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유상철을 박상철’로, ‘유부남을 총각’으로 부르며 사인을 요청하는 아줌마들을 상대로 여유있는 웃음을 흘리며 쭈그리고 앉아 사인을 해주는 모습이 참으로 정겹게 보인다.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실물이 훨씬 잘 생겼다”는 찬사를 뒤로하고 취중토크를 위해 횟집 안에 자리 잡은 그는 “이렇게 인기가 많은데 왜 CF 요청이 들어오지 않는지 모르겠다”는 말로 분위기를 띄웠다.
축구대표팀의 붙박이 멤버로, 은퇴한 홍명보, 황선홍의 뒤를 이어 ‘주장’ 완장을 차야 할 울산 현대 유상철(32)은 이렇듯 색다른 장소에서 시장 아줌마들의 엄청난 관심과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자연인 유상철’을 그대로 내보였다.
“CF요? 딱 한 번 찍어봤어요. 고추장 CF였는데 월드컵 직전에 촬영해서 몇 개월 동안 방송됐어요. 컨셉트는 고추장 먹고 힘내서 열심히 축구하는 선수들 모습이었죠.”
고추장과 유상철과는 쉽게 매치가 되지 않았다. 하긴 쌀 광고 모델로 나선 김남일을 생각하면 전혀 ‘그림’이 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유상철은 고추장 CF보다 좀 더 그럴듯한 광고를 찍고 싶어했다. 안정환이나 송종국처럼 직업 모델 같은 분장으로 남성미를 강하게 내비칠 수 있는 CF라면 무조건 OK!
술 이야기를 화두로 삼다가 95년 코리아컵대회 때 발생했던 음주파동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을 수 있었다. 홍명보, 황선홍, 강철, 유상철이 결승전을 앞두고 휴식날 가벼운 술자리를 가졌다고 한다. 그런데 결승전에서 잠비아를 상대로 맥없이 무너지자 사단이 벌어졌다.
당시 술자리 회동 장면을 목격했던 한 시민이 방송국에 제보를 했고 매스컴에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주축 선수들이 폭음을 했다며 비난의 화살을 퍼부었다. 그러나 유상철은 ‘분명히 휴식하는 날이었고 기분 전환 차원에서 가볍게 술 한잔을 하다 된통 당했다’며 지금도 억울해 했다.
유상철은 후배들보다는 선배들과의 술자리가 훨씬 편하다고 한다. 특히 고정운, 황선홍 등은 학교 선배이기도 하지만 친형처럼 따르고 좋아하는 ‘형’들이다. 그들과의 술자리에선 ‘막내’ 유상철이 분위기 메이커 노릇을 톡톡히 한다.
처음엔 황선홍의 ‘분위기를 띄우라’는 특명에 마지못해 시작하지만 신나는 노래에다 댄스를 곁들이며 ‘재롱’을 떨고 나면 그 다음 스테이지는 황선홍이나 홍명보, 고정운 순으로 무대가 돌아가게 마련.
“형들이 모두 떠난 지금은 내가 고참 노릇을 해야 하는데 아직까지 익숙지가 않아요. 선홍이 형이 은퇴하기 직전까지 내가 선홍이 형 ‘딱가리’를 했거든요. 그런 사람이 갑자기 주장(울산 현대 주장)이 됐으니 좀 당황스럽죠. 내 위에 선배가 없어요. 기댈 사람이 없다는 거, 참 쓸쓸하고 외롭더라고요. 나이에 밀려 고참이 되고 보니까 후배일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되네요.”
요즘엔 인터뷰 때마다 나오는 고정적인 질문이 있단다. “은퇴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은퇴 후의 계획은 어떻게 되시죠?” 이런 말을 들을 땐 정말 속이 상한다고. 체력이 허락한다면 2006년 월드컵을 끝으로 홍명보, 황선홍 두 선배처럼 아름다운 퇴장을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그다.
“명보형은 누가 봐도 카리스마가 강한 사람이에요. 대신 선홍이형은 정말 인간적이죠. 그 형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절로 빨려 들어가요. 푹 빠지게 돼죠(그래서인지 술집에 가면 황선홍이 가장 인기를 끈다고 한다). 명보형의 강함과 선홍이형의 부드러움을 배우고 싶어요. 거기에다 히딩크 감독만의 ‘철학’이 가미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죠.”
해외진출에 대해선 어느 정도 마음을 비운 듯했다. 지난해가 절호의 기회였는데 그 시기를 놓치고 나니 자신감이 상실됐다고 한다. 그래도 완전히 포기한 건 아닌가 보다. 단 미련을 갖고 있다보면 현실을 소홀히 할 수도 있을 거란 걱정 때문에 애써 외면하고 있다는 설명이 정확할 것이다.
“돈을 많이 벌고 싶어요. 만약 지도자가 됐을 때 돈에 구애받지 않고 선수들한테 떳떳할 수 있으려면 어느 정도의 재산은 있어야 되겠죠. 하고 싶은 일이요? 요리사 자격증도 따고 싶고 카레이서, 헤어디자이너도 꿈입니다.”
마지막으로 대표팀의 미남 안정환과 자신을 비교했을 때 누가 더 잘 생긴 것 같냐고 물었다. “그걸 어떻게 내 입으로….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정환이는 TV에서 봤을 때가 매력적이고 난 실물이 훨씬 좋아 보인다고. 이거 되게 쑥스럽네.”
부끄러워하면서도 할 말 다하는 남자였다. ‘유상철’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