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교적 현지에 잘 적응한 것으로 알려진 네덜란 드 에인트호벤의 이영표도 이적 초기엔 문화차 이로 어려움을 겪었다고 털어놨다. | ||
‘빅초이’ 최희섭(23·시카고 커브스)은 “메이저리그는 자유롭다는 이미지가 강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며 “세세한 부분까지 까다로운 제약이 많고 훈련도 오히려 스파르타식”이라고 말했다. 최희섭이 겪은 4년간의 마이너리그 생활은 규제의 연속이었다는 것. 일단 마이너리거는 수염을 기를 수 없고, 염색을 할 수도 없으며 반드시 끈이 있는 신발을 신어야 되는 등 작은 행동에도 엄격한 제약이 뒤따른다고 한다.
최희섭은 “야구 실력은 종이 한 장 차이기 때문에 오히려 인격적인 면에서 눈 밖에 날 경우 메이저리그 승격은 거의 불가능하다”며 “메이저리그에서 인격적으로 나쁜 선수를 보지 못했을 정도로 메이저리그는 야구 실력뿐 아니라 모든 면에서 모범이 되는 최고의 스타들이 모인 곳이라는 인식을 철저히 심어준다”고 설명했다.
‘꾀돌이’ 이영표(25·에인트호벤)는 “한국에서는 감독님이 다가가기 힘든 위치에 있는 분인데 이곳에서는 선수들이 자신의 의견을 당당하게 말하고, 언쟁을 벌이기까지 한다”며 “팀의 자체 훈련에서도 선수들이 서로 부딪히고, 싸우는 것이 실전을 방불케 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훈련이 끝난 뒤에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낸다는 것.
신인에 대한 텃세는 메이저리그에서 공공연히 행해진다. 심판들은 루키에겐 아주 ‘짠’ 판정을 내릴 뿐 아니라 엄격한 룰을 적용한다. 메이저리그가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올 시즌 서재응(뉴욕 메츠·25)이 염주를 차고 등판했다가 부정투구 시비에 몰린 것이나 김병현이 데뷔 첫해인 지난 1999년 오른쪽 어깨에 붙였던 파스가 떨어져 퇴장당한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또한 신인 투수에게는 스트라이크존도 아주 좁게 적용하는 편이다.
신인에 대한 현지 팀 동료들의 텃세는 때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시즌 초반 팀 동료들이 이천수에게 패스를 거의 하지 않았던 이유도 이방인 신인에 대한 텃세가 은연중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런 현지의 ‘통과의례’를 지혜롭게 넘기지 못하면 해외에 뿌리내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유럽 축구무대나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극소수 인종일 수밖에 없는 해외파 한국 선수들은 태생적으로 적지 않은 설움을 당할 수밖에 없다. 백인이나 흑인, 라틴계 선수들은 자기들끼리 잘 뭉치지만 한국 선수들은 주변 그 어디에도 기댈 언덕이 없기 때문이다.
▲ 최근 손가락 파문으로 구설수에 오른 김병현은 애리 조나시절, 언어문제로 인한 의사소통부재로 벌금을 물기도 했다. | ||
현지 국가의 특수한 문화로 인해 혼란을 겪기도 한다. 이을용(안양·27)은 지난해 이슬람 국가인 터키에서 선수생활을 했다. 이을용은 “모든 음식점이 문을 닫아 당황한 적이 있는데 알고 보니 ‘라마단’ 기간이었다”며 “저녁이 돼서야 밥을 사 먹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네덜란드에서 활동하고 있는 송종국 이영표 박지성 ‘3인방’ 역시 오후 6시만 되면 모든 가게들이 문을 닫는 바람에 급히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없어 발을 동동 굴렀던 경험을 갖고 있다. 또 세계에서 성에 가장 개방적인 네덜란드의 화려한(?) 성문화에 낯 뜨거워하기도 했다. 네덜란드에서는 매춘이 합법이고, 곳곳에 섹스숍이 있기 때문에 특히 총각선수들에게는 충격적(?)일 수밖에 없다.
최근 ‘욕설파문’의 장본인이 된 김병현은 ‘문화 갈등의 피해자’이기도 하다. 그가 이전 팀인 애리조나에서 동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던 것은 내성적인 성격 탓도 있지만 사실 언어소통의 문제가 더 컸다. 김병현은 미국진출 첫해에 메이저리그로 승격됐기 때문에 마이너리그에서 차분히 영어를 배울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데뷔 첫해 팀 미팅에서 “자주색 점퍼를 입어라”는 프런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해 혼자 검정색 점퍼를 입고 불펜에 들어갔다가 벌금 25달러를 내기도 했다.
직접 마이너리그를 경험한 뒤 현재는 최희섭의 에이전트를 맡고 있는 이치훈씨는 “한 달 전 더블A에서 백인선수가 메이저리그로 승격됐는데, 운동장에 반바지와 슬리퍼 차림으로 왔다가 다음날 곧바로 마이너리그로 다시 쫓겨갔다”며 “그 선수는 상당 기간 메이저리그에 발을 디딜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 야구선수들이 반바지와 슬리퍼 차림으로 활보하는 것과는 상당히 다른 문화인 셈이다.
안순모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