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0기 야구심판학교의 참가자들(윗쪽). “스뚜~라이크”를 외치는 기자의 모습이 영 어색하다.(아랫쪽)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
지난 11월22일 서울고등학교 운동장에서 울려퍼진 예비심판들의 함성이다. 한국야구위원회(KBO)에서 주관하는 제10기 심판학교의 실기 수업은 올 겨울 들어 가장 춥다는 칼바람 속에서 시작됐지만 현장 분위기는 시베리아성 한파를 무색케 할 만큼 엄청난 열기로 후끈거렸다. 구호 하나하나에 힘이 들어가고 제스처 하나도 그냥 이뤄지는 것은 없었다.
심판들의 세계를 조금이라도 밀착 체험해 보고 싶어 ‘1일 예비 심판원’으로 나선 기자는 나무토막처럼 뻣뻣한 신체적인 조건으로 인해 심판 조교로부터 수차례 지적을 당하면서도 ‘스뚜∼라이크’를 외치고 싶은 일념 하에 갖은 구박(?)을 감내했다. ‘야구장의 포청천’ 심판이 되기 위해선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그 현장 속으로 들어가보자.
1백50여 명의 예비 심판들은 본격적인 실습을 앞두고 운동장을 세 바퀴 도는 것으로 가볍게 몸을 풀었다. 정면에는 시범을 보이기 위한 프로야구 10명의 심판들이 유격훈련의 조교를 방불케 하는 모습으로 잔뜩 눈에 힘을 주고 서 있었다.
고등학교 조례시간을 끝으로 이별했던 ‘기준’과 ‘체조대형으로 벌려’를 다시 접한 기자는 이때만 해도 전날 혼자 거울 보며 연습했던 ‘비장의 카드’(심판 제스처)를 보여줄 수 있을 거란 기대감으로 한껏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꿈’은 대개 ‘현실’과 동떨어진 법.
4주간의 일정으로 진행되는 심판학교의 첫 실습은 심판의 기본 자세와 파울, 세이프, 아웃 등을 선언(Callup)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어떤 운동을 하더라도 기본 자세, 즉 ‘폼’이 중요하다는 말은 여기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손을 무릎 위에 자연스럽게 올려놓고 약간 구부정하게 숙인 ‘스탠딩 포지션’은 흔히 말하는 기마 자세와 유사했지만 시선은 3∼4m 앞을 보면서 중심을 잡는다는 게 생각보다 쉽지는 않았다.
자세를 취하면서도 폼이 나오지 않는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볼일을 보는 듯한’ 기자의 자세는 말 그대로 ‘똥폼’이었나 보다. 이번 심판학교에 시범조교로 특별 초청된 미국 마이너리그 여성심판 국선경씨(21)가 특별지도에 나섰다.
“시선은 앞으로, 자세는 조금 낮추고. 몸이 너무 뻣뻣하잖아. 앞으로 조금 숙이고.무릎을 굽히면 안된다고 했지. 이런, 이번엔 너무 젖혀졌네.”
옆에서 소프트 터치로 지도하던 국 심판이 안 되겠다 싶었는지 기자의 아킬레스건인 복부를 툭툭 치면서 본격적인 자세 교정에 들어갔다. 10분 정도의 하드 트레이닝을 거치자 엉성한 자세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힙’이 비로소 제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콜 실습은 파울, 세이프, 아웃 순으로 진행됐다. 확성기를 든 이영재 심판이 기본 설명을 마치면 10명의 심판들이 일사분란하게 시범을 선보이는 방식. 그 제스처와 함성이 얼마나 절도가 있는지 마치 공수부대의 태권도 시범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올 정도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대충’이란 말은 용서가 안될 정도로 적극적인 지원자들의 수업태도였다. “야구기자가 꿈인데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싶어서 참가했다”는 대학생 박지현씨(22)는 접수 후 다친 다리 때문에 목발을 짚고서도 4시간의 실습을 모두 소화해냈을 정도. 시범을 보이는 도상훈 심판위원은 “이렇게 교육하면서 심판 역시 훈련하는 셈”이라며 “지원생들 중에서 1차에서 2배수를 선발하는데 2차 해외전훈과 3차 실전 테스트까지 통과하면 심판 자격을 얻을 수 있다”며 분위기가 남다른 이유를 설명했다.
지원자들의 지원 동기는 크게 4가지 정도로 구분된다. KBO 야구심판이 목표인 이들도 있고 이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아마나 사회인 야구심판을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또 야구가 좋아 다양한 경험을 쌓으려는 학생들과 자식을 위해 배워보려는 학부모들도 제법 눈에 띈다.
1시간 수업 후 본격적으로 콜과 제스처 훈련을 병행했다. 단순히 양손을 내미는 ‘파울’ 선언도 손을 내미는 각도와 위치 등이 까다로웠다. 기자가 특히 고생했던 부분은 ‘세이프’. ‘앞으로 나란히’ 하는 자세에서는 주먹을 쥐었다가 옆으로 벌릴 때는 펴고 그리고 다시 팔을 모을 때는 주먹을 순간적으로 쥐어야 하는데 자꾸 헷갈렸던 것.
다행히(?) ‘아웃’과 ‘스트라이크’는 콜만 다를 뿐 큰 동작은 거의 같았다. 요령은 약간 굽히고 있던 몸을 세우며 오른손을 올리면서 문을 두드리는 듯한 모습을 취하는 것인데 모든 동작과 함성이 조화롭게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초보자에게는 그렇게 평범해 보였던 이 제스처도 ‘따로국밥’처럼 제각각이기 일쑤였다.
전날 거울을 보며 그동안 경기장에서 봐왔던, ‘스트라이크 아웃’을 외치는 구심의 현란한(?) 제스처를 연습했던 터라 ‘애드리브’를 가미하면 안 되냐는 질문을 던졌다. 기본도 못 하는 기자의 질문이 웃겼는지 이영재 심판은 “(그건) 심판들 사이에서도 ‘짬밥’이 되어야 하는 거”라며 “일단 기본에 충실하라”는 말로 ‘완전 초짜’ 예비 심판의 발칙한 질문을 그 자리에서 묵사발로 만들었다.
한편 다른 지원자들에 비해 연장자(?)로 보였던 직장인 정이용씨(36) 는 “사회인야구를 하는데 심판이 이렇게 힘든지 몰랐다”며 “앞으로 판정으로 시비 거는 일은 없을 것 같다”고 말해 좌중을 웃기기도 했다. 10여 명이 넘는 여성 지원자들도 눈길을 끌었는데 ‘SK 와이번스’ 팬이라는 김민정씨(29)는 “오로지 야구가 좋아서 참가했다. 하지만 야구를 배울 수 있는 길은 심판학교와 기록원 강습뿐”이라면서 더 많은 기회가 제공되길 바랐다.
김남용 스포츠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