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원한 축구인’ 정몽준 축구협회장의 사퇴설이 비상한 관 심을 끌고 있다. 지난 4월 한일전에서 노 대통령과 함께한 모습. | ||
정 회장이 4개월간의 미국 체류를 마감하고 지난 8일 귀국하면서 정가에선 그의 향후 정치 행보에 대해 비상한 관심이 모아졌던 게 사실.
이런 가운데 최근 정 회장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이인원 국민통합21 당무조정실장이 당사 출입기자들과의 오찬 모임에서 “정 대표가 조만간 축구협회장직을 내놓겠다고 말했다”는 요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져 파문이 일고 있다.
이인원 실장의 발언 배경과 축구협회쪽의 반응, 그리고 정 회장과 10년 넘게 인연을 맺어오며 정 회장의 심경을 가장 잘 읽고 있다고 알려진 국민통합21의 이달희 비서실장의 입장을 정리해본다.
먼저 이인원 실장이 기자들과 오찬을 한 시기는 지난 5월29일 여의도순복음교회 옆에 위치한 ‘외백’이란 중식당. 이미 5월24일 기자들과 골프 회동을 한 터라 오찬 분위기는 시종 화기애애했다고 한다.
식사를 하며 반주가 곁들여지자 기자들은 24일 골프 때 이 실장이 살짝 흘린 말을 기억해내곤 질문을 했다. 당시 이 실장은 “정 대표가 협회장직을 겸하는 데 대해 입장 정리를 할 것”이라는 내용을 밝힌 바 있었다.
이날 이 실장은 기자들의 ‘의미있는’ 질문에 ‘가벼운’ 어투로 “나한테 직접 그것도 그만둘 것이라고 말했다”며 다시 한번 정 회장이 월드컵조직위원장 자리와 축구협회장직에서 모두 물러날 뜻을 밝혔다고 확인해 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실장은 기자가 진위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지난 20일 전화 통화를 했을 때 “난 특별히 무슨 말을 한 적이 없다”면서 “기자들이 나한테 이런 저런 걸 물어봐서 대답해줬을 뿐 그분(정 회장)의 거취와 관련된 얘기는 하지 않았다”고 강하게 부인했다. 지난달 29일 몇몇 출입기자들 앞에서 꺼냈던 발언을 ‘없었던 일’로 되돌린 셈이다. 대체 어찌된 영문일까.
지난 21일 여의도 국민통합21 당사에서 만난 이달희 비서실장은 이 실장의 발언 배경에 대해 다음과 같은 유추 해석을 내렸다. “아마도 직책이나 직함을 혼동한 게 아닌가 싶다. 즉 ‘그것도 그만두겠다’는 것은 축구협회장직이 아니라 월드컵 조직위원장 자리였는데 이 실장이 잠시 착각한 것 같다. 월드컵 조직위원장은 6월 말이면 임기가 끝난다. 아마도 정 대표는 이 사실을 모르고 조직위원장직을 그만두려 했던 모양이다.”
또한 이 실장은 “현재 임시 국회가 열리고 있어 정 대표는 국회 일에 모든 신경을 쏟고 있다. 그리고 대선 때도 축구협회장직을 겸하며 여러 루머와 비난 속에서도 꿋꿋하게 그 자리를 지킨 분이다. 정치인으로 자리 잡기 위해 회장직을 그만두는 강수는 두지 않을 것”이라고 조심스런 의견을 제시했다.
한편 익명을 요구한 국민통합21 관계자는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은 있지만 아직 정 대표가 생각을 정리하지 못한 것 같다”면서 “내년 총선을 앞두고 조만간 입장 정리를 할 것으로 안다”는 말로 종전 관계자들과 다른 시각을 내비쳤다.
그렇다면 축구협회쪽은 정가의 ‘정몽준 회장직 사퇴설’에 대해 현재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을까.
축구협회의 한 관계자는 정 회장의 회장직 사퇴는 어느 정도 가능성 있는 일이라고 예견했다. “언제까지 양수겸장으로 갈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물론 아직까지 협회쪽에 정 회장 스스로 의중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측근들의 움직임을 보면 다소 혼돈이 있는 게 사실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즉 몇몇 간부들의 업무추진 과정을 보면 갈림길에 놓여 있는 정 회장의 향후 행보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면서도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 감을 못 잡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는 것.
또 다른 축구협회 관계자도 “회장 임기가 내년까지다. 각 부서장들 입장에선 흐름을 전혀 예측하지 못한 채 어디에다 무게 중심을 둬야 할지를 몰라 불안, 초조해 하고 있다. 즉 이 부분은 정 회장의 움직임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설명해 주는 현상”이라고 단정지었다.
그 중 한 가지 예가 초청장에 실리는 무게가 전과 같지 않다는 점. 대선 전만 해도 국가대표팀의 A매치가 열릴 때는 국회 요직이나 사회 저명인사를 대상으로 초청장 발송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는데 최근 초청 대상이 현저히 축소되는 걸 보면서 협회 내부에선 정 회장의 마음이 이미 움직이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것.
축구협회장직을 유지하며 권토중래를 꾀할지, 아니면 아예 깨끗이 털고 정치인으로서 확실한 깃발을 꽂게 될지의 갈림길에 서 있는 정몽준 회장. 그가 대표, 의원, 고문, 회장 등 여러 가지 ‘모자’들 중 축구협회 회장이란 오래된 ‘모자’를 벗어낼지의 여부는 미지수다. 하지만 정 회장 주변 관계자들의 부정에도 불구하고 ‘사퇴결심설’은 여전히 설득력 있는 ‘소문’으로 정가에 나돌고 있다.
이영미 기자 bo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