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2일 일시귀국한 박지성과 이영표. | ||
‘말은 제주로, 사람은 서울로, 그리고 축구선수는 유럽으로 보내라’고 하지만 스타 없는 그라운드는 ‘앙꼬 없는 찐빵’이나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K-리그 흥행에 ‘빨간불’이 켜졌다.
이 때문에 K-리그 20주년 기념행사를 준비하는 등 재도약의 의욕을 보이고 있는 프로연맹과 팀의 간판스타를 잃어버린 구단,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를 그라운드에서 보지 못하게 된 팬들은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프로축구를 아끼는 사람들의 가장 큰 걱정은 대체로 ‘국내 축구의 스타선수에 대한 지나친 의존성’에 모아진다. 일부 마니아 계층과 서포터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관중들이 경기 자체를 즐기기보다는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선수를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에 스타선수의 부재는 관중 하락으로 직결된다는 것.
가뜩이나 주요 선수들의 잦은 대표팀 차출로 인해 프로축구가 위축된다는 비판이 일고 있는 마당에 핵심선수들이 아예 국내 무대에서 사라질 경우 흥행에 치명타를 입을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99년 프로축구에 오빠부대를 몰고 왔던 안정환이 이듬해 이탈리아로 진출한 뒤 관중 수가 격감했고, 지난해 월드컵으로 인해 불었던 사상최대의 축구붐도 이을용, 송종국, 홍명보 등의 잇단 이적으로 반짝 흥행에 그치고 말았다. 특히 국내 최고의 인기구단 중 하나인 부산은 걸출한 스타플레이어들의 연이은 이적으로 흥행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 지난해 8월18일 고별전을 벌이고 팬들에게 인사 하는 송종국. 그의 해외진출 이후 부산의 관객 수는 격감했다. | ||
스타의 부재는 성적에도 직결돼, 안정환이 MVP에 오른 99년 준우승을 차지했던 것이 K-리그를 떠난 2000년에는 6위로 처진 데 이어 송종국이 자리를 비운 지난해에는 9위에 머물렀다.
이에 대해 부산의 최만희 코치(당시 부단장)는 “종국이의 이적이 그토록 타격이 클 줄은 몰랐다”며 씁쓸해 했고, 김종환 중앙대 교수(체육학)도 국내 프로축구의 취약한 시장성을 언급하며 ‘스타 부재’를 걱정했다. ‘외국처럼 클럽시스템이 정착되지 않아 자생력이 취약한 국내 축구환경에서 스타들이 무작정 해외로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진 않다’는 것.
팬들의 안타까움은 더 하다. 포항의 한 팬은 홍명보의 재이적에 이어 이동국마저 군 입대로 빠지자 “이제 경기장에 갈 의미를 못 느낄 것 같다”며 허탈해했고, 지난해 월드컵 이후 가족단위로 프로축구장을 찾았다는 안양의 한 시민은 “이영표가 없으니 경기의 흥미가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올해 스타플레이어 김남일을 내보낸 전남 서포터스의 한 운영진도 최근 김태영이 해외진출에 실패한 데 대해 “그나마 다행”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해마다 여러 명의 용병을 데려오기 위해 거액을 쓰는데 이 돈으로 차라리 음보마와 같은 세계적 스타플레이어 한 명을 영입해 자리를 비운 스타 선수들을 대신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대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안양의 공식서포터스인 레드치타스의 김정현 회장(29)은 팀의 간판스타 이영표의 이적에 대해 “해외진출은 선수 개인은 물론 한국 축구 전체에도 도움이 되는 일이라 서포터 모두가 반기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핵심선수 한두 명만 빠져도 관중이 격감하는 현 세태에 대해서도 “구단들이 마케팅 타깃을 스타 선수 위주로 잘못 잡았기 때문”이라며 다른 차원의 논리를 전개한 김 회장은 “서포터스도 일반 관중들과 하나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해외진출’보다는 ‘잦은 대표팀 차출’이 더 문제라는 의견도 있다. 정종덕 SBS 해설위원은 “지난해 월드컵 때 1년 넘게 주력 선수들을 대표팀에 보내준 각 구단들을 생각해서라도 당분간 대표팀 차출은 자제되어야 한다”고 ‘대표팀 우선주의’를 비판하면서 경기의 질 향상과 팬 서비스보다는 팀 승리에만 치중하는 구단들의 태도에도 아쉬움을 나타냈다.
한재성 스포츠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