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전시티즌 이태호 전 감독은 2002시즌 정규리그에서 단 1승만을 기록한 채 사퇴했다.(왼쪽), 최순호 감독 | ||
농구계에서는 고려대가 성적 부진의 책임을 물어 새 사령탑으로 모교 출신인 이충희 전 창원LG 감독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현역 시절 화려한 플레이로 각광을 받았던 스타급 선수들이 은퇴 후 지도자의 길로 걷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구단에서도 스타 플레이어라는 상품성 때문에 선호하는 것이 사실. 하지만 문제는 스타 플레이어가 반드시 스타 감독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제2의 전성기를 꿈꾸는 스타 플레이어 출신 감독들의 명암을 따라가 봤다.
이태호 전 대전시티즌 감독(41). 87년 4월4일 프로축구 포항과의 개막전에서 오른쪽 눈을 다쳐 거의 실명(시력 0.02)이 되다시피 한 눈을 가지고 후반기 개막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할 정도로 선수 시절, 기술축구의 대명사로 불렸다.
동의대 감독을 거쳐 99년 9월, 6개월간 브라질 축구 리포트를 한 뭉치 안고 들어온 그가 의욕적으로 둥지를 튼 곳은 대전시티즌이었다. 2002 FA컵에서는 창단 첫 우승이라는 선물을 팀에 안겨주기도 했지만 정규시즌(1승11무15패)의 처참한 성적은 그에게 사퇴라는 압력을 불러일으켰다. 지더라도 공격적인 기술축구를 보여주겠다고 의욕을 불태웠음에도 불구하고 열악한 구단 재정과 얕은 선수층은 의욕이 클수록 큰 실망을 가져올 뿐이었다.
최순호 포항스틸러스 감독(40) 역시 어떤 색깔의 축구를 보여줄지 많은 관심을 모았던 스타급 선수 출신의 감독이다. 한국축구의 스트라이커 계보를 말할 때 빠지지 않은 최 감독이지만 화려했던 선수 시절의 명성에 비한다면 아직 사령탑을 맡은 이후 이렇다할 성적을 내놓지는 못하고 있는 게 사실. FA컵에서 2년 연속 팀을 결승전까지 진출시키기도 했지만 우승컵을 가져오지는 못했다.
▲ 강만수 전 감독(왼쪽), 이충희 전 LG세이커스 감독 | ||
하지만 이런 그도 93년 지휘봉을 잡은 이후 항상 웃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93•94슈퍼리그에서 팀을 연속 우승시키며 성공적으로 감독 데뷔를 하는 듯했지만 이후 신생팀 삼성화재의 높은 벽에 막혀 만년 준우승에 만족해야만 했다. 결국 그는 삼성화재의 벽을 넘지 못하고 쓸쓸한 퇴장을 하고 말았다.
프로농구에서도 엎치락뒤치락 하는 치열한 순위다툼만큼이나 성공한 선수 출신들이 안정된 감독생활을 하기엔 만만치 않아 보인다. 80년대 실업농구의 명문이었던 현대전자에서 함께 선수생활을 했던 이충희 전 창원LG 감독(45)과 박수교 전 울산모비스 감독(46)이 대표적인 케이스.
이충희 전 감독은 탄탄한 수비농구로 팀을 정비하며 80년대 슛도사의 플레이를 잊지 못하는 올드팬들의 향수를 자극, 웬만한 선수 못지 않은 인기를 구가하기도 했지만 결국 중도 하차하는 운명을 거부하지는 못했다.
현역 시절 당시 농구대잔치 베스트5와 최우수, 우수 선수에 들지 못하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맹활약을 펼쳤던 박수교 전 감독이었지만 지도자의 길은 그렇게 순탄하지 않았다. 두 시즌 연속 플레이오프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시기도 했으며 김영만, 강동희 등 걸출한 선수들을 이끌고도 시즌 최하위의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프로야구에서는 김재박 현대 유니콘스 감독(48)과 김성한 기아 타이거즈 감독(44)이 쉽지 않은 스타 플레이어 출신 감독이라는 간판을 유지해 가고 있다. ‘미스터 롯데’로 불리기도 한 김용희 전 롯데 감독(47)도 그의 야구인생에서 마이너스로 기록될 아쉬움을 남기며 물러나야 했다.
스타 해설가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허구연 MBC해설위원 역시 지휘봉을 잡은 적이 있지만 해설할 때의 날카로운 면모를 보이지 못하고 다시 마이크를 잡아야만 했다. 이처럼 스타 선수가 스타 감독으로 승계(?)되는 것은 평범한 현역 생활을 거친 선수보다 더 어려워 보인다. 학교에서의 1등이 사회에서도 반드시 1등이 아니라는 평범한 사실이 스포츠계에서도 통하는 모양이다. 김남용 스포츠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