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 박경완 | ||
협상에서 선수도 구단도 옛정 따위는 봐줄 계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성적이 엄연히 선수의 가치를 정하지만 상품이란 포장하기 나름. 성적 이외의 협상의 기술과 비즈니스 감각을 필요로 한다. 협상의 테이블에 앉은 FA 선수들은 어떤 협상 기술을 발휘할까?
올해 FA를 선언한 안경현(32·두산) 박경완(30·현대) 박정태(33·롯데) 강상수(31·롯데). 이들 역시 연봉협상이라면 수없이 해보았겠지만 FA, 즉 ‘팀을 떠날 수도 있는 선수’라는 꼬리표를 달고 협상테이블에 나서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FA 협상에서 7년간 42억원이라는 가장 파격적인 요구를 한 박경완은 일단 지르고 보는 선전포고형. 7년이라는 장기 계약도 놀랍지만 42억원이면 국내 최고 대우라고 할 수 있다. 지난해 양준혁이 삼성으로부터 4년간 23억2천만원을 받았던 것이 지금까지 최고였다.
일단 이렇게 ‘질러’ 놓으면 많은 관심이 쏟아지게 마련이다. 도가 지나쳐 협상이 자칫 과열된 분위기로 흐를 수도 있지만, 적당한 언론과 팬의 관심은 주도권을 잡기에 그만이라는 것이다.
박경완의 또다른 협상 전술은 ‘흥분금물’. 구단과의 첫 협상에서 자신이 4년 이상이라는 마지노선을 제시했지만 3년 제시하자 그는 그가 던진 단 두 마디 “참 너무하네. 할 말 없으면 일어나죠”였다. 95년도 연봉협상 결렬 때 바로 뛰쳐나가서 문을 부서질 정도로 찬 것에 비하면 ‘양반’이 다된 셈이다.
▲ 롯데 박정태(왼쪽), 두산 안경현 (오른쪽) | ||
박정태는 여론 주도형이다. 인터넷에 올린 글로 톡톡히 재미를 봤다. 첫 협상에서 구단이 자신에게 1년 계약을 제시하자 ‘프랜차이즈 스타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는 일’이라며 바로 구단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롯데를 떠난다’는 심경고백을 올렸다.
팬들은 구단을 비난했고 결국 그의 ‘심경고백’은 협상에 큰 도움을 줬다. 롯데구단은 걸출한 스타 마해영을 방출해 팬들로부터 비난을 받은 적이 있다. 때문에 박정태의 고백은 더욱 팬들을 자극시켰는지 모른다.
박정태는 인터넷 상에 심경고백을 한 탓에 백인천 감독에게 ‘경솔했다’는 핀잔을 들어야 했지만 결국 백 감독의 지지를 얻어냈다. 그는 “팬들의 지지가 협상에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팀의 강상수는 ‘화합’을 강조하는 형이다. 강상수는 처음에 FA를 포기할 것으로 보였지만 결국 협상의 테이블에 앉았다. 그는 “법적 대리인이 있었으면 좋겠지만 아직 한국은 그럴 분위기가 아니다”며 구단과의 ‘대화’를 강조하는 스타일. 그가 협상을 준비하는 방법도 간단하다. 스포츠지 기자들과 전화하면서 대충 돌아가는 사정을 파악하는 정도다.
▲ 롯데 강상수 | ||
안경현의 최종 목표는 두산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지도자가 되려면 다른 팀도 겪어봐야 한다며 다른 팀에 가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는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답답함을 참고 ‘천천히’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구단의 페이스에 말리지 않기 위함이다.
이들 모두 협상 테이블에서는 비즈니스맨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운동만 하던 사람에겐 ‘입’으로 자신을 설명하고 ‘돈’이야기에 얼굴을 붉히는 것을 부담스럽다.
그래서 FA 선수들은 한결같이 ‘에이전트’가 대신 일을 처리해주기를 원한다. 그러나 아직 구단이 이런 제도의 도입을 거부하고 있고 또한 선례도 없어 선수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