍명보의 존재를 인정해주고 도와줄 수 있는 기업들은 분명 있을 것이라고 믿는 것.
33세의 늦은 나이에, 그것도 유럽도 아닌 미국에 가서, 코치도 아닌 선수 생활을 하고자 하는 진짜 이유가 무엇일까.“단순히 선수 생활을 연장하기 위해서라면 그냥 한국에서 은퇴할 것이다. 그러나 여러 차례 강조하고 설명했지만 미국 진출의 가장 큰 목적은 정비가 잘 된 축구 시스템을 직접 보고 느끼고 배우고 싶기 때문이다.
물론 영어를 공부하려는 이유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축구 환경이다.”홍명보가 일본에서 국내로 복귀한 이후 가장 답답했던 부분이 세월이 흘러도, 월드컵을 치른 이후에도 변하지 않는 프로 구단의 무사안일주의다. 마케팅이라고 내세우는 걸 보면 스타플레이어를 위주로 하는 근시안적인 프로그램이 대부분이고 정작 미래를 위해 준비하고 노력하는 자세가 엿보이지 않았다.
“정말 뒤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왔다. 지난 월드컵이 그 절정이었다고 본다. 이젠 내리막길인데 비참한 내리막이 아닌 옆과 뒤를 쳐다보며 은퇴 후를 준비하고 싶었다. 미국 프로리그는 그 과정이다. 은퇴 후의 홍명보를 준비하는 과정 말이다.”한결 홀가분해진 것 같다. 겉으론 내색하지 않고 혼자서 미국 진출을 위해 노력하고 애썼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 듯 목소리에 여백이 묻어났다. “일본 진출할 때도 숱한 난관에 부딪히며 힘들게 결정돼 나갔다. 미국 진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지금의 과정은 전혀 문제가 아니다. 나가는 일보다 가서 얼마나 잘 적응하느냐가, 또 적응보다도 어떤 모습으로 다시 돌아오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홍명보의 말에 따르면 미국 프로 축구의 마케팅은 세계적인 수준으로 꼽힌다고 한다. 구단에서 선수를 대하는 부분이나 선수단 운영, 관리, 시스템 등 그의 시선을 붙잡는 항목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최근 보여준 경기에서 지나친 파울과 태클로 퇴장 당했던 홍명보. 그동안 홍명보의 이미지를 떠올린다면 최근의 일들은 쉽게 연결이 되지 않는 장면들이다. 이 부분에 대해 홍명보는 “나는 축구선수지 모범생이 아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경기장에서도 내가 모범생이길 바란다”고 하소연한 적이 있었다. 축구선수 홍명보의 입장에선 조금 억울할 수도 있겠다.
“분명히 어떤 한계가 있는 법인데 주위에서 바라는 게 너무 많다. 그걸 다 채워주기가 힘들고 벅차다. 미국행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팬들 눈에는 내가 생떼를 쓰는 것처럼 비춰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 5년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지금 내가 왜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해 줄 거라고 믿는다.”2년간 미국에서 선수 생활을 하다 은퇴한 뒤 영국에서 5년 정도 유학 생활을 계획하고 있는 홍명보의 진짜 꿈은 축구 행정가가 아닌 구단주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