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01년 11월 텍사스 입단이 확정된 후 ‘환 한 얼굴’로 기자회견을 가졌던 박찬호. | ||
두 선수 모두 국내 언론과는 가끔 마찰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현지 언론과는 크게 충돌하거나 문제를 일으킨 적이 거의 없었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미국 언론의 태도에 적잖은 변화가 나타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는 대목이다.
박찬호는 사실 데뷔 초부터 현지 언론과는 상당히 매끄러운 관계를 유지해 왔다. 일찍부터 영어 공부에 몰두해 미국 기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었던 점도 좋은 인상을 주었고, 현지 언론의 인터뷰 요청이 있으면 거의 거절하는 경우가 없었기 때문에 ‘항상 이야기할 수 있는 친근한 선수’라는 좋은 이미지를 쌓았다.
물론 작년의 부진으로 몇 차례 인터뷰 거절 사건(?)이 있기는 했지만, 현지 언론과 큰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오프 시즌 FA(자유계약) 시장이 꽁꽁 얼어붙으면서 박찬호는 ‘잘못된 계약의 대명사’처럼 동네북이 됐다. 툭하면 레인저스 톰 힉스 구단주의 가장 멍청한 계약으로 ‘박찬호에게 5년간 6천5백만달러를 준 것’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물론 박찬호의 부상에서 비롯된 부진이 현지 언론의 뭇매를 맞은 가장 큰 원인이기는 하다. 그러나 사실은 박찬호의 에이전트인 스캇 보라스에 대한 미국 언론의 반감이 큰 작용을 한 면이 많다. 특히 박찬호뿐 아니라 같은 에이전시 소속인 알렉스 로드리게스도 틈만 나면 물고늘어지는 <댈라스 모닝 뉴스>의 경우는 보라스와 말도 건네지 않을 정도의 냉랭한 사이다.
그런 가운데 박찬호가 평균 연봉 1천3백만달러를 받으면서 9승8패의 부진을 보이자, 기다렸다는 듯이 집중 포화가 쏟아진 것. 지난 시즌부터 유난히 언론에 입을 다물고 있는 박찬호의 자세도 별로 득 될 게 없는 것이었다.
▲ 김병현(왼쪽), 최희섭 | ||
김병현의 경우는 약간 차이가 있다. 우선 의사 소통이 원활하지 못해 오해를 사는 경우가 많다. 데뷔 초만 해도 피닉스의 유력지 <애리조나 리퍼블릭>의 칼럼니스트 페드로 고메즈는 김병현의 대단한 팬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김병현에 대한 비판의 논조가 강해지기 시작하더니, 지난 시즌 막판에는 ‘김병현을 트레이드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직접 고메즈를 만나 이야기를 들은 바로는 ‘툭하면 선발 투수 전업을 주장하는 돈만 아는 이기적인 선수’라는 것이 김병현에게서 등을 돌린 이유였다. 마무리로서 뛰어난 활약을 보이고 있는데도 선발 전업을 계속 주장하는 것은 선발이 훨씬 돈을 많이 받기 때문이며, 팀의 사정이나 동료들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이기적인 행동이라는 것이 고메즈의 시각이었다.
그러나 김병현의 경우 꼭 돈 때문에 선발을 고집했던 것은 아니었다. 김병현의 투수로서의 꿈이 바로 선발투수이기 때문. 그렇지만 워낙 영어가 ‘짧은’ 데다 통역을 이용하기는 하지만 항상 언론 기피 현상이 있다보니 제대로 된 해명의 기회조차 스스로 박차, 더 큰 오해를 불러일으킨 측면도 적지 않았다.
김선우나 최희섭, 봉중근의 경우는 아직까지 언론과 자주 접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특기할 만한 상황은 없다. 그러나 세 선수 모두 마이너리그에서 많은 생활을 했기 때문에 언어 소통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들도 빅리그에서 활약을 하게 되면 현지 언론과 빈번한 접촉을 하게 된다. 당당하면서도 프로다운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희섭의 경우 항상 자신감과 웃음을 잃지 않아 현지 언론의 호감을 사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입다물기나 언론 기피는 결국 화살이 돼서 선수 자신한테로 돌아간다. 이왕이면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고, 운동장 밖에서도 아주 성실하고 훌륭한 한국인 선수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나쁠 이유가 하나도 없다.
올 시즌 우리 빅리거들이 먼저 헤쳐나가야 할 험한 산은 바로 현지 언론과 기자들이다. 민훈기 스포츠조선 미주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