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이야기를 해볼게요. 2001년 5월, 컨페더레이션스컵대회에서 프랑스와 경기를 가졌던 상황, 혹시 기억나세요? 그때 우리팀은 프랑스에 0-5로 허무하게 지고 말았잖아요. 솔직히 경기 전부터 걱정이 많았어요. 워낙 강팀이라 선수들 모두 긴장한 분위기가 역력했죠. 사실 앙리, 지단 등 이름만 들어도 지레 겁을 먹게 하는 스타 플레이어가 어디 한둘입니까? 하지만 히딩크 감독은 주눅들지 말고 자신있게 상대하라고 주문하시더라고요.
급기야 경기는 시작됐고 초반부터 프랑스의 파상 공격으로 우리는 어떻게 손을 써볼 틈도 없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처음엔 상대의 득점에 대해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마음먹은 대로 몸이 움직여주질 않더라고요. 솔직히 그때 무슨 생각이 있었겠어요. 정신이 하나도 없었던 거죠. 프랑스와의 경기는 육체보다는 정신적으로 완패한 경기였습니다. 월드컵을 앞두고 벌어진 빅 매치에서 ‘오대빵’이라는 결과는 선수들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나 히딩크 감독님과 선배들이 침체된 선수단 분위기를 잘 잡아 주셨어요. 하루 빨리 ‘악몽의 경기’를 잊게끔 여러 가지 장치들을 마련하셨고 다음 시합에서 새롭게 전열을 가다듬고 최선을 다하자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됐었죠. 그 이후부터 멕시코, 스코틀랜드, 잉글랜드 등과의 평가전에서 좋은 내용의 경기를 펼쳤다는 건 이미 다 아시는 사실이고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어느 팀이나 시련의 나날은 있게 마련이라는 겁니다. 지금 쿠엘류 감독님이 이끄는 대표팀에 원색적인 비난의 화살을 보내는 것보다는 이성적인 판단과 잣대로 대표팀을 평가하고 앞으로의 과제를 어떻게 해결해 가야 할지에 대한 조언이 더 필요할 것 같아요. 우리보다 몇 수 아래의 팀을 상대하다보면 선수 입장에선 약간 ‘여유’가 생길 수밖에 없어요. 혹시 알아요? 이번 일이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지.
그리고 박지성에 대한 걱정도 많다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 최근 몇 년간 지금처럼 어려운 시기는 없었던 것 같아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생활하고 있어요. 아직까지 시간은 있고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거든요. ‘박지성의 네덜란드 일기’를 통해 좋은 소식을 많이 전해 드리고 싶었는데 그렇지 못해서 항상 미안한 마음이에요. 여러분,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실 수 있죠?
10월23일 에인트호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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