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종국(23•페예노르트) | ||
비록 두 달여라는 길지 않은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거친 유럽 무대에서 치열한 생존 경쟁을 벌였던 경험이 송종국을 더 크게 보이게 했는지도 모른다. 월드컵 4강 신화를 일군 멤버들이 그대로 출전했던 브라질전은 지난 6월의 열기를 그대로 느끼게 했지만 몇몇 태극전사들의 인기와 위치는 격세지감을 느끼게 할 만큼 천양지차였다.
특히 송종국이 그랬다. 유럽 빅리그로의 진출을 꿈꾸며 네덜란드에서 ‘달리는 폭주 기관차’의 진가를 보이는 송종국과 한 행사장에서 의미 있는 데이트를 했다.
오른발 허벅지 부상을 당한 뒤 귀국한 송종국은 처음엔 브라질전 경기가 부담스러웠다고 한다. 부상중이기도 했지만 비행에 따른 피로 누적으로 팀에 복귀 후 후유증이 클 거라는 염려 때문. 솔직히 구단과 에이전트쪽에 압력(?)을 가하기도 했다.
두 달여 동안의 네덜란드 리그에 대한 소감이 궁금했다. 지금까지 챔피언스리그를 포함해 모두 14경기에 출전했을 만큼 페예노르트의 주전 선수로 자리매김을 한 터라 어느 정도 자신감도 붙었을 것 같았다.
“한국 축구가 거칠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외국 나가보니 그쪽 선수들이 더 거친 것 같아요. 몸싸움도 심하고 태클도 깊고. 특히 그라운드가 질어서 뛰는 것만으로도 힘이 들 정도예요. 볼 컨트롤이 잘 안되니까요.”
한국에서보다 몇 배 이상의 집중력이 요구되는 네덜란드 잔디는 동양 선수 송종국한테 혹독한 시련을 안겨줬다. 잔디 적응도 힘들었지만 해외 진출 선수들한테 숙명처럼 다가오는 언어 소통 문제는 최악의 스트레스였다. 팀 훈련에 참가한 첫날부터 3일 정도는 운동장에 나가는 일이 두려울 만큼 힘이 들었다고 한다.
송종국이 네덜란드에서 축구 외에 가장 많은 시간을 쏟아 붓는 일이 언어 공부다. 영어와 네덜란드어를 동시에 배우고 있는데 구단에서 소개해준 사람 외에 별도로 개인 교사를 두고 언어 학습에 매달리고 있다.
“옛날에 지금처럼 공부했다면 장학금 받았을 것”이라며 우스개를 흘릴 만큼 외국어 습득은 큰 숙제이자 반드시 해결해야할 과정이다. 송종국이 네덜란드에서 가장 크게 눈을 뜬 부분이 있다면 진정한 프로선수의 의미를 알았다는 점이다.
언론을 대하는 태도도 사뭇 달라졌다. 무조건 친근함을 나타내기보다는 나름대로의 기준을 가지고 취사선택할 줄 아는 요령도 터득했고 좋지 않은 기사가 보도될 경우 대처하는 배짱도 키웠다. 그만큼 아쉬울 게 없다는 소리다.
성경과 찬송가를 끼고 자유분방한 네덜란드에서 수도승처럼 살고 있다며 활짝 웃는 송종국은 귀국할 때까지만 해도 홍명보, 황선홍의 대표팀 은퇴 소식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기자가 전하는 소식에 한번 더 사실 여부를 확인하며 이런 멘트를 남긴다. “숙제를 남겨주시고 떠나시네요. 다음 월드컵 때면 나를 포함한 후배들이 숙제를 잘했는지 못했는지 판가름이 나겠죠.”
충청도 산골 마을에서 코흘리개 시절을 보냈던 송종국. 불과 1년 전만 해도 K리그 신인상 수상을 위해 호텔을 순회했을 때의 풋풋함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단 ‘실력’이란 총알을 최신형 무기에 장착한 네덜란드 리그의 ‘루키’로 변해 빅리그로의 도약을 꿈꾸는 프로선수만 존재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