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비록 이들 3인방의 명성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집념의 사나이’ 서재응(26·뉴욕 메츠)과 ‘애틀랜타의 희망’ 봉중근(23) 역시 좋은 활약을 펼치면서 ‘엑설런트 코리안 플레이어’의 이미지를 강하게 전파하는 중이다. 두 선수 모두 미국 진출 6년 만에 빅리그에 진입, 자신만의 꿈을 달성하기 위해 조용하면서 힘찬 걸음들을 내딛고 있다. 그러나 오늘의 두 사람이 있기까지 그들이 밟고 올라온 노정은 결코 평탄치 않은 것이었다.
지난 1997년 12월, MLB팀과 계약한 역대 한국 선수들 중 최고 액수인 1백35만달러의 계약금을 받고 뉴욕 메츠와 계약한 서재응. 계약 당시만 해도 그는 시속 155km가 넘는 강속구에 뛰어난 체인지업과 매끈한 제구력을 자랑하는 메츠 최고의 유망주였다. 인하대학교 2학년 재학중에 MLB에 도전장을 던진 서재응의 성공은 시간 문제로 여겨졌다. 98년 싱글A 세인트루시 메츠에서 활약했고 이듬해에 더블A로 승격되었고 98년에는 방콕아시안게임 한국대표로 출전해서 2승을 올리기도 했었다.
그러나 시련은 서재응을 비켜가지 않았다. 데뷔 첫 해부터 괴롭혔던 팔꿈치 통증이 악화, 결국 99년 시즌이 진행중이던 5월 프랭크 조브 박사에게 오른쪽 팔꿈치 인대 수술을 받으며 선수 생명의 위기를 맞았다. 1년 반의 길고 지루한 재활운동 끝에 서재응은 2001시즌 다시 마운드에 올랐다. 더블A 빙햄턴을 거쳐 트리플A 노포크 타이즈로 승격, 2승2패에 방어율 3.42를 기록하며 재기의 청신호를 밝혔다.
그러나 두 번째 시련이 서재응을 좌절하게 만들었다. 한때 155km를 넘나들던 그의 강속구는 팔꿈치 수술 후에 갈수록 위력을 잃기 시작, 2002년에는 140km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재기는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졌지만 그래도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그리고 올해 초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서재응의 집념은 기적처럼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그토록 고대하던 패스트볼의 스피드가 다시 150km 가까이 치솟기 시작한 것. 구속이 회복되면서 워낙 뛰어났던 체인지업의 위력이 배가되고, 안정된 제구력도 진가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메츠의 마지막 5선발 자리를 놓고 5명이 치열한 경쟁을 벌인 끝에 당당히 개막전 25명 로스터에 포함된 서재응은 지난 18일 시즌 세 번째 선발 등판인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와의 원정 경기에서 7이닝 동안 5안타 무실점의 뛰어난 피칭으로 자신의 MLB 최초의 승리를 따냈다.
예전의 불 같은 강속구를 되찾지는 못했지만 빅리그에서 충분히 통할 수 있는 스피드를 회복한 서재응의 최대 강점은 역시 제구력이다. 올시즌 22이닝을 넘게 던지면서 4구가 단 한 개도 없다. 앞으로 한 달여, 3∼4번의 경기에서 제대로 버텨만 준다면 서재응의 빅리그 시대는 보장될 수 있다.
서재응보다 세 살이 어리지만 같은 1997년 10월에 미국 땅을 밟은 봉중근은 엘리트 코스를 거친 선수로 알려져 있다. 신일고 2학년 시절 이미 MLB 스카우트들의 눈에 띌 정도로 빼어난 재능을 타고한 봉중근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가 애정을 가지고 키운 재목임은 분명하다.
봉중근은 미국 진출이 곧 빅리그의 스타로 가는 길인 줄로 착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브레이브스는 나이 어린 봉중근을 당연히 루키 리그부터 차근차근 키워갈 계획을 세웠다. 영어도 통하지 않고, 동료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하고, 코칭 스태프와의 관계도 삐걱거릴 정도로 정착하기가 어려웠다. 그는 현지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며 영어를 배우고 남과 어울리는 법을 익혔다. 타고난 야구 재능과 붙임성 있는 성격으로 다시 정상 궤도에 돌입하기 시작하자 그에겐 거칠 것이 없었다.
브레이브스 마이너리그에서 가장 주목받는 유망주로 성장하던 봉중근은 올해 스프링캠프 시범경기에서 보비 콕스 감독을 깜짝 놀라게 하는 활약을 펼치기 시작했다. 왼손 투수라는 장점에 최고 153km까지 나오는 빠른 공, 스프링캠프에서 자신감을 갖기 시작한 체인지업, 그리고 그렉 매덕스에게 전수받은 제구력을 앞세운 봉중근은 구원 투수로서 한 자리를 차지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정규 시즌의 막이 올랐다. 봉중근은 개막전에서 구원 투수로 등판 수비의 실책성 플레이로 2점을 내주고는 7경기에서 연속 무실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지난 16일과 17일 몬트리올 엑스포스전에서 연속으로 1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며 2번의 구원승을 챙겨, 서재응과 마찬가지로 미국 도전 6년 만에 승리의 감격을 누렸다.
그러나 봉중근의 종착역은 구원 투수는 아니다. 빠르면 올 시즌 후반기에, 늦어도 내년에는 선발 로테이션의 한 축을 담당할 것이 분명하다.
민훈기 스포츠조선 미주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