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스타들 중에는 이처럼 한창 잘나가는 시기에 본의 아니게 은퇴의 길을 걷는 사례가 많다. 물론 부상으로 선수 생명에 치명타를 입어 어쩔 수 없이 은퇴를 선택한 사례가 대부분이지만, 체력적으로 문제가 없는 상황에서 오로지 주변 상황 때문에 은퇴를 택해야 했던 경우도 있었다. 특히 후자의 경우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뤄진 결정이라는 점에서 선수들은 은퇴 후에도 선수생활에 대한 미련으로 많은 정신적 고통을 겪게 된다.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의 장윤경(22·이화여대 4년)은 비인기 종목의 척박한 현실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은퇴하는 대표적인 케이스. 싱크로에 관한 한 국내 일인자인 장윤경은 부산아시안게임에서 국내 싱크로 사상 최고 성적(2위)을 거두고도 대학 졸업 후 갈 곳이 없어 더 이상 선수 생활을 지속할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국내에는 싱크로나이즈드 실업팀이 전무한 상태다.
장윤경은 “관계자들조차도 선수들의 진로에 대해 너무 무신경한 것 같다”고 서운함을 표시하면서 “나보다는 민정이가 더 안됐다”며 자신의 듀엣인 후배 김민정(21·이화여대 3년)의 진로를 걱정했다. 장윤경은 졸업 후 대학원에 진학해 교수로 ‘전업’할 계획.
▲ 박태하 | ||
당시 박태하와 함께 은퇴한 박형주 동래고 코치(30)는 “태하 형은 고액 연봉자인 데다, 2001시즌을 끝으로 FA자격을 취득한 상태였는데, 구단이 이에 대해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며 모종의 압력이 있었음을 암시했다.
이에 대해 포항구단의 한 관계자는 “박태하가 1년 정도 더 뛰겠다는 의사를 표시한 것은 사실이지만 선수 자신을 위해 당시의 위치에서 은퇴하는 것이 모양새가 좋을 것 같아 은퇴를 권유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태하는 올 시즌 포항의 스카우트로 잠시 일한 뒤 독일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고 있다.
잘나가던 고교 축구 선수가 본의 아니게 축구화를 벗은 사례도 있다. 포철공고 시절 부동의 오른쪽 사이드 어태커로서 이동국과 함께 4회 우승의 신화를 달성했던 최용덕(23·삼육대 4년)이 주인공. 대학(영남대)에 진학한 최용덕은 체육학과가 아닌 무역학과로 배정된 데 불만을 품고 1년 반 만에 자퇴, 화려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이후 우여곡절 끝에 삼육대 생활체육과에 편입, 붕어빵 장사로 학비를 조달하면서 모범적인 생활을 한 최용덕은 다행히 졸업을 앞두고 실업팀 한국전력에 입단하게 돼 3년 반 만에 축구화를 다시 신게 됐다. 얼마 전 중앙대 체육교육대학원에 당당히 합격한 최용덕은 “체육교사가 꿈이지만 기회가 된다면 태극마크를 달고 뛰고 싶다”며 선수로서의 부활을 예고했다.
한편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 수비수인 ‘타이거 윤’ 윤태웅(26·동원 드림스)은 본의 아니게 선수생명이 중단될 뻔한 선수다. 지난 11월19일 경기 도중 자신이 친 퍽에 맞아 광운대의 최승호(21)가 절명하면서 커다란 실의에 빠졌던 것. 윤태웅은 당시의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는 스틱을 잡지 않겠다’며 은퇴를 선언,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하지만 최승호의 아버지 최기식씨(56)가 직접 윤태웅을 찾아가 “절대로 운동을 포기하면 안 된다. 이젠 네가 내 아들이니 승호 몫까지 뛰어달라”고 당부했고, 이에 윤태웅은 힘들게 다시 스틱을 잡았다. 여기에는 팬들의 따뜻한 격려와 위로도 큰 힘이 됐다.
동원구단측도 “아직까지 심리적 불안에서 벗어나진 못했지만 서서히 훈련에 참가하면서 아픔을 잊으려 노력하고 있다”며 그의 복귀를 기정사실화했다.
한재성 스포츠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