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훈련으로 다져진 선수들의 멋진 입수동작과 달리 왕초보 의 얼굴엔 긴장한 표정이 역력하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그런데 왜 이럴까. 풍부한(?) 소개팅·미팅 경험을 자랑하는 ‘꾼’이 이날만큼은 영락없는 ‘숙맥’이다. 아리따운 인어들의 우아한 자태에 시선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몰라 진땀을 빼는 모습이라니….
오늘의 임무는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 ‘1일 선수’. 탈의실 거울을 보니 왜 이리 몸매가 볼품이 없을까?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수십 차례 팔굽혀펴기를 한 후 어설프게 두 손으로 몸을 가리고 수영장으로 향했다. 그래도 9명의 인어들은 환한 미소를 보내며 반겨주니 이 정도면 무릉도원이 따로 없는 듯싶다. 그-러-나….
오후 4시 본격적인 훈련이다. 트레이닝복을 입은 ‘인어’들이 스트레칭으로 몸을 푼다. 말이 스트레칭이지 ‘왕초보’에게는 ‘유격 체조’나 다름없다. 180도로 다리를 뻗은 채 고즈넉하게 ‘멋’을 내는 인어들을 따라하다 양쪽 허벅지에 경련이 일어난다.
훈련량은 상상을 초월했다. 여타 종목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 새벽훈련(오전 5시30분∼8시), 웨이트트레이닝(오후 2시∼4시)에 이어 곧바로 오후훈련(4시∼8시30분) 스케줄이 빡빡하게 짜여져 있다. 하루 24시간 중 9시간을 꼬박 훈련에 몰두하는 셈이다.
스트레칭이 끝나기가 무섭게 ‘인어’들이 물 속으로 뛰어든다. 그 모습에 넋을 잃고 동공이 흐려진 ‘초보 선수’를 이현애 코치가 살짝 민다. 물로 ‘텀벙’. 수영에 ‘수’자도 모르는 ‘왕초보’는 물만 잔뜩 들이키며 허우적대고, ‘썰렁’하던 수영장에 잠시나마 까르르 웃음이 감돈다.
에그비터(eggbeater·상체를 세우고 다리를 흔들며 앞으로 전진하는 모션), 발러레그(ballerleg·한쪽 다리를 직각으로 뻗어 올리는 모션) 등 기본 동작을 연습하던 ‘인어’들이 본격적으로 기술 훈련에 돌입한다. 김영채 감독과 이 코치가 마이크를 손에 든 채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유심히 관찰한다. 김민정·손호경 두 고참도 물 밖으로 나와 후배들을 독려했다.
7명의 인어들은 두 다리를 모아 번쩍 들었다 입수시키는 ‘부스트’와 양다리를 엇갈린 방향으로 힘차게 펴는 ‘스플릿’ 등 고난이도 기술을 리듬에 맞춰 선보였다. 감탄사를 연발하며 박수를 치려던 ‘왕초보’는 ‘마귀할멈’으로 통하는 김 감독과 이 코치의 칼날 같은 호통 소리에 가슴을 연방 쓸어 내려야 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김민정이 “발끝 모양이나 물로 들어가는 다리의 높이가 틀려도 감점 요인”이라고 살짝 귀띔해준다.
물 속에서 땀이 날 만큼 고삐를 단단히 죄는 이유가 따로 있었다. 2004아테네올림픽 출전 티켓이 걸린 국제대회가 내년 4월에 열리기 때문. 아직 8개월의 여유가 있는 듯싶지만 “한시라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는 김 감독이다.
“김민정·손호경(이상 이화여대4)이 한 조를 이루는 듀엣은 세계랭킹 10∼11위권에 올라와 있어 24강이 겨루는 본선 진출이 유력해요. 하지만 단체가 문제예요. 개최국 그리스와 7개국만이 나설 수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티켓 확보가 쉽지 않죠.”
수영연맹의 재정이 넉넉하지 못한 탓에 대표팀은 지난 3년여 동안 국제 대회에 제대로 출전하지 못했다. 김 감독은 이로 인해 판정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팀의 인지도나 지명도가 떨어져 고전이 예상된다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국제적인 흐름을 쫓아가지 못해 걱정입니다. 현재로선 상위팀들의 비디오를 분석하는 게 전부죠. 유명 코치들을 초빙한다든가 러시아 등 세계 최강팀들과 합동 훈련을 한다는 것 자체가 현실적으로 힘든 상황이에요.”
