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도 대학 시절 때나 프로에 입단해서 사투리 때문에 울고 웃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특히 대학시절에는 제주도를 제외한 각 지방 선수들이 함께 숙소 생활을 했기 때문에 필자처럼 서울 출신들은 더욱 힘들었다.
코스는 거의 똑같다. 제일 먼저 영화 한 편을 때린다. 당시 야구선수한테 영웅은 선동열이 아니라 주윤발이라 무조건 홍콩 영화를 챙겼다. 사실 영화 보기는 힘든 일이 아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영화보고나면 한잔 하는 게 기본 아닌가. 그렇다고 남자끼리는 죽어도 안 먹는다. 그래서 자리를 잡고 나면 그때부터는 필자가 활약한다.
한번은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선배 3명과 영화를 보고 종로에 갔는데 그 날도 길 가던 여학생과 부킹에 성공해서 술자리까지 동석시킬 수 있었다. 여학생들은 우리가 야구선수라는 사실을 알고 호감을 나타냈지만 술자리가 무르익어 갈 때쯤 그만 경상도 선배가 오버를 하고 말았다.
그날 선배들이 했던 말들을 그대로 옮겨보면 어떤 분위기였는지 상상이 갈 것이다. 먼저 경상도 선배가 “아, 고마 오늘 술 먹고 콱 죽어뿌자. 술빼는 놈들 대가리 뽀사뿐다”라고 하자 전라도 선배가 “맞는 말이여. 원샷 안 하는 것들 뒷산에 묻어불랑께. 아따 오늘 술맛 한 번 허벌나게 좋아불구만”이라고 응수하자 충청도 선배 왈, “냅둬 알어서들 먹겄지 뭐∼. 시간에 좀이 먹어 모래알에 싹이 터∼.” 그 순간 여학생들은 1.5초 만에 밖으로 뛰쳐나가 버렸다.
필자는 93년 시즌을 마치고 해태로 트레이드됐다. 그래서 92년생 아들놈은 두 살 때부터 광주에서 자랐다. 이름이 ‘청하’인데 95년 어느 날 서울에서 친할아버지가 전화를 했고 청하가 스피커폰으로 받았다. 할아버지가 “청하야 밥 묵었나” 하니까 “네. 밥묵었는디요 잉”하는 게 아닌가.
네 살짜리 입에서 나온 말이다. 운동선수는 어디에서건 승부욕을 발휘한다. 당구장에서도 마찬가지다. 해태 시절 선수들과 당구를 치고 있는데 경상도 선수가 ‘쫑(당구 용어)’이 나자 “아, 또 쫑이 나노. 니기X”라고 하자 전라도 선수는 “워메. 환장허겄네. 또 쫑나부러야”하면서 큐대를 땅에 찍는다. 그때 필자는 그랬다. 아주 착한 말투로 “아이. 또 쫑이나네. 얄미운 당구알”이라고. SBS 해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