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저히 50세의 나이를 떠올릴 수 없는 외모와 축구선수 못지 않은 에너지와 주체할 수 없는 ‘끼’, 대표팀 막내에 해당하는 최성국, 이천수와 대화를 나눠도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 신세대 감각 등 그를 특징짓는 이미지와 색깔, 코드는 ‘젊음’이다.
94년 미국 월드컵 이후 10여 년 동안 국가대표팀 의무 트레이너를 맡아 부상에 울고 우는 선수들과 희로애락을 같이하며 동반자적인 삶을 마다하지 않았던 그와의 ‘취중토크’는 특이하게도 점심 때 이뤄졌다.
▲ 대표팀 감독을 네 명이나 겪은 최주영 의무팀장. 나이는 50이지만 주체할 수 없는 끼는 이천수 최성국 수준이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전담 물리치료사’이다보니 대표팀 선수들의 몸 상태는 최주영씨가 훤히 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떤 선수가 스태미나의 화신으로 불릴 만큼 ‘힘’이 좋은지, 어떤 선수가 겉은 멀쩡해도 속은 ‘종합병원’ 상태인지, 또 어떤 선수가 꾀병을 잘 부리는지 최씨의 휴대용 ‘비밀수첩’ 속엔 대표팀을 거쳐간 모든 선수들에 대한 자세한 기록들이 빠짐없이 기록돼 있다.
“부상을 당하지 않는 나름대로의 비법을 갖고 몸 상태를 유지한 선수가 홍명보예요. 그 선수는 치료실에 거의 오질 않았어요. 마실 삼아 오는 일 외엔 치료실 출입이 거의 없었죠. 그러나 나이가 드니까 잔부상을 당하더라고요.
부상 때문에 가장 마음 아팠던 선수가 황선홍이었어요. 워낙 부상을 많이 당하는 바람에 저랑 무척 친해졌죠. 선수들이 저랑 친해선 별로 좋을 게 없어요. 친하다는 건 치료 때문에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았다는 이야기니까요.”
최씨는 현 대표팀 선수들의 몸 상태와 관련해서 ‘충격적인’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즉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스태미나의 화신’은 현재 한 명도 없다는 것.
“유소년 시절부터 혹독한 훈련을 받아왔고 부상당해도 제대로 치료조차 받지 못하고 운동을 했기 때문에 현 대표팀 선수들의 발목이나 무릎을 보면 40~50대 수준의 몸 상태가 대부분이에요. 가끔은 그런 몸을 한 선수들을 상대로 90분 동안 뛰게끔 만들어줘야 할 때 가슴이 아프죠.”
지난 아르헨티나전을 앞두고 신병훈련소에서 갑자기 ‘뛰쳐나온’ 안정환의 몸 상태는 정말 ‘아니올시다’였다고 한다. 힘든 군사훈련으로 몸은 파김치가 되어 있었고 볼 감각마저 상실된 터라 10분 조커 투입 정도라면 몰라도 그 이상의 역할을 기대하기란 무리였다는 것.
“죽어라 훈련만 받다가 대표팀 합류 통보를 받고 나온 안정환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을 거예요. 몸은 안 따르지, 마음은 조급하지 얼마나 좌불안석이었겠어요. 그래도 빈손으로 돌아가진 않았어요. 입소를 코앞에 둔 ‘쫄따구’ 박지성만큼은 확실하게 군기를 잡아놓고 갔으니까요.”
안정환은 훈련소에서 나온 뒤 파주에 도착해 최용수, 박지성과 함께 웨이트트레이닝장에서 체력훈련을 함께 받았다. 상무를 제대한 최용수와 신병 훈련중인 안정환을 앞에 둔 박지성으로선 당연히 군 생활에 대한 궁금증이 많을 수밖에. 안정환의 ‘1주일 군사 체험’을 듣고 있던 병장 출신의 최용수가 박지성을 앞에 세워놓고 복창 연습을 실시했다고 한다.
“용수는 다른 건 몰라도 자기소개를 할 때 ‘21번(가번) 훈련병 박지성’을 큰소리로 말해야 한다고 강조했어요. 아마 그날 입소한 지성이는 밤새 잠을 못 이뤘을 거예요. 정환이랑 용수의 ‘공갈포’ 때문이죠.”
그의 주전공이 의무 트레이너지만 부전공은 ‘영양사’라 할 만큼 선수들의 식단을 챙기는 역할도 마다하지 않는다. 물론 공식적인 영양사가 존재하지만 식품별 칼로리를 따지는 영양사의 식단대로 식사를 준비했다가는 10분 뛰고 배고프다고 아우성칠 선수가 한두 명이 아니라는 ‘경험의 법칙’ 때문이다.
“재활 치료도 중요하지만 심리 치료도 못지 않게 중요해요. 어떤 선수는 몸은 나아졌는데 제대로 뛰질 못해요. 왜냐하면 부상에 대한 걱정 때문이죠. 그래서 재활 중 끊임없이 선수들에게 최면을 걸어요. ‘넌 괜찮다’ ‘넌 이번 게임에 뛸 수 있다’ ‘분명 큰일을 해낼 거야’라며 희망적인 메시지를 띄우지요.”
현재 인제대에서 스포츠의학과 재활트레이닝에 대해 강의를 맡고 있는 최씨에게 대학 강단은 그라운드와는 또 다른 행복과 삶의 의미를 느끼게 해주는 곳이다. 바쁜 대표팀 일정 속에서도 학교 강의만큼은 결코 빠트리질 않는다고 한다. 그래도 언제나 눈에 밟히는 건 바로 대표팀 선수들.
“치열한 자리다툼 때문에 심각한 부상을 당해도 아프지 않다고 우기는 선수도 있고 감독 눈에 들기 위해 밖에서 진통제 같은 주사를 맞고 들어와 멀쩡하게 훈련받다 나중에 부상으로 밝혀지는 선수도 있어요. 정말 처절할 정도로 가슴 아픈 사연이 한둘이 아니에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대표팀 선수들의 명암이죠.”
대표팀 이면의 이야기가 다소 충격적이었지만 ‘취중토크’를 마치고 나온 세상이 환한 대낮이었다는 사실이 ‘알딸딸’한 기자한테는 모처럼만의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