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일 일본서 코치연수를 마치고 귀국한 선 동열이 인천공항에서 ‘두산행’에 대한 기자들 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그동안 두산과 LG를 순서대로 옮겨가며 ‘선파워’의 위력을 자랑했던 선동열은 감독 자리를 고집하지 않고 삼성과 2년간 투수 코치 계약을 맺으며 김응용 감독 밑으로 들어갔다.
‘호랑이굴’ 태생의 선동열이 ‘사자굴’로 걸어 들어간 사실은 야구팬들은 물론 지난 10월3일 귀국 이후부터 선동열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했던 기자들한테마저 충격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삼성 코치라는 새로운 타이틀을 갖고 현장에 복귀한 선동열이 두산-LG-삼성으로 안착하게 된 과정과 그에 얽힌 미스터리를 추적해 본다.
[ 선동열 삼성행은 예정된 수순? ]
지난 7월 올스타전이 열리기 직전 삼성 양준혁과의 ‘취중토크’를 위해 경산볼파크를 찾았을 때의 일이다. 삼성 프런트의 간부 한 명이 <일요신문>에 소개된 ‘끝없는 감독 영입설, 선동열 직격 인터뷰’를 관심 깊게 읽으며 “선동열씨가 혹시 인터뷰 끝나고 오프 더 레코드로 어느 팀으로 가고 싶다는 얘긴 하지 않았나요?”라고 물었다.
그는 10월께 귀국 예정이라는 기사까지 확인한 뒤에는 “내년 시즌에는 선동열씨의 행보가 전체 야구판을 뒤흔들 것”이라며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흘렸다. 이름을 대면 알 만한 프런트 간부의 관심(?)은 결국 선동열 코치의 삼성행으로 결말이 났다.
[ 두산 감독 염두에 주지도 않았다? ]
10월3일 일본 주니치 드래곤즈에서 코치 연수를 마치고 귀국한 선동열 코치는 현장에 있던 기자들에게 “두산 감독으로 갈 확률은 50%도 되지 않는다”고 힘주어 말했다. 귀국 직전 이미 두산 감독으로 내정되었다는 추측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던 상황이라 기자는 “혹시 결정이 다 났는데 일부러 연막작전을 펴는 게 아니냐”고 물었고 선 코치는 “절대 거짓말이 아니다”며 강하게 부정했다.
인터뷰가 끝난 뒤 기자들은 사담을 나누며 선 코치에게 “돈 없는 두산이 선 위원의 조건을 들어줄 리가 만무하다”고 조언(?)을 했고 이야기를 듣던 선 코치는 알 듯 말 듯한 웃음을 흘리며 “사실은 다른 구단에서도 영입 제의가 왔었다”고 흘렸다.
두산의 내부사정을 잘 알고 있는 한 야구계 인사는 “선동열 코치도 두산이 자신의 조건을 들어줄 만한 능력이 없다는 점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면서 “‘선동열과 이미 얘기가 끝났다’는 박용오 총재의 이야기만 믿고 협상에 나섰던 경창호 사장만 우스운 꼴이 됐다. 선 코치 자신도 두산 감독으로 갈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을 어느 정도는 예상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 LG행 '결정' 6시간 만에 뒤집어 ]
선 코치의 내년 시즌 ‘현장 복귀설’이 흘러나올 때마다 가장 유력하게 거론된 팀은 LG였다. 두산과의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터진 ‘LG의 1년 후 감독 보장안 제의’는 그런 추측을 기정사실화하기에 충분했다. 실제로 선 코치는 지난 11일 낮 12시 LG 유성민 단장과 만난 자리에서도 거의 수락할 태도를 보였고 유 단장도 선 코치와 만난 이후 이광환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다 끝났다. (선 코치를) 데리고 오기로 했다”며 LG행을 기정사실화했다는 후문이다. 그런데 선 코치는 그날 저녁 6시 시내 모처에서 삼성의 신필렬 사장과 김응용 감독을 만났고 밀담 끝에 그 자리에서 2년간의 삼성 코치직 제안을 전격 수락했다.
이에 대해 선 코치의 삼성행을 밀접하게 취재했던 스포츠지의 한 야구 담당 기자는 “선 코치의 LG행 소문으로 가장 힘들었던 사람은 이광환 감독이었다. 11일 오전까지도 자진 사퇴를 생각했을 정도”라며 “선 코치도 이런 부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LG행을 부담스러워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 김응용, 왜 선동열에 손 내밀었나 ]
이 부분에 대한 대답은 한마디로 김응용 감독의 ‘물타기’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김 감독 입장에선 선 코치를 데려옴으로써 준플레이오프 탈락에 대한 책임을 어느 정도 희석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었고 김 감독이 선 코치한테 전화를 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알려진 한국야구위원회(KBO)의 고위 관계자의 ‘중재’도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후문.
선 코치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안고 LG행을 택하기보다 스승이 내민 손을 잡음으로써 삼성행 탑승을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유도했지만 후유증이 없는 게 아니다. 선 코치의 갈짓자 행보로 상처를 받은 야구 관계자들이 한두 명이 아니기 때문.
두산, LG 구단 관계자들은 물론 ‘선동열 사단’으로 명명된 몇몇 현역 코치들이 당장 소속 팀에서 잘릴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그들은 현재 삼성 코치로도 들어갈 수가 없어 내년 시즌 일자리마저 불투명한 상태. 방법은 있다. 선동열 코치의 코치 계약이 끝나는 2년 후를 기다리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