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년의 홈런왕 김봉연은 극동대서 교양체육을 가르치고 있다. | ||
특히 실전 경험은 ‘따봉’이면서도 이론이 부족한 약점 때문에 강단에 서기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대학강사나 교수로 제2의 인생을 성공적으로 일궈나가는 스포츠스타들도 적지 않다.
하형주(동아대·스포츠심리) 안병근(용인대·운동생리) 이종경(경기대·스포츠사회) 김봉연(극동대·교양체육) 김미정(용인대·유도) 등이 바로 대표적인 인물들. 매트와 코트, 그리고 그라운드에서 정상에 올랐던 이들 왕년의 스타 플레이어들에겐 이제 ‘교수님’이라는 호칭이 더욱 자연스럽기만 하다.
하지만 선수 시절과는 달리 교수라는 위치 때문에 강단에서는 점잖은 모습을 유지해야만 하는 게 현실. 이러다 보니 가끔 예상치 않은 해프닝도 벌어지게 마련이다. 그 동안 학생들 앞에서 밝히지 못했던 그들만의 비밀(?)을 들어보았다.
은퇴 후 강단에 서는 선수 출신 새내기 교수들의 고민은 이론 수업을 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실기수업이야 선수 시절부터 해오던 훈련과 큰 차이가 없어 편안하게 진행할 수 있지만 일방적으로 ‘눈화살’을 맞아야 하는 강의실에서는 그 눈빛들이 여간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다.
84 LA올림픽 유도 금메달리스트인 안병근 교수(용인대·운동생리학)는 서울대와 용인대에 출강(유도와 호신술)한다. 이젠 학생들 앞에 의연하게 서지만 운동생리학 첫 이론수업에서 ‘한방’에 무너졌던 기억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2시간의 수업을 위해 일주일 동안 연구실에서 지낼 정도로 열성을 보였는데 막상 수업을 시작해 30분을 떠들고 나니 준비한 내용이 바닥이 나더라는 것.
“침도 바싹바싹 마르고 당황해서 순서도 건너뛰면서 강의를 했죠. 나머지 1시간30분은 뭘 했냐구요? 뭘 했겠어요. 오늘은 첫 수업이라 일찍 끝내야겠다고 둘러댔죠.”
▲ 요즘 하형주교수는 전공(스포츠심리) 때문에 연애 카운 슬링으로도 학생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다. | ||
진주가 고향인 하 교수는 경상도에서도 유독 억양이 강한 서부 경남 출신이다 보니 ‘학교’가 ‘핵교’가 되고 ‘확실히’가 ‘학실히’가 되는 YS식 발음으로 강의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초보 강사 시절 가뜩이나 긴장하며 수업하는데 여기저기서 학생들의 웃음이 끊이질 않는 통에 속으로 당황스러움을 삼켜야 했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하 교수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 것은 바로 여학생들의 촉촉한(?) 시선. “가스나들이 눈만 쳐다보는 거 아닙니꺼. 선생 갖고 놀라고 아예 작정하고 2시간 동안 눈만 쳐다보는데 눈 둘 데를 찾지 못해 혼이 났심니더.”
요즘 하 교수는 전공(스포츠심리) 때문에 연애 카운슬링으로도 학생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다. 연구실을 노크하는 학생들의 고민은 대부분 취업과 연애로 국한되지만 심리를 묘하게 뚫어보는 하 교수의 예리함이 학생들 사이에서 소문이 나면서 어떤 경우엔 혼전순결 문제까지 상담하러 오기도 한다고.
여기에 언제부터인가는 하 교수가 관상도 잘 본다고 알려지면서 이성친구를 사귀면 제일 먼저 그에게 동반 인사를 드리는 신풍속도까지 생겨났다고 한다.
아무래도 운동으로 단련된 탄탄한 체격의 스타 출신 교수가 수업을 진행하다 보니, 때론 ‘유혹’이 뒤따르기도 한다. 훤칠한 키에 마스크까지 좋은 배구 선수 출신 이종경 교수(경기대·스포츠사회)도 한때 그런 ‘통과의례’를 겪었다.
탐구적이며 논리에 충실하다는 이미지 때문에 다소 권위적으로 비쳐진 그는 여학생들에게는 쉽게 접근하기가 어려웠던 교수님이었다. 하지만 수영 같은 교양체육 시간에는 이 교수의 몸매에 반한 여학생들의 접근이 두드러지기도 했단다. 교수 이전에 남자로 보고 러브콜(?)을 서슴지 않았던 것.
▲ 김미정 용인대 유도학과 교수 | ||
정확히 말하면 학기 초에 학점 잘 받는 요령을 학생들에게 미리 제시하고 학생들이 잘 따라와 주길 유도하는 고도의 교수법인 셈.
학생들 사이에서는 3년 전 김 교수가 저지른 ‘실수’에 대한 이야기가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고 한다. 운동생리학 이론수업을 하던 중 그 날 따라 유난히 조는 학생들이 많자 김 교수는 학생들을 운동장으로 집합시켰다.
처음엔 걷기부터 시작해서 빨리 걷기, 달리기 등 강도 높은 훈련으로 업그레이드시켰는데 얼마 안 가서 학생들이 하나둘씩 쓰러지는 걸 보고서야 ‘아차’ 싶었다고.
“내가 코치인 줄 착각했던 거죠. 학생들을 선수로 봤던 거고.” 당시 김 교수는 프로야구 코치직을 그만 둔 지 얼마 안된 상태였다.
용인대 유도학과 강단에 서는 김미정 교수는 실기 시간이 되면 남학생들과의 대련을 피한다고 한다. 가끔가다 자신을 교수가 아닌 여자로 생각하고 몸을 움츠리거나 거꾸로 대범한 행동을 하는 남학생들을 발견한 뒤론 직접 대련하는 것을 포기했다. 주로 교양 수업을 하는 시간에 벌어지는 일들이라 심하게 야단칠 수도 없어 아예 ‘피하는 게 상책’이란 지론을 세웠다고 한다.
김남용 스포츠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