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몽준 회장이 지난 19일 전현직 코칭스태프와 축구협회 임직원들과의 친선경기에 ‘선수’로 뛰었다. 우태윤 기자 | ||
정 회장은 지난 1월 대의원대회에 참석하는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축구협회 업무를 재개했다. 그는 안팎의 여론을 의식한 듯 정치적인 행보를 극도로 자제하며 축구 관련 행사에만 전념하고 있다. 하지만 축구협회에서의 위상조차 지금으로서는 안심할 수 없는 상태다.
우선 협회 법인화 문제가 ‘발등의 불’이다. 축구협회는 1년 예산이 4백40억원(2002년 기준)에 이르는 거대 단체이면서도 아직까지 임의단체로 남아 있다. 50여 개에 이르는 대한체육회 가맹단체 중 절반 가까이가 축구협회처럼 임의단체지만 예산이나 규모, 인지도 면에서 축구협회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협회 운영의 투명성을 요구하는 적지 않은 축구계 인사들이 사단법인화를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법인화될 경우 축구협회는 상급기관인 문화관광부(이하 문광부)의 감사와 지도를 받게 된다.
노무현 정부의 체육계 개혁 움직임도 정몽준 회장으로선 커다란 부담이다. 정부가 투명한 운영을 위해 축구협회의 법인화를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문화관광부는 축구협회를 비롯한 체육계의 개혁방안을 마련해 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광부 체육정책과 관계자는 “여러 가지 안을 두고 법인화 문제에 대해 검토를 했다. 법인화와 관련해 외부기관에 용역을 의뢰했고, 늦어도 4월 초에는 방침이 공식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문광부는 아직 구체적인 안을 내놓진 않고 있지만 축구협회의 법인화에 적극적인 입장이다. 노무현 정부가 인수위 시절 체육 관련 정책을 제시하면서 ‘축구협회의 사단법인화’를 강력히 추진한다는 입장을 밝혔고, 이 보고자료가 문광부에 그대로 전달됐다는 것도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법인화 논란에 대해 축구협회측은 아직 공식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문광부가 공식 입장을 밝히면 그때 가서 대응을 하겠다는 것이다. 정 회장은 법인화에 대해 지난 1월 대의원총회에서 “당장 그럴 생각은 없다. 차분히 고려해 보겠다”며 우회적으로 반대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사들을 비롯한 축구협회 고위층도 비슷한 입장이다. 이들은 법인화할 경우 협회 사업의 독자성이 침해받을 것을 우려하고 있다. 대의원총회에서 ‘득보다는 실이 많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법인화가 진행될 경우 가장 큰 쟁점으로 떠오를 부분은 재정 투명성. 그 과정에서 정몽준 회장의 자금 운용상 문제점이 본격적으로 거론될 가능성도 있다. 지금까지 매년 4백억원이 넘는 예산을 집행하면서도 증빙서류가 없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는 것이 상당수 축구인들의 지적이다. 법인화가 되어 이 같은 문제가 제기될 경우 정 회장의 입지가 곤란해질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하지만 반대로 ‘대선 공조파기에 대한 정치보복이 아니냐’는 역풍도 불 수 있어 정부로서도 적잖은 부담을 안게 되는 셈이다.
축구협회 송기룡 차장은 “협회가 법인화에 부정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무조건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며 “문광부와 대립하는 등의 극단적인 상황으로 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그는 “회계 투명성 문제는 협회 내부 상황을 모르기 때문에 나오는 이야기”라며 “돈이 들어오면 바로 집행되고 대의원총회에서 감사가 이뤄져 문제될 게 없다”고 밝혔다.
정 회장의 고민거리는 또 있다. 바로 협회 재정 문제다. 축구협회의 재정수입은 대부분 대기업들의 스폰서와 경기중계권료로 충당된다. 그러나 올해는 상당수 대기업들이 축구협회 스폰서 역할을 꺼리고 있는 상황이다.
한 축구협회 관계자는 “지난해에는 월드컵 영향도 있었지만 대선에 나설 정 회장을 염두에 두고 ‘보험’차원에서 스폰서를 자처하는 기업이 적지 않았다”며 “그런데 올해는 축구협회 지원 자체가 정 회장을 지지하는 것으로 비쳐질까 우려해 눈치를 살피는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지난해 정치인으로서 쓰라린 경험을 했던 정 회장이 이번에는 축구인으로서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정 회장 스스로 축구협회의 개혁에 나서지 않을 경우 사면초가에 빠질 가능성도 있다. 안순모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