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관우의 별명은 ‘시리우스’다. 시리우스는 큰개 자리의 1등성으로 가장 밝은 별 중 하나. 그의 팬 들이‘축구계의 가장 밝은 별’이 되길 바라는 마음 을 담아 붙였다고 한다. 사진 =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프로 데뷔 4년 동안 수술만 다섯 차례. 발목이 4번, 무릎이 1번이었다고 하니 이 긴 세월의 대부분을 수술과 재활로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고통스런 시간을 견디고 올 시즌 화려한 재기를 알리며 예전의 인기와 기량을 한껏 과시하고 있다.
‘시리우스’ 이관우(25·대전). 오래 전부터 인연을 맺어온 기자가 술잔을 내려놓을 때마다 미안함을 나타내자 그는 “그때 오셨더라면 안 만났을 것”이라며 오히려 이쪽을 위로한다.
거듭된 부상에다 교통사고, 연이은 대표팀 탈락 등 나락으로 떨어지는 고비 때마다 오뚝이처럼 다시 그라운드 위에 우뚝 서곤 했던 이관우인지라 자연 할 얘기도, 들을 말도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시즌중. 그와의 ‘취중토크’는 삼겹살에 소주 한 잔을 놓고 기분에 취하는 데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저도 실감이 안났어요. 제가 어떻게 올스타 인기투표에서 1위를 차지할 수 있겠어요. 잘나가는 선수가 한두 명이 아닌데. 그런데 진짜더라고요.”
이관우는 지난 3일 발표된 올스타 중간투표에서 1위를 차지한 사실이 여간 뿌듯한 게 아닌 모양이다. 말을 하는 얼굴에 미소가 한가득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올스타전에 대한 남다른 사연이 담겨 있었다.
“데뷔 첫 해와 그 이듬해에도 뽑혔지만 부상 때문에 올스타전에 출전을 못했어요. 지난해 처음 나갔는데 월드컵 4강 주역들로 인해 전 명함도 못 내밀었죠. 그때처럼 제가 작아 보이기는 정말 처음이었어요.”
이관우는 월드컵 스타들을 보러 몰려든 여학생 팬들 때문에 호텔 밖으로 나가지도 못했다고 한다. 같은 소속팀의 김은중과 한방을 쓰면서 식사도 따로 시켜 먹을 정도였다.
“올스타전을 앞두고 합숙하는 3일 동안 월드컵 스타들과는 떨어져 다녔어요. 특히 절친했던 (김)남일이 근처엔 가지도 않았죠. 한마디로 ‘쪽팔렸던’ 거예요. 그때 생각하면 제가 너무 바보 같아요. 굳이 그럴 필요까진 없었는데.”
부상이 거듭되다보니 태극마크를 다는 일도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웠다. 몸도, 기회도, 운도 이관우와 인연을 맺지 못했다. 히딩크 감독 부임 초기 대표팀 명단에 이름을 올릴 뻔하다가 ‘체력이 안된다’는 이유로 탈락했고 올해 쿠엘류 감독의 호출을 받고 밤잠을 설치며 가슴을 태웠지만 결국 최종 엔트리에 올라가지 못했다.
“날짜도 기억해요. 5월12일부터 파주에서 국내파 선수들을 대상으로 2박3일간 소집을 했었거든요. 모처럼 만에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진통제 맞아가며 90분 동안 열심히 뛰어다녔어요. 유럽 감독들 스타일에 맞춰보려고 했던 거죠. 그래도 안되더라고요.”
‘쿠엘류호’에서조차 승선 기회를 잡지 못해 속이 상했지만 더욱 상처를 받은 사람은 6년째 사귀어온 여자친구였다. 소집을 마치고 같은 팀 소속인 김은중과 함께 곧바로 대전으로 내려온 이관우는 “관우야, 너 이번에도 떨어졌다”며 울먹이는 여자친구의 전화를 받고 자신도 눈물을 삼켰다고 한다. 여자친구가 너무 상심이 큰 것 같아 짐짓 태연한 척했지만 나름대로 기대를 걸었던 터라 실망감도 컸던 것이다.
“‘취중토크’인데 제가 술을 안 마시는 바람에 너무 분위기가 ‘싸~’ 하네요. 이제 부상, 이런 칙칙한 얘긴 하지 말아요. 아 참, 아까 올스타전 투표 때 팬들을 동원한 거 아니냐고 물어보셨죠? 절대로 팬들한테 강요하진 않았습니다. ‘추접한’ 놈 될까봐. 그래도 친한 팬들한테는 우스갯소리로 ‘오빠 이번에 일등 한 번 해보자’고는 얘기했죠. 하하.”
이관우는 ‘동대문표’ 의류 브랜드의 비공식 전속 모델이다. 친한 친구가 동대문 의류 회사에 다니는데 모델을 해주는 대신 평생 옷을 협찬 받기로 한 것. 자신보다 연봉이 적은 선수가 명품으로 한껏 치장하고 다니는 걸 보면 가끔 유혹을 느끼기도 하지만 친구를 생각하면 다른 옷을 입을 수가 없다는 ‘의리파’ 사나이이기도 하다.
“지난 연말 한양대 동문회에서 이회택 감독(전남)을 뵙게 됐어요. 절 부르시더니 이렇게 물으시더군요. ‘부상 위험이 있더라도 골을 넣을 수 있다면 넣겠냐’는 내용이었어요. 전 당연히 골을 넣겠다고 말씀 드렸죠. 그랬더니 ‘정말 어리석은 놈이다. 어떻게 골 한 개를 네 인생과 맞바꿀 수 있느냐’며 야단을 치시더군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괜한 욕심에 부상을 자초했던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거든요. 이젠 진정한 의미에서 몸을 아끼려고 해요. ‘무대포 축구’에서 탈피하려는 거죠.”
프로 4년차지만 그라운드를 밟은 시간을 따져보면 1년 6개월 정도밖에 안된다. 지금까지 한 시즌 최고의 출장 기록이 19경기인데 올 시즌은 7월9일 현재 17경기째라니 이관우는 절로 신바람 날 지경이다.
토요일(12일) 경기를 앞두고 있어 소주 한 잔을 홀짝거리는 걸로 입맛을 다시는 이관우 앞에서 기자와 사진 기자가 연신 잔을 부딪히자 이관우는 자신이 사진을 찍어야 하는 거 아니냐며 너스레를 떤다. 젊을 때(?)는 소주 4병을 마셔도 끄떡도 하지 않았다는 확인 불가능한 과거사를 털어놓으며 취중 상태인 기자들을 바라보는 이관우가 갑자기 이런 말을 꺼내 가슴이 젖어들게 만들었다.
“전 세상이 너무 아름다워요. 좋아하는 축구를 할 수도 있고 이렇게 소주도 마실 수 있고 또 친구도 만날 수 있고요. 그래서 전 세상이 천국 같아요. 야, 이거 너무 시적으로 나가는데. … 올라갈 만하면 내려오고 또 힘들게 올라가면 또 내려오고, 그래서 누군 ‘반쪽 선수’라며 손가락질했지만 전 그래도 지금이 너무 행복해요. 그래서 감사해요. 제 팬들한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