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중석에서 흥분한 관중이 내뱉은 말이 아니다. 올 시즌부터 LG가 국내 최초로 시도하는 잠실구장 자체 라디오 중계 때 캐스터와 필자가 실제로 주고받는 말이다. 공중파 중계하면서 이런 말을 한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고 만약 실수를 했더라도 방송 사고의 책임을 물어 책임자는 보직 변경되고 해설자는 그날로 밥숟가락을 놔야 한다. 그만큼 공중파는 항상 중립 입장에서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다. 특히 국내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메이저리그는 독설가들이 인기가 높고 중계하면서 할 말 못할 말 다 한다. 심지어 어느 해설자는 아웃 판정한 심판한테 세이프라고 강력히 항의하는 선수를 가리켜 ‘청원경찰이 끌고 나가야 한다’며 흥분한다. 또 수비하면서 공을 놓치는 선수한테는 ‘어젯밤에 만난 애인의 가슴을 잡듯이 꽉 움켜잡으라’고도 얘기한다. 솔직히 부럽다. 아니 부러웠다.
하지만 요즘은 필자가 더한다. 한마디로 ‘육두문자’ 빼고는 다 말한다. LG에서 나한테 요구하는 것도 중립이 아니라 LG쪽으로 일방적인 중계를 하라는 거다. 그래서 캐스터를 선발할 때도 LG에 거의 중독된 사람 2명을 선발했다.
한 명은 기획사를 운영하던 안준모다. 이 친구는 캐스터를 맡으면서 기획사, 즉 생업을 팽개치고 중계에 매달려 있다. 수입을 따지면 기획사쪽이 훨씬 많은데도 중계를 위해 회사를 정리했다. 당연히 그의 집에서는 난리가 났다. 안그래도 LG에 미쳐 다니더니 밥벌이할 생각 안하고 무슨 중계냐고 가족들이 들고 일어난 것. 거기다가 곧 결혼할 애인이 있는데 결혼준비는 안중에도 없다. 그러나 예상외로 이 친구의 중계 실력이 공중파 캐스터 못지 않다. 오히려 나와 죽이 잘 맞아 사람들의 반응이 엄청나다.
이런 멘트가 있었다. LG 이승호가 상대 타자를 완벽하게 막아내길래 내가 그랬다. “오늘 이승호 선수 피칭은 에이스답게 정말 훌륭하다”고. 그러자 안준모가 하는 말이 “이 위원님, 저런 공 치려다가 타석에서 망신당하느니 일찍 은퇴하길 잘했죠?” 또 이병규가 좌중간으로 완전히 빠지는 타구를 멋지게 다이빙 캐치를 하길래 내가 또 그랬다. “지금 수비는 LG를 위기에서 구해내는 멋진 수비”라고. 그러자 이 친구 왈, “만약 이 위원님 같으면 지금쯤 공을 주으러 뛰어가고 있겠죠?”
이 친구는 웃기려고 말한 건데 정말 웃겼다. 한 팀이 확률 없는 플레이를 하길래 내가 속담을 얘기했다. “호랑이한테 개를 빌려주면 돌려받겠느냐”고. 그랬더니 이 친구 순간적인 재치로 “고기는 다 먹고 사골은 돌려주겠죠”라고 한다. 보통 순발력이 아니다. 사실 처음 자체 중계를 하면서 많은 걱정을 했다. 아마추어인 캐스터들이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우려였다. 하지만 야구장에서 중계를 들은 팬들은 서로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가면서 즐거워한다. 이 글을 읽고 궁금하시다면 직접 야구장에 오셔서 들어 보시길. SBS해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