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찍책’과 함께 용인술의 한 방편으로 사용되는 ‘당근책’은 프로야구의 메리트시스템과 일맥 상통한다. 메리트시스템은 연봉과는 상관없이 매 경기의 활약도에 따라 곧바로 포상금을 지불하는 인센티브 제도를 이야기한다.
공식적으로 8개 구단은 메리트시스템을 실시하고 있지 않다. ‘출혈 경쟁’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 슬그머니 부활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게 메리트시스템. 그만큼 당근책의 ‘약발’은 달콤하다. 각 구단의 메리트시스템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춰봤다.
승리에 목마른 구단에게 메리트시스템은 가장 짧은 기간에 효과를 볼 수 있는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다. 때문에 국내 프로구단들은 여러 방법으로 메리트시스템을 적절히 이용해왔다.
오랜 기간 메리트시스템은 프로야구계의 ‘뜨거운 감자’로 취급받아왔다. 심지어 지난 2001년에는 시즌 개막을 앞두고 각 구단 사장들이 한자리에 모여 “메리트시스템을 금지하고, 만일 이를 어기는 구단에는 1억원의 벌금을 부과한다”는 결의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높으신 분’들의 굳은 결의조차 승리의 유혹 앞에서는 모래성처럼 무너지고 말았다.
페넌트레이스가 진행되면서 당시 우승에 목말랐던 S구단이 억대의 돈 봉투를 슬그머니 풀었다. 시즌 전의 ‘결의’를 의식해서인지 ‘봉투만 주고 현금은 시즌이 끝난 뒤에 준다’는 해괴한 논리를 내세웠다. S구단의 행동에 발끈한 다른 구단들도 너나없이 돈 봉투를 지급하기 시작했다.
결국 사장들의 결의는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구단마다 연승 시 1천만원의 보너스를 선수단에 지급하고, 특정 라이벌 구단과의 승리 시에도 비슷한 돈 보따리를 풀었다. 물론 모든 선수들이 혜택을 본 것은 아니다. 선수들을 3∼4등급으로 나누어 차등 지급한 것. 이 때문에 선수들 사이에서 볼멘소리가 터져나오기도 했다.
▲ 지난해 11월10일 한국시리즈 우승을 확정지은 후 기뻐하 는 삼성 라이온즈 선수들. 삼성은 시즌중 메리트시스템을 적절히 활용해 선수들의 사기를 북돋웠다. | ||
삼성 라이온즈 박덕주 과장은 “승리게임제를 실시한 것은 사실이지만 자세한 내용은 말하기 곤란하다”며 “올해부터는 메리트시스템을 전혀 시행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삼성뿐 아니라 모든 구단이 지난해까지만 해도 비공식적으로 메리트시스템을 실시해왔다. 하지만 그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 그 이유는 메리트시스템이 갖는 당근효과만큼 폐해도 적지 않았기 때문.
우선 연봉으로 보상하지 않고, 즉흥적으로 돈 보따리를 푸는 것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은 데다, 선수들 간의 차등지급으로 오히려 역효과를 자아내기도 했던 것. 또 다른 구단과의 비교를 통해 상대적으로 적은 액수를 지급하는 구단의 선수들은 자연 불만이 커질 수밖에 없다.
LG 트윈스도 지난해 포스트시즌에 들어가면서 메리트시스템을 시행했다. LG 이일재 홍보팀장은 “일부 분야에만 시행했다”며 내용에 대해서는 함구한 뒤 “구단마다 평가가 다르겠지만 연봉제도가 있는 상황에서 당근책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해 올해는 전혀 시행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과거 해태 타이거즈 시절 메리트시스템을 적절히 활용(?)했던 기아 타이거즈는 공식적으로 메리트시스템과의 결별을 선언한 구단이다.
윤기두 팀장은 “기아로 바뀌면서부터 전혀 실시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앞으로도 고려하지 않는다는 게 구단의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같은 확고한 각 구단 관계자들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야구계에서 메리트시스템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판단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없지 않다. 과거의 사례에 비춰볼 때 메리트시스템은 언제든지 부활할 수 있다는 게 야구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2003년 프로야구도 마찬가지다.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메리트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는 구단은 한 곳도 없다. 그러나 삼성 현대 기아 등 3강과 두산 롯데 등 2약의 양극체제로 굳어져가는 올 페넌트레이스의 상황은 구단으로 하여금 더욱 메리트시스템의 유혹을 강하게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다.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 구단의 관계자는 “돈 봉투를 뿌려서 성적이 나아진다면 당장이라도 실시하고 싶은 게 지금 심정”이라고 털어놓았다. 그의 고백에는 성적에 따라 울고 웃는 프로야구의 속성상 ‘당근의 유혹’을 뿌리치기가 얼마나 힘든가가 잘 드러나 있다.
안순모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