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7월17일 열린 프로야구 올스타전에 나온노장감독들. 왼쪽부터 김인식 당시 두산 감독, 김응용 삼성감독, 강병철 SK 감독, 백인천 롯데 감독. | ||
지난 시즌만 해도 백인천(61·롯데) 김인식(56·두산) 이광환(55·LG) 등 50대 고참 감독들과 40대 감독들이 조화를 이루는 형세였다. 하지만 이제는 ‘40대 천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순 살이 넘은 김응용 감독(삼성 라이온즈)을 제외하면 한때 대표적인 젊은 감독으로 불리던 김재박 감독(현대 유니콘스)이 이제 49세로 프로야구 사령탑 가운데 ‘최고참’이다. 김응용 감독도 내년이면 계약기간이 끝나 선동열 수석코치(40)에게 자리를 물려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내년 시즌을 대비해 사령탑 정비를 모두 마친 8개 구단 가운데 가장 젊은 사령탑은 LG 트윈스 이순철 감독과 롯데 자이언츠 양상문 감독. 두 사람은 42세 동갑내기다. SK 돌풍을 이끈 조범현 감독(43)이 이들보다 한 살 위이고, 두산 베어스의 신임 김경문 감독과 기아 타이거즈 김성한 감독이 45세다. 한화 이글스 유승안 감독은 48세.
이 같은 ‘젊은 바람’에 대해 야구계에서는 ‘대세’임을 인정하면서도 불안한 시선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40대 젊은 감독들에게 자의 반 타의 반 자리를 내주고, 뒤로 물러난 고참 감독들은 더욱 착잡하다. 이들 감독들은 ‘세대교체’ 흐름에는 동의를 하면서도 구단의 맹목적인 젊은 감독 선호에는 적지 않은 불만을 표시했다. 또한 신·구세대 야구인 사이에 균열이 생기는 것으로 비춰지거나, 후배 감독들이 한꺼번에 경쟁관계에 놓이게 되면서 갈등 상황이 연출될 것도 염려했다.
김인식 전 두산 감독은 구단이 선동열과 접촉하는 것을 알고는 “후배에게 길을 터 줘야 한다”며 스스로 자리를 내줘, ‘아름다운 퇴진’이라는 찬사를 받았던 인물. 그러나 최근의 상황에 대해 김 전 감독은 “이번에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에서 플로리다 말린스를 우승시킨 잭 매키언 감독도 72세 아니냐”는 말로 속내를 털어놓았다.
김 전 감독은 “우리들 역시 40대 초반에 프로야구 감독을 했다. 후배들이 능히 해낼 것으로 보지만 경험 있는 사람을 찾을 때가 있고, 힘을 바탕으로 한 젊은 사람을 찾을 때가 있다”며 “어느 쪽이 전적으로 옳다고는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난 1998년에도 서정환 천보성 김용희 감독 등 40대들이 득세를 한 적이 있지만 결과는 기대와 달랐다”며 “중요한 것은 젊은 감독들이 얼마나 실전경험을 잘 쌓느냐는 점”이라고 충고했다. 김 전 감독은 “감독 그만두고 나서 친구들 만나고, 한가한 시간을 맘껏 즐기고 있다”고 최근의 근황도 덧붙였다.
2002년 SK 와이번스 감독을 끝으로 물러난 강병철 전 감독(57)은 “젊은 감독들이 희생양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강 전 감독은 “그 친구들도 프로야구를 선수부터 코칭스태프까지 경험했고, 40대면 충분히 그 일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유행’처럼 (일률적으로) 바뀌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기면 오만 찬사가 다 나오지만, 지면 역적이 되는 승리지상주의가 판치는 게 우리나라 프로야구인데, 내년 시즌에 5∼8위를 하는 팀 감독들은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
강 전 감독은 “우리 프로야구는 감독 능력과는 상관없이 팀별 능력에서 분명히 차이가 나고 있다”며 “좋은 성적을 내 성공하는 젊은 감독은 보람을 느끼겠지만 그렇지 못한 감독이 구단에 의해 희생양이 되고, 젊은 나이에 좌절할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삼성 롯데 태평양(현대의 전신)의 사령탑을 맡았던 백전노장 박영길 전 감독(61)은 최근의 상황에 대해 “내가 말하는 것을 그대로 써줄 것”을 요구하며 노골적으로 구단측을 비난했다.
박 전 감독은 “야구를 전혀 모르는 구단 사장이나 단장들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며 “그들이 현장 실권을 쥐고 입맛대로 감독을 갈아치우는 것은 (조금 아프다고) 아편 맞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SK가 좋은 성적을 내니까 구단들이 너도나도 젊은 감독으로 바꾸는데, SK는 3년 동안 착실히 준비했으니까 올해 결실을 본 것”이라며 “전반적으로 너무 빠르게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다”고 걱정했다.
박 전 감독은 “우리도 40대 초반에 감독을 맡았지만 그때는 프로야구 초창기로 지금과는 상황이 달랐다”며 “프로야구가 20년이 넘었으니 구단이 이제는 좋은 사람을 구해서 6∼7년 꾸준히 지원해주고, 팀을 일관되게 키우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안순모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