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심신라면배가 2라운드를 마친 상황에서 중국은 세 명, 일본은 두 명, 한국은 이세돌 9단 한 명만이 남았다. 하지만 바둑팬들은 큰 승부에 강한 이 9단이 기적을 만들기를 바라고 있다.
그런 구리가 농심신라면배에서 다시 사고를 쳤다. 부산 농심호텔에서 속개된 2라운드에서 중국의 세 번째 주자로 나선 구리는 2연승을 달리던 최철한을 꺾더니 일본 고노 린과 한국의 에이스 박정환까지 무너뜨렸다. 3연승. ‘충칭의 별’(충칭은 구리의 고향. 인구 3000만의 충칭시에서 구리는 최고의 스포츠 스타로 꼽힌다)에서 ‘부산의 별’로 거듭 났다.
구리가 3연승을 거두면서 올해 농심신라면배는 급격히 중국 쪽으로 기울었다. 중국이 구리를 필두로 렌샤오, 커제가 대기하고 있는 반면 일본은 이야마 유타와 무라카와 다이스케만을, 한국은 그것보다 못해서 이세돌만을 남겨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박정환의 패배는 아팠다. 최철한이야 2연승을 거뒀으니 그럴 수 있다 쳐도 랭킹1위 박정환이 역할을 못해주면 상대적으로 층이 엷은 한국은 우승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다. 송태곤 9단은 “구리 9단이 중국에서 세계대회 우승 경험이 가장 많은 만큼 저력이 있는 기사다. 농심신라면배에서는 그동안 1승 4패로 명성에 비해 부진했는데 모두 마지막 주자로 나와 거둔 성적들이었다. 이번엔 3장으로 나왔는데 결과적으로 중국이 오더를 잘 짰다. 구리가 부담을 느끼면 많이 흔들리는 스타일인데 3장으로 나오면서 편하게 자기 스타일로 두어나간 것 같다”고 구리의 상승세를 평했다.
구리 9단
그렇지만 일각에서는 ‘올해 농심신라면배가 이제야 재미있게 되었다’고 기대하는 이들도 있다. 바로 한국의 마지막 주자 이세돌 9단을 믿고 하는 소리다. 이세돌은 그동안 농심신라면배에서 부진했다. 예선을 통과하지 못해 출전 횟수조차 몇 번 되지 않았다. 또 이창호 9단에게 번번이 밀려 와일드카드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올해는 ㈜농심과 한국기원이 이세돌 9단의 상징성과 스타성, 중국에서의 인지도 등 여러 요인을 감안해 이세돌 9단을 와일드카드로 추천했다. 이세돌 9단은 후배들을 추천하며 몇 차례 와일드카드 출전을 고사했지만 바둑팬들과 스폰서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와일드카드 요청을 수락했다.
이세돌이 그동안 농심신라면배에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은 이유는 세계대회 개인전보다 판이 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추정된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우승상금이 2억 원에서 5억 원으로 대폭 증액됐다. 만일 이세돌 9단이 4연승으로 우승을 결정짓는다면 우승상금을 5명이 나눠도 우승상금과 연승상금, 끝내기 수당까지 더해 2억 원은 가뿐히 수중에 넣을 수 있다. 큰 승부에 강한 이세돌 9단이 이런 찬스를 놓칠 리가 없다는 것. 이게 아직 승부가 끝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기대다.
최근 화제를 모으고 있는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는 2005년 제6회 농심배 이창호 9단의 5연승 신화를 재조명해 주목을 받았다. 과연 이세돌은 그에 필적하는, 아니 아마도 넘어설 것으로 보이는 기적을 만들 수 있을까. 우승국이 결정될 3라운드는 2016년 3월 1일부터 중국 상하이에서 속개된다.
유경춘 프리랜서
‘한국킬러’ 커제 누가 잡을까 ‘배짱 두둑’ 이동훈 주목! 최근 한국바둑의 화두는 과연 누가 커제의 목에 방울을 매달 것이냐다. 올해 중국을 대표하는 기사로 떠오른 커제는 특히 한국 기사들에게 강한 면모를 보여 ‘한국기사 킬러’로 불린다. 이동훈 5단(오른쪽)이 이민배 세계신예바둑최강전 결승전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대국 전 구쯔하오 4단과 돌을 가리는 장면. 사진제공=한국기원 11세에 입단한 커제는 일찍부터 유망주로 꼽혔지만 별로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했다. 그런데 올해 갑자기 성적을 내기 시작하더니 국내외 4관왕에 오르며 폭발하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한국바둑으로선 골칫덩이를 만난 셈인데, 이 커제라는 어려운 수수께끼를 이동훈이 풀어냈다. 이동훈은 12월 1일 중국 항저우에서 열린 2015 이민배 세계바둑신예최강전 준결승전에서 커제를 무너뜨렸다. 180수 만의 불계승. 형들이 못한 일을 아우가 해냈다. 더 기분 좋은 것은 이동훈이 커제보다 어리다는 것. 커제는 97년생, 이동훈은 한 살 어린 98년생. 요즘 바둑계에서 나이가 어리다는 것은 무조건 선(善)이다. 배짱이 좋아 누구를 만나도 주눅들지 않는 게 이동훈의 강점이다. 커제가 한참 잘나갈 때에도 “뭐, 둬볼만하다. 별로 지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인터뷰 한 바 있는데 이번에 자신의 말을 지켰다. 국가대표 코치 최명훈 9단은 “아직까지는 신진서를 주목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제부터는 이동훈을 눈여겨보라고 권하고 싶다. 이미 타이틀 획득 경험도 있고 무엇보다 성실하다. 특히 쉽사리 감정에 휘둘려 판을 그르치는 법이 없다.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게 최대 강점이다”라고 이동훈을 말한다. 준결승전에서 커제를 상대로 너무 힘을 뺀 탓일까. 결승에서는 이미 한차례 이겨봤던 구즈하오에게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다. 하지만 커제를 꺾은 것은 바둑팬들의 가슴을 뻥 뚫리게 만들어준 낭보임이 틀림없었다. [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