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년의 나이는 박종팔에게 단지 숫자일 뿐이다. 이종격투기 대회를 앞두고 훈련에 전념하고 있 는 그의 모습에서 진정한 ‘청춘’이 무엇인지를 느끼게 된다. 임준선 기자 | ||
이미 불혹을 훌쩍 넘긴 나이. 은퇴한 지 15년 만에 다시 글러브를 낄 수밖에 없었던 박종팔을 직접 만나 파란만장한 삶과 이종격투기대회에 참가하게 된 속사정을 들어봤다.
“처음 K-1(이종격투기 방식 중 한 가지) 경기로 링에 선다는 이야기가 알려지자 그동안 연락을 끊었던 사람들까지 모두 전화를 해왔어요. 그런데 그들의 첫 마디가 똑같더군요. ‘종팔이 너 돈 떨어졌냐?’는 거였어요.”
주위 사람들뿐 아니라 가족들까지 뜬금없이 링에 다시 오르겠다는 가장을 말리기는 마찬가지. 아내는 ‘미친 짓’이라며 반대했고, 대학교 2학년과 고3인 딸들은 ‘아빠 우리가 용돈 적게 쓸 테니 하지 말라’고 말렸다. 하지만 박종팔은 돈 때문에 글러브를 다시 끼는 것은 결코 아니라고 이야기했다.
“40대 중년들에게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기고 지고를 떠나서 마지막으로 링에 설 수 있는 모습을…. 아니 어쩌면 이 땅의 40대들이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르죠.”
박종팔과 이효필의 승부 소식에 ‘권투인’들은 ‘왜 하필 권투가 아니라 이종격투기냐’는 의문을 던졌다. 이에 대해 박종팔은 “효필이가 권투를 하긴 했지만 주 종목은 격투기에요. 그래도 나는 세계챔피언(WBA 슈퍼미들급)까지 했는데 권투로는 승부가 뻔하잖아요. 그쪽에서 격투기 스타일을 강하게 요구했고, 나도 그래야 승부가 예측불허일 것이라 생각해 승낙했던 거죠”라고 밝혔다.
서울 양재동의 한 체육관에서 글러브를 끼고 샌드백을 두드리는 박종팔의 몸매는 40대 중반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지금 93kg 정도 나가는데 현역 때 평상시 체중이 85kg 정도였으니 그런 대로 괜찮은 편이죠. 한 7∼8년 전부터 체력관리를 꾸준히 해왔어요.”
그가 권투와 인연을 맺은 것은 열여섯 살 때였다. 그의 부모는 전남 무안에서 농사를 지었다. 그런데 초등학교 6학년 때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그리고 중학교에 들어가자 새엄마가 생겼다.
“새엄마 때문에 집에 들어가기가 싫었어요. 밖으로 나돌다 결국 아버지 호주머니에서 1만4천원을 꺼내 무작정 상경했죠. 서울에서 사촌형네 집에 머물게 됐는데 아버지가 부친 쌀을 찾으러 노량진역에 가다가 동아체육관을 우연히 보게 됐어요. 그게 복싱을 시작한 계기였어요.”
글러브를 낀 그는 한국 중량급의 간판 스타로 급성장했다. 현역시절 총 53전 46승 1무 5패(39KO)의 화려한 전적을 남겼다. 특히 나경민 백인철 등과의 라이벌전은 지금도 팬들에게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당연한 결과로 체육관 경영은 실패로 끝났다. 울분을 못참아 권투위원회 사무실과 당시 권투위원회 회장이던 구천서 전 의원 사무실에서 행패를 부려 한 달 간 철창에 갇히는 경험도 했다.
악몽 같은 좌절의 나날을 보내던 끝에 그가 시작한 게 당시 붐이 일던 단란주점. “제가 사회에 대해 너무 몰랐습니다. 사회가 어떤 곳인지 알고 싶었기 때문에 술집을 운영하게 된 것입니다.”
다행히 강남 역삼동에 차린 단란주점은 장사가 괜찮게 됐다. 하지만 제대로 돈을 벌지는 못했다. 모질지 못한 성격인 데다 찾아와 손을 벌리는 선후배들에게 덥석 돈을 내주곤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후회는 없단다. ‘인생 수업료’라고 생각하니까. “돈은 못 벌었지만 사회는 조금 알게 됐다”는 이야기다. 박종팔은 다음달에 그간 운영하던 단란주점을 그만둘 생각이다.
“몇 년 전 양재동에 사두었던 건물이 부동산 바람을 타고 많이 올랐어요. 그것을 밑천으로 조그만 사업을 해볼 생각이에요. 쉰 살이 될 때까지 딱 5년 동안만 돈을 벌 겁니다.”
나이 쉰살이 되면 서울을 떠나 그가 꿈꿔온 전원생활을 할 계획이다. “저는 농사꾼 아들입니다. 경기도의 한적한 시골에 예쁜 집을 짓고, 텃밭을 가꾸며 살아가는 게 꿈입니다. 선후배들이 찾아오면 편하게 술 한잔하면서 평안한 여생을 보내고 싶습니다.”
이야기를 마친 박종팔이 다시 줄넘기를 들고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5월 말까지 체력훈련을 한 뒤, 6월부터 본격적인 기술훈련을 하기로 계획을 잡았다. 7월17일 경기는 3분 5라운드이며 10온스 글러브를 끼고 ‘K-1’으로 진행된다. 그로선 평생에 가장 어려운 시합이 될지도 모른다. ‘도전’을 두려워 않는 박종팔을 쳐다보면서 불현듯 유명한 카피 한 구절이 떠올랐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안순모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