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분방한 성격에 록을 즐기는 이상훈(왼쪽)은 줄곧 갈기머리를 고수해 왔다. 오른쪽은 이천수. | ||
스포츠계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비주얼을 강조하는 영상시대답게 단지 경기에 임하는 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팬들을 의식한 다양한 시각적 변신이 시도되고 있는 것.
특히 인기를 생명으로 하는 프로선수들은 ‘팬 서비스’ 차원에서 외적인 자기관리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머리카락을 염색하는 것은 일반적인 현상이 됐다.
변신이 미덕인 시대적 조류에다, 신세대 스타들의 등장으로 그동안 볼 수 없었던 빨강, 파랑, 초록 등 총천연색 머리카락이 그라운드를 휘젓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자신만의 개성을 뽐내며 그라운드에 색다른 바람을 불어넣고 있는 스포츠스타들의 독특한 헤어스타일과 그에 얽힌 사연을 뒤쫓아봤다.
팀마다 정해진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나서야 하는 스포츠스타들에게는 머리카락이 가장 흔한 변신 도구다. 예전에는 ‘스포츠형’으로 짧게 깎는 것이 불문율처럼 여겨졌지만, 언제부턴가 ‘장발형’이 등장하더니 이제는 ‘염색형’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시대가 됐다.
김주성으로 대변되는 ‘삼손형’ 장발의 전통을 이어받은 선수는 야구의 이상훈(LG)과 축구의 안정환(시미즈 S펄스). 모자를 착용해야 하는 종목의 특성상 ‘모발의 변형’이 상대적으로 부자연스러웠던 야구계에서 이상훈이 줄곧 갈기머리를 고집해온 이유는 단순히 ‘멋’ 때문은 아니었다.
평소 얽매이는 것을 싫어하는 자유분방한 성격과 록음악을 즐기는 독특한 취향이 한몫했다. 이상훈은 최근 홍대 앞 창고극장에서 무대에 올라가 긴 머리를 늘어뜨린 채 직접 기타를 연주하며 훌륭한 노래 솜씨를 뽐낸 적도 있다.
▲ 안정환이 예전의 ‘테리우스’ 스타일(위)에서 ‘아줌마 파마’로 변신한 후 월드컵에서 맹활약을 펼쳤다. | ||
길이는 짧아지고 웨이브의 강도가 더해진 안정환의 신식 헤어스타일은 하지만 미용사의 실수에 의한 ‘실패작’이었다는 후문. 평소 뻣뻣한 머리를 부드럽게 하기 위해 웨이브를 주던 과정에서 머리카락이 지나치게 꼬부라진 것이었는데, 공교롭게도 그 헤어스타일을 한 채 본선무대에서 잇달아 골을 터뜨려 머리에 관한 관심과 인기가 높아지면서 다른 스타일로의 변형은 생각할 수조차 없게 됐다.
월드컵 직후 ‘완전 탈색’의 ‘백호머리’를 선보여 팬들을 경악케 했던 이천수도 원래는 ‘브리지’를 주문했으나 작업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자 아예 전체를 흰색으로 도배(?)한 것이라고.
위의 선수들이 모발을 ‘멋 내기’의 도구로 활용한 경우라면, 이와 반대로 신체의 비밀을 감추기 위해 머리 변화를 모색한 선수들도 있다.
축구의 ‘쌍라이트 형제’ 김기남(포항)과 김용희(성남)는 머리숱이 유난히 적거나 앞머리가 벗겨지는 콤플렉스를 커버하기 위해 머리카락을 완전히 밀어버린 케이스다. “머리를 민 뒤 훨씬 젊어 보인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는 김기남은 “실수를 하면 곧바로 눈에 띄니까 자연히 집중력까지 배가됐다”고 말한다.
성남의 김용희 역시 ‘백구’를 선택한 것이 경기력 향상에 도움이 됐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스킨헤드’로서의 고충도 없지 않다. 사흘에 한 번씩 면도를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는 데다, 자칫 상대방의 축구화에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것.
▲ ‘더벅머리 골잡이’ 설기현이 월드컵 이후 날렵한 짧은 머 리로 변신했다. | ||
축구나 농구에 비해 변신이 비교적 자유롭지 못했던 야구에서는 염색으로 인해 사건 아닌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98년 LG 투수 최향남이 노란 머리를 ‘원상복구’ 하라는 명령을 받고 염색을 아예 머리 전체로 확산시켜 ‘저항’했다가 이를 ‘항명’으로 간주한 코칭스태프로부터 1군에서 제외되는 아픔을 겪은 것이다.
모발 전문가들은 스포츠 선수들의 이러한 모발 변신을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농구스타 김승현(동양)이 헤어모델로 있는 박준 뷰티랩의 강민 팀장은 “특히 덥수룩한 더벅머리에서 짧은 머리로 바꾼 후 공격수로서의 스피드와 순발력이 더욱 돋보인다”며 축구스타 설기현(안더레흐트)의 변신에 높은 점수를 줬다.
하지만 강 팀장은 “잦은 염색이나 변형은 자칫 모발과 두피를 손상시킬 수 있다”고 설명하면서 “특히 캡을 착용하는 야구선수들은 청결을 위해 장발은 피하는 것이 좋다”고 충고했다.
한재성 스포츠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