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김상석 기자 kss@ilyo.co.kr | ||
그러나 부산아시안게임을 정점으로 ‘두 선수단의 마찰이 위험수위에 이른 게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적지 않다. 과연 두 세력의 대립이 한국 마라톤을 발전시킬 ‘선의의 경쟁’이 될 것이냐 아니면 ‘제살 깎아 먹기’가 될 것이냐에 체육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한국 마라톤이 중흥기를 맞은 것은 1987년 코오롱 마라톤팀이 창단되면서부터. ‘한국마라톤의 대부’로 불리는 고 정봉수 감독이 김완기 황영조 이봉주 권은주 등 세계적인 선수를 잇달아 키워내며 한국 마라톤사를 새로 쓰기 시작했다.
90년대 이른바 ‘정봉수 사단’에서 나온 한국 최고기록만 무려 7번. 2시간20분대에 머물던 한국 남자 기록을 2시간7분대로 단축시키며 세계 정상권에 올려놨다.
김완기의 잇단 한국 최고기록 수립, 92년 황영조의 바르셀로나올림픽 제패, 이봉주의 96년 애틀랜타올림픽 은메달과 98로테르담대회 한국신기록(2시간7분44초) 작성, 97년 권은주의 여자 한국 최고기록 수립(2시간26분12초) 등 경이적인 성적들을 쏟아냈다.
하지만 10년이 넘게 쌓아온 코오롱의 마라톤 신화는 한순간에 무너졌다. 99년10월 이봉주를 비롯한 선수 8명이 오인환, 임상규 코치(현 삼성 남녀팀 감독)에 대한 구단의 무분별한 인사에 반기를 들고 집단 이탈하면서 코오롱시대는 막을 내렸다.
코오롱은 팀 해체 위기까지 직면했으나 2000년 지영준 등을 스카우트하며 간신히 팀을 유지하게 됐다. 코오롱 이탈 선수들과 오인환 임상규 코치는 무소속 상태로 99년 추운 겨울을 버텼다. ‘홀로서기’ 훈련을 실시하며 새로운 팀의 창단을 기다렸던 것.
결국 2000년 2월 이봉주가 도쿄마라톤에서 극적인 한국 최고기록(2시간7분20초)을 세우면서 새로운 팀의 창단에 대한 열기가 높아졌고, 정치권까지 나선 끝에 대한육상경기연맹 회장사인 삼성그룹이 4월 팀 창단을 공식 발표했다.
삼성은 각종 지원을 육상계에서는 전례가 없는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고 경보팀까지 창단했다. 아예 육상단을 세계 최고로 평가받는 반도체 사업장에 맡겨 ‘마라톤도 삼성이 하면 다르다’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창단 3년을 보내고 있는 삼성은 아직 ‘절반의 성공’으로 평가받는다. 이봉주의 보스턴마라톤 우승(2001년)과 2002부산아시안게임 2연패 달성도 있었지만 2000년 시드니올림픽 메달 획득 실패, 권은주의 긴 슬럼프, 차세대 주자들의 부진 등 어두운 면도 만만치 않기 때문.
오히려 정남균 김제경 등 최고 선수들을 스카우트하고도 이렇다할 성적을 못내 “코오롱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비아냥에서 완전히 탈피하지 못한 실정이다. 망가질 대로 망가졌던 코오롱의 경우 지난해부터 재도약에 나서고 있다.
아직 이봉주와 권은주에 필적할 만한 스타플레이어는 배출하지 못했지만 ‘고 정봉수 감독의 유작’으로 불리는 지영준이 2001년 춘천마라톤에서 2시간15분32초로 우승했고, 2002년 3월에는 임진수가 동아마라톤에서 국내 1위(전체 3위)를 차지했다.
모두 라이벌 삼성의 차세대 주자들을 제압한 것이다. 삼성은 부산아시안게임 우승으로 건재를 과시한 이봉주가 2004년 아테네올림픽까지 뛸 예정이어서 아직은 여유가 있다. ‘이봉주 따라잡기’에 대한 코오롱 신예들의 각오도 대단하지만 ‘절대 코오롱에게는 지지 않는다’는 이봉주의 다짐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성으로선 ‘포스트 이봉주 시대’의 스타플레이어가 절실하기만 하다. 삼성은 오는 12월 후쿠오카 마라톤에 용병 존나다사야와 정남균을 동시에 출격시켜 ‘이봉주 외에 삼성에서 길러낸 스타가 없다’는 혹평을 뿌리칠 계획이다. 유병철 스포츠투데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