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구가 끝나고 잠시 경기장을 빠져나갔던 이들 일행은 게임이 종반에 접어들자 다시 모습을 드러냈고 한희원은 기자회견 직전 소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정말 별다른 느낌이 없어요. 설렘도 없고. 평소와 똑같은데요”라며 애써 여유를 가지려고 노력했다.
“희원이가 지금까지 한번도 남자를 사귀어 본 경험이 없어요. (손)혁이가 처음이자 마지막 남자가 된 셈인데 엄마 입장에서 좀 걱정이 되네요. ”한희원의 어머니 정경씨는 딸의 기자회견을 기다리며 연애 경험이 없는 한희원의 ‘프로필’을 내심 안타까워했다. “정말 의외였어요. 혁이랑 희원이가 결혼하게 될 줄 상상도 못했거든요. 프로야구선수와 프로골퍼가 결혼하는 게 처음이라면서요? 잘 살아야죠.”
정씨의 말을 듣고 있던 손혁의 어머니 김정희씨는 “딸이 없었는데 예쁜 딸을 얻은 기분”이라는 소감을 전하면서 “아직 희원이랑 라운딩을 해보지 못했어요.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프로골퍼 며느리랑 동반 라운딩 해보는 게 소원”이라는 재미있는 바람을 전했다. 김씨는 자신의 골프 실력을 ‘간신히’ 보기플레이어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손혁과 한희원은 ‘오는 12월20일 오후 5시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린다’고 발표하면서 이미 결혼 날짜를 지난 5월에 잡아놓고도 시즌 중이라 어쩔 수 없이 발표를 늦췄다고 밝혔다. 다음날 손혁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희원이가 5월에 잠시 귀국했었는데 그때 양가 부모가 만나 날짜를 정했다”면서 “본의 아니게 주위 사람들한테 거짓말을 하게 돼 미안하다”는 속사정을 설명했다.
98년 한희원의 부친 한영관씨의 소개로 알게 된 손혁-한희원 커플은 처음엔 운동 선후배 사이로 가벼운 만남을 지속하다가 손혁이 지난 2000년 당시 LG에서 기아(당시 해태)로의 트레이드를 거부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을 때 우연히 미국 한 지인의 집에서 재회한 후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손혁은 지난 ‘취중토크’(<일요신문> 585호) 때 기자를 만난 자리에서 한희원에게 첫 번째 프러포즈에서 퇴짜 맞고 6개월간 방황하다 2001년 크리스마스 직전에 두 번째 프러포즈에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처음으로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 14일 잠실구장에서 시구 후 손을 흔들어 주는 한희원과 손혁. 둘은12월20일 혼례를 올릴 예정이다 | ||
두 사람은 결혼을 약속하고 크리스마스 이브날 시내의 한 극장을 찾아갔다고 한다. 다정히 손을 잡고 영화를 관람한 뒤 일어서려는데 바로 앞좌석의 한 남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낯이 익다고 생각한 순간, “아니 손혁, 한희원씨가 여기 웬일이세요?”라는 뜻밖의 인사가 돌아왔다. 깜짝 놀라며 말을 건넨 그 남자는 모 스포츠신문 야구 담당 기자였던 것.
“당시엔 친한 오누이 사이라고 얼버무렸다가 안심이 안돼 전화를 걸어서 잘 좀 봐달라고 사정했어요. 교제 사실이 들통 날 경우 서로 힘들어질 것 같아서 기자분한테 인간적으로 호소를 했죠. 다행히 우리가 친한 오누이 사이라는 ‘약한’ 내용의 기사가 나갔는데 그 일이 있은 후론 행동거지를 아주 조심했어요.”
한희원은 기자회견장에서 LPGA에서 활동하는 한국선수 중 가장 먼저 유부녀 타이틀(펄 신은 제외)을 달게 된 데 대해 다부진 속내를 비쳤다.
“골프는 아버지 권유로 시작했다가 지금 이 자리에까지 오게 됐지만 결혼은 순전 제가 선택한 제 인생입니다. 물론 주위 선후배들 중에 결혼한 골퍼가 거의 없어 제가 더 주목을 받고 있지만 여느 남녀가 만나 결혼하는 거랑 크게 다를 게 없어요. 프로야구와 프로골퍼의 결혼이라고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 않아요.”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내가 가는 길이 험하고 멀지라도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손혁의 휴대폰에 저장된 컬러링 노래처럼 기자회견 뒤 야구장 마운드에서 사진촬영에 응한 두 사람의 얼굴 표정은 ‘행복’ 그 자체였다. “참, 손혁씨 신혼여행지는 정하셨어요?” “아뇨. 아직 고민중인데 둘이서 의견일치는 봤어요. 절대로 비행기 오래 타는 곳으론 가지 말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