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방 한쪽을 차지한 낡은 책장은 길에 버려진 것을 주워와 교과서를 꽂아놓는 데 사용한다. 지완이는 공부방이 생겨 친구들을 집에 초대하는 게 소원이지만 힘들게 생활을 꾸려나가는 엄마에게 차마 책상을 사달라는 말은 꺼낼 수가 없다.
그런 지완이에게 지난 9월 작은 기적이 일어났다. 동대문구와 한국마사회 렛츠런재단의 후원으로 집에 공부방이 생긴 것이다. 지완이는 “이제 동생들도 책상에서 책을 읽고 저도 친구들과 함께 집에서 숙제를 해요”라며 웃었다.
▲ 장안동 3남매 집에 새로 마련된 공부방 사진
동대문구가 한국마사회 렛츠런재단과 손잡고 시작한 ‘작은 소원 들어주기 사업’(이하 작은소원 사업)은 지난 6월 동대문구청이 ‘2015년 한국마사회 전략기부금 사업’에 선정되면서 시작됐다.
구는 모두 4500만원의 기부금을 지원받아 동대문구사회복지협의회와 함께 이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먼저 취약계층 중에서 주거 환경이 열악한 15가구를 선정하고 바로 개선 공사에 들어갔다. 발 빠른 추진력 덕분에 지난 8월부터 4개월 동안 지완이네를 비롯한 13가구가 혜택을 받았다.
휘경2동서 위탁가정에 사는 6학년 진영이(가명)도 형편은 비슷했다. 평소 학업성적이 우수하고 학급 부회장을 할 만큼 씩씩한 성격이지만 작아진 책상엔 앉을 수도 없고 몇 년 전 구청에서 지원한 컴퓨터는 망가진 지 오래다.
작은소원 사업을 통해 진영이 공부방에 도배‧장판을 새로 하고 침대, 컴퓨터까지 새로 들이자 완전 다른 방이 됐다. 판사가 돼 상처받는 사람이 없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진영이는 “꿈이 한 가지 더 생겼다. 나중에 어른이 되면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창문도 없는 컴컴한 방에서 세 자녀를 키우던 이문1동 한부모가정 집은 창문을 크게 내고 조명도 환하게 바꿨다. 아들이 학교폭력 피해자로 심리치료를 받고 있던 터라 엄마는 “집수리는 엄두도 못 냈는데 이렇게 집이 환해지니 치료중인 아이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고마워했다.
이 밖에도 천장이 내려앉아 사고의 위험에 노출돼 있던 장애인 가정, 보일러가 망가져 찬 바닥에서 겨울을 나야했던 홀몸어르신 부부도 새 보금자리에서 따뜻한 겨울을 맞이할 수 있게 됐다.
유덕열 동대문구청장은 “작은 소원사업이 주거환경이 열악한 취약계층에게 큰 희망을 선물하고 있다”면서 “이웃들의 어려움을 함께 고민하고 풀어나갈 수 있도록 꼼꼼한 복지행정을 이어 나가겠다”고 밝혔다.
한편 렛츠런재단은 한국마사회가 2014년 설립한 사회공헌재단이다. 정서장애 청소년을 치료하는 승마힐링사업을 비롯해 다문화가정 말문화 체험 등 참여형 공헌활동을 통해 취약계층의 자립을 돕고 있다.
김정훈 기자 ilyo11@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