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이승엽이 56호 홈런을 쳤다’는 TV 저녁 뉴스를 쳐다보며 맥주잔을 입에 대던 김인식 감독(54)은 “결국 쳤네”라는 짤막한 멘트를 토해내곤 또다시 무표정이 됐다. 이미 두산 감독에선 물러났지만 OB맥주를 고집하는 것도 그렇고, 음식점 술잔에 다른 회사 제품명이 새겨져 있자 사진기자한테 그 이름이 보이지 않도록 촬영해달라고 특별 부탁을 하는 것도 그의 ‘현실’을 실감나지 않게 했다.
2003 정규시즌을 끝으로 9년간의 ‘베어스 사령탑’에서 물러난 김 감독. 마지막 경기가 벌어진 대전 한화전이 끝난 뒤 선수들을 모아 놓고 “너희들과 함께한 지난 9년간의 세월이 나한테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다”는 말로 눈물샘을 자극했던 그는 막상 선수들의 얼굴을 보니까 말이 안 나와 당황했다며 당시의 상황을 떠올렸다.
정규리그 7위라는 초라한 성적표에다 선동열의 두산 감독 영입설이 흘러나오자마 결정을 망설이는 후배를 위해 서둘러 구단측에 퇴임 의사를 밝히는 등 아름답지 못한 현실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기 위해 애를 썼던 탓인지 그의 얼굴은 상당히 지쳐 보였다. 여러 차례 인터뷰를 거절했다가 어렵게 ‘취중토크’ 자리에 나온 그는 기자에게 쉽게 마음의 문을 열지 못했지만 야구 이야기를 꺼내자 김인식 감독다운 멘트로 인터뷰를 이끌어 갔다.
“오늘 새벽까지 과음을 했어.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서 회포를 푼 것까진 좋은데 연신 술이다보니 몸이 죽겠네.” 피곤해 보이는 이유가 따로 있었다. 폭음과 폭주를 즐기진 않지만 한번 술자리에 앉으면 파장이 될 때까지 남아 있는 습관으로 인해 체력이 고갈돼 버린 것. 그래도 젊은 시절에 비하면 요새 술 마시는 횟수나 주량은 명함도 못 내민다는 부연 설명이다.
김 감독은 정규 시즌 후 자신의 미래에 대해 어느 정도는 예견했다고 한다. “프로는 계약이 끝나면 그걸로 그만이야. 재계약 통보가 없는데 마냥 하늘만 보고 있을 순 없잖아. 그래도 평소에 마음의 준비를 해둬서 큰 충격은 없었어. 언젠가는 떠날 자리였으니까.”
지도자 생활로만 16년 세월을 보냈다. 1986년 해태 수석 코치로 프로야구에 발을 들여 놓은 후 쌍방울에서 OB 감독으로 옮겨 앉기 전 2년간의 공백을 제외하곤 줄곧 야구장으로 출퇴근하며 일선에 있을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OB와 두산 감독으로 ‘베어스’ 가족이었던 9년간의 인생이 가장 행복했다고 또다시 되뇌인다.
“올해가 가장 힘든 해였어. 스프링캠프 끝나고 돌아와서 첫 시합을 치를 때부터 시행착오의 연속이었지. 선발 투수가 무너지니까 로테이션 자체가 엉망이 되더라고. 그래도 후반부에 손혁과 키퍼가 제 역할을 해줘 조금은 숨통이 트였어.”
팀 전력이 떨어지다보니 두산의 장기인 ‘막판 뒤집기’가 전혀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고 한다. 가까스로 동점을 만들어 놓으면 상대팀이 도망가는 일이 다반사였고 결국 점수 차를 좁히지 못해 지는 경기가 속출했다는 것.
“모든 게 감독인 내 탓이지 뭐. 그래도 아쉬운 건 투수들이 조금만 뒷받침됐더라면… 그러면 이렇게 허무하게 시즌을 접진 않았을 텐데 말이야.”
김 감독은 2001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할 때의 상황을 떠올렸다. 10승대 투수 1명도 없는 살림살이에서도 박명환, 구자운, 진필중 등이 든든하게 마운드를 지켜줘서 역전에 역전을 거듭한 끝에 정규리그 1위팀 삼성을 잡을 수 있었다.
▲ 힙겹게 우승했던 2001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는 김 감독. 어려운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겪 었을 마음 고생과 이어진 술자리 때문인지 조금 은 지쳐 보였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진하게 울어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82년 동국대 감독 시절을 떠올리며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82년 춘계리그 때 아쉽게 준우승을 했고 마지막 추계리그 때 인하대와 결승전에서 맞붙었어. 반드시 우승을 하겠다고 덤벼들었는데 게임을 유리하게 끌고가다가 막판에 지고 말았지. 잡을 수 있는 경기였는데 아쉽게 놓치는 바람에 운동장 근처에서 혼자 술 먹고 운 적이 있었어. 그때 내가 왜 울었는지 몰라.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울 일은 아니었거든.”
82년 준우승만 두 차례 하다가 83년 춘계리그에서 창단 25년 만에 처음으로 우승했을 때의 일화가 재미있다. 뒤풀이로 나이트클럽에 갔다가 선수와 학교 관계자, 동문들로부터 받은 술잔만 1백50잔 정도가 됐다고. 그 술을 모두 마신 후 혼절했다가 며칠 동안 앓아 누웠다며 호탕하게 웃는다.
김 감독의 이미지는 자상한 아버지상이다. 선수들한테 화를 내거나 싫은 소리를 하지 않고 묵묵히 참고 믿어주며 기다리는 스타일이라 두산뿐 아니라 다른 팀 선수들도 그의 밑에서 선수생활을 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이미지가 언론에 의해 과장(?)됐다고 한다.
“나도 덕아웃이나 라커룸에서 선수들한테 화낸 적이 많아. 경기 중 눈에 띄는 부분이 있을 때는 코치나 선수들한테 그 즉시 야단을 치곤 하지. 물론 의자를 걷어차거나 뭘 때려부순 적은 없지만 심정적으론 그렇게 하고 싶을 때도 많았다고. 기자들이 너무 내 이미지를 좋게 써줘서 어떤 경우엔 이미지 관리하느라 싫은 소리 못할 때도 있었다니까.”
가장 야단 많이 친 선수로는 정수근을 꼽는다. 경기장 안팎에서 행동이 워낙 튀는 탓에 여러 차례 주의를 주며 ‘브레이크 걸기’를 자주 했다고. 특히 귀고리 착용은 김 감독의 눈을 거슬리게 하는 1호였는데 신경통 예방 차원이라는 정수근의 말을 들은 뒤론 더 이상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