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22일 중국 광저우에서 ‘상담기’로 펼쳐진 금용성배 결승전에서 한국의 시드팀(박정환·김지석 9단, 이동훈 5단·위)이 중국 시드팀(커제·스웨·저우루이양 9단·왼쪽)에게 백 반집승을 거뒀다. 사진제공=한국기원
최근 중국바둑이 무섭다. 2013년 열린 6개의 세계대회 우승컵을 모두 가져갔고 2014년, 2015년 2년 연속으로 단체전 세계대회인 농심배에서도 우승했다. 2014년 개인전으로 열린 세계대회에서는 한국의 반격에 주춤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2015년 다시 신병기 커제를 앞세워 세계대회 공략에 나서고 있는 중이다.
중국 주최의 금용성배는 지난 2013년 주강배라는 명칭으로 첫선을 보였던 이색 단체전. 3인 1팀으로 구성해 상대팀의 동일 순번과 순위결정전을 치르고, 결승전은 팀원끼리 공동연구를 통해 착점해나가는 ‘상담바둑’을 처음 도입해 신선한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2015년 금용성배는 15개국 18팀이 참가했다. 그중 바둑 강국 한국·중국·일본은 각각 시드팀과 와일드카드팀 2팀씩 출전했다. 스위스리그로 진행된 예선전은 주최국 중국이 단연 돋보였다. 커제·스웨·저우루이양으로 구성된 중국 시드팀의 전력은 압도적이어서 유력한 경쟁자로 꼽히는 한국 시드팀과 와일드카드팀(이세돌·최철한·박영훈)도 각각 0-3, 1-2로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상담기’로 치러진 마지막 결승전이 문제였다. 상담기는 아무리 뛰어난 기량을 보유한 톱클래스 기사라도 착각이나 수읽기 실수가 있기 마련. 그렇다면 여럿이 상의해 대국을 이어나간다면 완벽한 바둑이 만들어지지 않을까라는 기대 속에 도입됐다. 결승에 오른 두 팀은 별도 배정된 방에서 자체 수읽기를 거쳐 주최 측에 착점을 전달했다. 팀당 주어진 4시간 30분을 다 쓰면 초읽기 없이 끝나는 타임아웃제다.
그렇지만 그 어느 때보다 우승을 자신했던 중국은 이번에도 안방에서 우승컵을 놓쳤다. 언제나 그랬듯 한국이 문제였다. 결승전에서 박정환 9단이 이끄는 한국 시드팀에게 딱 반집 차이로 발목을 잡히고 만 것. 상담기의 생명은 팀워크인데 올해도 중국보다는 한국의 팀워크가 돋보였다. 상담기는 3명의 기사가 흉금을 터놓고 지혜를 모으면 3명 이상의 시너지 효과를 내지만 마음이 안 맞을 경우에는 혼자 두는 것보다 못한 경우가 발생한다. 실제 2년 전 중국팀이 그랬다. 당시 중국은 천야오예, 스웨, 저우루이양이라는 세계챔피언으로 팀을 짰는데 천야오예와 저우루이양의 사이가 좋지 않아 팀이 불화를 일으켰고, 결국 예선에서 이겼던 한국에게 결승에서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2015년 중국팀은 천야오예 대신 커제가 자리를 지켰지만 이번에도 최후의 고비를 넘지 못했다. 김지석(89년생), 박정환(93년생), 이동훈(98년생)은 평소 수줍음이 많고 자기주장을 내세우지 않는 기사들인데 이번엔 똘똘 뭉쳐 만리장성을 함께 넘어섰다.
한편 이번 금용성배 결과는 곧 있을 제2회 몽백합배 결승전 이세돌 vs 커제의 결승5번기에도 영항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세돌은 이번 몽백합배 예선에서 커제에게 또 졌다. 최근 커제와의 대결에서 3연패.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커제가 속한 중국 시드팀이 준우승에 그치면서 흐름이 바뀔 조짐이다.
커제는 이번 금용성배에서 실질적으로 중국팀을 리드했다. 랭킹1위이기도 하려니와 얼마 전 끝난 삼성화재배 결승전에서 스웨를 2-0으로 꺾었기 때문에, 스웨가 옆에서 이래라저래라 할 상황이 아니었다. 때문에 중국은 커제가 혼자 두었을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는데(실제 현지에서도 커제가 90퍼센트 이상 대국을 주도했다고 전해진다) 중국이 준우승에 그쳤으니 이는 전적으로 커제의 책임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바둑은 고도의 심리전과 미묘한 흐름 하나에도 분위기가 확 바뀔 수 있는 게임이다. 굳이 상대를 흔들려는 의도가 없더라도 제풀에 흔들릴 수 있는 것이 바둑이다. 시상식에서 이세돌은 3위에 그쳤음에도 활짝 웃었고 2위 커제는 인상을 한껏 찡그렸다. 이 결과, 몽백합배 결승전에서는 어떤 형태로 결론이 날 것인지 주목된다.
유경춘 객원기자
밀레니엄둥이 신진서 우승 화제 ‘1인자 계보’ 이을 재목 맞네 [일요신문] 지난 12월 22일은 좀 과장해서 말하면 바둑팬들의 염원과 기대가 이루어진 날이다. 한국바둑 1인자의 계보를 이을만하다는 신진서가 마침내 대기(大器)의 편린을 드러낸 날이기 때문이다. 신진서 3단 하지만 최근 중국이 인해전술을 앞세워 세계무대를 공략해 나오자 한국바둑의 입지는 전 같지 않다. 박정환이 선봉에 서고 서른 줄을 훌쩍 넘긴 이세돌이 뒤를 받치고 있지만 커제를 필두로 한 중국세의 발호가 워낙 거세서 힘에 부쳤던 것이 사실. 이런 시기에 때마침 15세 신진서가 타이틀을 획득하며 전면으로 나서줬으니 바둑팬들은 쌍수를 들고 환영할 수밖에. 22일 한국기원 1층 바둑TV 스튜디오에서 열린 2015 렛츠런파크배 오픈토너먼트 결승3번기 최종국에서 신진서 3단이 김명훈 2단을 백 4집반 차이로 따돌리고 종합전적 2승 1패로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신진서의 생애 첫 타이틀이다. 신진서는 2000년 3월 17일생. 이른바 밀레니엄둥이다. 2000년대생의 정식기전 우승은 한국은 물론 중국과 일본을 통틀어서도 신진서가 처음이다. 또한 15세 9개월 만의 우승은 14세 10일 만에 KBS바둑왕전에서 우승했던 이창호에 이은 역대 두 번째 최연소 타이틀을 획득 기록이다. 이세돌보다, 박정환보다도 빠른 페이스다. 신진서는 “우승은 아직 이르다고 생각했는데 얼떨떨하다. 바둑팬들이 내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2년 안에 세계대회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리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신진서의 현재 국내 랭킹은 박정환-이세돌-박영훈-강동윤-김지석-최철한에 이어 7위. 2016년, 바둑팬들은 ‘무서운 아이’ 신진서의 성장을 지켜보는 재미가 생겼다. [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