▲ 멋진 팀워크를 선보인 싱크로 선수단. | ||
당연히 연애는 꿈도 못 꾼다고. 빼어난 외모와 몸매를 갖춘 ‘퀸카’들이지만 9명 모두 남자 친구가 없다. 여기저기서 들어오는 소개팅 제의도 못 들은 체해야 하는 신세란다.
숙소 생활에서 오는 외로움과 함께 비인기 종목의 설움 역시 ‘인어’들을 피해가지는 않는다. 김민정은 “관중 없이 부모님만 지켜보는 앞에서 연기를 펼쳐야 하는 심정은 누구도 이해하지 못한다고”며 아쉬움을 전한다.
훈련 막간 ‘자투리 시간’에 대표팀 막내인 김희진(정신여고2)와 박현선(둔촌고1)을 부르니 활짝 웃으며 물 밖으로 나온다. 방금까지도 감독과 코치의 질책에 물에서 눈물을 흘렸다는 희진과 현선은 마치 친오빠라도 만난 듯 쉴 새 없이 서로 질세라 이야기꽃을 피워낸다. 잠깐의 휴식이 그리도 기쁜가 보다. ‘코집게’ 때문에 빨갛게 달아오른 코를 만지작거리며 묻고 싶은 것 있으면 다 물어보라는 두 ‘인어’가 마냥 귀엽다.
“첫 대표팀 합숙이고, 또한 막내라 불편할 텐데”라고 물었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고참 언니들이 가끔씩 보내주는 편지가 큰 힘이 된다며 자랑을 늘어놓는다. 외박을 나가는 주말이 무척이나 기다려진다고 한다. 이미 월요일 직전 이틀간의 계획을 철두철미하게 세웠다며 ‘호호’ 웃는다.
저녁 식사시간을 훌쩍 넘긴 오후 8시30분이 돼서야 하루 훈련이 종료됐다. 샤워를 끝내고 긴 머리를 휘날리며 식당으로 향하는 ‘인어’들이 그제야 긴장을 풀고 재잘재잘 담소를 나눈다. 아무도 없는 식당 한 쪽에 싸늘히 식은 밥과 국이 덩그러니 차려진 식탁. 하지만 ‘인어들의 저녁 식사’는 유쾌하고 따뜻했다.
[싱크로 이것이 궁금하다]
Q:헤어스타일을 고정시키는 제품이 따로 있나.
A:무스도 아니고 젤도 아니다. 선수들은 경기에 나서기 전에 더운물에 푼 ‘젤라틴’을 머리카락에 발라 헤어스타일을 고정시킨다.
Q:물 속에서도 음악소리가 들리나.
A:풀 내부에 스피커가 설치돼 있어 음악이나 마이크 소리를 들을 수 있다.
Q:선수 숙소에는 침대만 있다는데.
A:현재 태릉선수촌 수중 발레 선수단 숙소에는 TV, 컴퓨터 등이 없다. 훈련에만 열중하기 위해서다. 선수들은 주로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으며 휴식을 취한다.
Q:잔 부상이 많다던데.
A: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대부분 선수들이 잔 부상에 시달리고 있다. 물 속에서 다리를 계속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골반, 허벅지, 종아리, 발목 등에 자주 이상이 생긴다.
Q:특수 화장품을 쓰나.
A:특수 화장품을 쓰지는 않는다. 최근 대거 출시된 물에 지워지지 않는 화장품을 두껍고 진하게 바른다.
Q:경기 전 수영복을 위로 끌어올린다는데.
A:팔 다리가 길면 동작이 파워풀해 보인다. 유럽 선수들보다 상대적으로 팔, 다리 길이가 짧은 한국 선수들은 경기 직전 수영복 끝을 돌돌 말아 허리선 끝까지 올리는 변칙 전술(?)을 구사한다.
Q:체중에 민감하다던데.
A:체중 관리가 엄격하다. 체중이 늘어나면 몸매가 흐트러지고 피부의 탄력이 줄어들기 때문. 하루에 두 차례 무게를 체크해 기준보다 오버하면 감독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훈련량이 워낙 많은 탓에 음식 조절을 따로 하지는 않지만 기름기가 많은 인스턴트 식품의 섭취는 금지한다.
유재영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