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이들은 대표팀의 주변부만 맴돌았던 ‘아웃사이더’나 다름없었다. 주요 국제 대회를 앞두고 매번 최종 명단에서 누락되거나 아예 이름조차 거론되지 않았던 아픔을 간직하고 있었던 것. 그래서일까? 이번 한·일전에서의 활약상은 유난히 두드러져 보였다.
20대 후반에서 30대에 걸친 나이들. 마지막 풀뿌리를 잡는 심정으로 최후의 결전을 준비하는 이들 삼총사가 한·일전을 마친 뒤 아쉽고 쓰라린 지난날의 기억을 더듬었다.
▲ 이기형 왕정현 박충균(왼쪽부터) 등 축구 국가대표팀 백업요원 3인 방은 이번 쿠엘류호 승선을 ‘라스트 찬스’로 여기며 땀방울을 흘리 고 있다. | ||
박충균은 수비수로선 보기 드물게 균형 잡힌 체격과 유연성, 킥력을 겸비한 까닭에 과거 비쇼베츠 사단 출범 때 ‘황태자’로 군림했었다. 대학선수 우선 지명으로 프로에 입단한 당시 신생팀 수원에서도 처음 얼마 동안은 ‘실력자’였다.
하지만 너무 안주한 것일까? 팀 적응에 실패하며 점점 벤치에 앉는 횟수가 늘어나더니 아예 후보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98년 도피하다시피 상무에 입대, 2001년 제대해 다시 상황 반전을 노렸으나 몸과 마음은 따로 움직였다.
“그 해가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열심히 뛰었는데 마음대로 몸이 움직여주질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성격 탓이었다. 원래 자유롭게 놔둬야 제 실력을 발휘하는 스타일인데 김호 감독님은 개개인의 다양한 개성을 하나로 묶으려 했다. 짜여진 틀에 구속되는 것을 싫어하는 내 성격상 수원은 맞지 않았다.”
박충균은 수원에 직접 트레이드를 요청했다고 한다. 다행히 올림픽 대표팀 시절부터 박충균을 지켜봤던 성남의 김학범 코치가 이적을 제의했고 결국 2001년 7월 황인수와 맞트레이드 됐다.
성남에서는 한층 여유로운 플레이로 주전 자리를 꿰찼고 그 해 10월 히딩크 사단에도 선발되는 행운을 안았다. 하지만 또 한번의 불운이 찾아왔다. 수원 때부터 괴롭혀온 왼쪽 족저건막염(뒤꿈치에 과도한 충격이 전해져 발바닥을 싸고 있는 단단한 막에 염증이 생기는 질환)이 악화돼 3일 만에 중도하차한 것. 운동을 심하게 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피로성 질환이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이 화근이었다.
결국 수술을 했는데 아직도 그 부위의 통증이 남아 있다고 한다. 게다가 오른쪽 아킬레스건에도 염증이 생겨 고통스럽다고. 그렇지만 마지막으로 찾아온 태극 마크를 달 기회이기 때문에 꾹 참아가면서 훈련을 하고 있다고 한다.
슈팅에 관한 한 국내 넘버원으로 평가받는 ‘캐넌슈터’ 이기형. 박충균과는 96올림픽 대표팀에서부터 수원, 그리고 올 시즌 성남에서 함께 호흡을 맞춰온 단짝이다.
그 역시도 97년 월드컵 예선 일본전에서 ‘도쿄대첩’을 알리는 신호탄을 쏘며 유명세를 탔지만 그 이후 98월드컵, 2000아시안컵, 2002월드컵에서 번번이 미역국을 마신 비운의 스타로 기억된다. 특히 98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자신의 이름이 빠졌을 때가 가장 속이 상했다고 한다.
99년 이기형은 발목 골절과 무릎 인대 손상으로 1년 5개월가량 필드를 떠나야 했다. 오직 2002월드컵에 출전하겠다는 일념으로 몸을 추슬렀으나 다시 고배를 마신 뒤 대표팀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버렸었다고 한다.
그는 “한·일전 대표팀 합류는 생각지도 못했다. 하필이면 일본전을 앞두고 들어와 심적 부담이 컸다. 다행히 소속팀에서 발을 맞춰본 박충균과 조병국(수원)이 많이 도와줘 큰 어려움 없이 경기를 치를 수 있었다. 큰 욕심은 없지만 기회만 주어진다면 아시안컵까지 대표팀에 남고 싶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프로 입문 4년 만에 5월31일 한·일전에서 첫 A매치 출전 신고식을 치른 왕정현. 문일고-배재대를 졸업하고 안양에 입단하기까지 철저한 무명 생활을 겪은 그도 남다른 설움이 많다. 눈물을 훔치며 스스로를 위로한 날이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라고.
프로에 와서도 늘 허전했다고 한다. 꾸준한 활약에도 불구, 대표팀은 전혀 자신에게 시선을 보내지 않았기 때문. 특히 공격수로 9골을 뽑아내며 안양 우승의 견인차 노릇을 했던 2000년에는 태극마크에 대한 꿈을 키웠으나 끝내 ‘러브콜’이 오지 않아 실망감이 엄청 컸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이들 3인방은 해외파의 가세로 치열해진 주전 경쟁에 대해 무척 예민한 반응을 내보인다. 어렵게 잡은 기회를 순식간에 빼앗길 수도 있기 때문. “벤치에라도 앉아 있을 수 있다면 희망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한 선수의 넋두리가 귓가를 떠나질 않는다.
유재영 월간축구 베스트일레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