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지원(왼쪽)과 싸이가 함께 부른 ‘홈런’은 프로야구 선수 세 명이 사용하는 인기 테마송이다. | ||
최근 야구장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하지원과 싸이의 ‘홈런’이라는 노래 첫 소절이다. 눈치 빠른 야구팬이라면 타석에 특정 선수가 들어설 때마다 경쾌한 리듬의 노래가 흘러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선수들의 개성을 읽을 수 있는 ‘테마송’이다.
대부분의 구단에서는 홈경기 때마다 선수들의 흥을 돋워주고 기분 좋은 승리를 거두게 해달라는 기원을 담아 선수가 직접 선택한 곡을 틀어준다. 알고 들으면 더욱 신나는 테마송. 스타 선수들과 테마송에 얽힌 사연을 들여다봤다.
최근 300호 홈런의 대기록을 달성한 이승엽(삼성)이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대구구장에는 신인 가수 유니의 ‘가’가 흘러나온다. 홈런왕이 선택한 테마송이 바로 신인 가수의 경쾌한 댄스곡이었던 것.
이처럼 구단에서는 홈경기에서 선수 자신이 선택한 테마송을 타석이나 마운드에 들어서는 동안 기분 좋게 틀어준다. 요즘 휴대폰에 컬러링이나 링투유 같은 서비스가 유행이라면 테마송은 그라운드에서 음악으로 각 선수들의 개성을 읽을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보통의 경우 자신이 좋아하는 애창곡을 테마송 1순위로 선택한다. 테마송은 선수 자신의 등장을 알리는 또 다른 수단이기 때문에 처음 곡을 선정하면 시즌이 끝날 때까지 줄기차게 밀고 나가는 게 대부분.
하지만 한 곡으로 만족하지 못할 때엔 부득불 두 곡을 선택하기도 하는데 대표적인 선수가 강혁(SK)이다. 강혁이 밀었던(?) 곡은 섹시한 디스코의 디바, ‘카일리 미노그’의 ‘Can’t Get You Out Of My Head’.
하지만 최근 영화 <매트릭스>의 인기 때문인지 영화 OST 중 한 곡을 더 선택해 번갈아가며 틀고 있다. 카일리 미노그의 노래는 야구 선수들 사이에서 고루 인기가 높은 편인데 SK에서 이적한 오상민(삼성)도 같은 노래를 선택했다.
이처럼 자신이 고민해서 고른 테마송이 가끔 다른 선수들과 겹친다면 썩 유쾌하지 않는 게 사실. 하지원과 싸이가 함께 부른 ‘홈런’은 양준혁(삼성) 이호준(SK) 정성훈(현대) 등 무려 3명이, 싸이의 ‘챔피언’은 박현승(롯데)과 조웅천(SK)이 나란히 테마송으로 내세우고 있다.
▲ 정수근(왼쪽)은 절친한 사이인 클론의 강원래가 직접 편곡한 ‘꿍따리 샤바라’를 자신의 테마송으로 사용하고 있다. | ||
정수근(두산)은 평소 친분이 있던 클론의 강원래가 자신을 위해 직접 편곡한 ‘꿍따리 샤바라’를 사용하고 있다. ‘꿍따리 샤바라 빠빠빠∼’라는 대목에서 ‘빠빠빠’ 대신에 ‘정수근’이라는 이름이 불리는 것.
이숭용(현대)도 작곡가인 친구가 만들어준 ‘이숭용 점프점프’라는 노래로 차별화된 테마송을 자랑하고 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가장 독특한 테마송은 자신이 직접 부른 노래를 사용하는 경우가 아닐까.
취미로 그룹사운드 활동을 할 정도로 음악을 좋아하는 마무리 투수 이상훈(LG)은 ‘크게 라디오를 켜고’라는 자신이 직접 부른 노래를 마운드에 오를 때마다 사용했는데 최근 본인 요청으로 중단된 상황. 구단 차원에서 테마송을 지원하지 않던 LG에서는 이제 마르티네스 혼자 테마송을 쓰고 있는데 백인 래퍼 ‘에미넴’의 곡을 좋아한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외국선수들은 힙합을 선호하는 편이다. 롯데의 분위기 메이커로 떠오른 두 용병, 페레즈와 이시온도 ‘Lloraras’와 ‘Danger’라는 라틴음악과 힙합곡을 테마송으로 정했다. 스미스(SK)도 메이저리그 애틀랜타의 치퍼 존스가 선택한 ‘오지 오스본’의 ‘Crazy Train’으로 흥을 올리고 있는 반면 브리또(삼성)는 외국선수로는 드물게 국내 그룹인 ‘YG패밀리’의 곡을 선호해 눈길을 끈다.
몇몇 선수의 테마송은 남다른 사연을 안고 있기도 하다. 조성환(롯데)은 부인과 연애하던 시절 곧잘 함께 불렀던 ‘칵테일 사랑’(마로니에)을 지금까지 고수하고 있고 홍성흔(두산)은 지난해 후반기 팀 성적이 부진하자 승리를 기원하는 의미로 선택한 ‘V.I.C.T.O.R.Y’(바이브)에 변함 없는 애정을 보이고 있다.
다소 엉뚱한(?) 테마송도 팬들의 귀를 즐겁게 해준다. 주형광과 노승욱(이상 롯데)은 만화주제가 ‘캔디’와 ‘트로트 메들리’를, 채병용과 조원우(이상 SK)는 이제 고전이 된 ‘Billie Jean’(마이클잭슨)과 ‘어젯밤 이야기’(소방차)를, 그리고 이진영은 ‘맥가이버’ 주제가로 분위기를 띄운다.
한편 두산과 현대가 벌이는 ‘원조 테마송 구단’ 논쟁도 팽팽하다. 90년대에 처음으로 팡파레 문화를 테마송으로 바꾸었다는 두산과 1∼9번 타자를 비롯해 구원투수에 이르기까지 진정한 테마송 문화를 정착시켰다는 현대의 자존심 대결은 쉽게 결론 나지 않을 전망이다. 현재 기아, 한화, LG를 제외한 5개 구단이 테마송으로 또다른 장내 대결을 펼치고 있다.
김남용 스포츠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