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김판근,신연호 | ||
1983년 멕시코 고원에서 세계를 놀라게 했던 ‘열혈 소년’들은 대부분 어느덧 40대 중년의 나이를 바라보고 있다. 당시 온 국민을 흥분시켰던 18인의 태극전사들 가운데 대부분은 축구지도자 등 축구와 관련된 일을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몇몇은 아예 축구와 인연을 끊은 상태다.
이들은 대회 직후 영웅 대접을 받았지만, 그 뒤 뿔뿔이 흩어지면서 사실상 모임 한 번 갖지 못했다고 한다. 최근 들어서야 몇몇 멤버들을 중심으로 ‘멕시코 4강 모임’ 결성이 추진되고 있을 정도다.
멕시코 4강 신화의 주역은 단연 김종부(39)와 신연호(39)였다. 두 선수는 최전방 투톱 공격수로 나서 상대 골문을 유린했다. 신연호는 멕시코전에서 1골, 우루과이전에서 2골을 넣었고, 김종부는 호주전과 브라질전에서 각각 1골씩을 기록했다. 이들은 최고의 스타선수로 발돋움했지만, 그 뒤의 선수생활은 순탄치 못했다.
김종부는 1986년 멕시코월드컵 불가리아전에서 동점골을 넣어 한국대표팀 최초의 승점(무승부)을 올린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월드컵 직전 프로행을 두고 스카우트 파동에 휩쓸리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는 이 사건 뒤 ‘평범한’ 선수로 전락, 럭키금성 포철 대우 등에서 선수생활을 했지만 그다지 큰 활약을 펼치지 못하다 1994년 은퇴했다. 1997년부터 거제고 감독을 거쳐 현재 동의대 사령탑을 맡고 있다.
▲ 멕시코대회에서 최초의 승점을 올렸던 김종부. 현재는 동의대 사령탑을 맡고 있다. | ||
신연호도 기대만큼 선수생활을 화려하게 꽃피우지 못했다. 국가대표와 프로축구 현대에서 선수생활을 했지만 부상 후유증을 겪다가 1994년 조용히 은퇴했다. 그 뒤 프로축구 전북팀에서 7년간 코치생활을 하다 2001년부터 호남대 감독을 맡고 있다.
당시 철통 같던 골문은 김풍주(40)와 이문영(39)이 번갈아 맡았다. 김풍주는 대회 뒤에도 국가대표 부동의 골키퍼로 활약했고, 국가대표 GK코치 등을 역임하며 지도자 생활을 했다. 현재는 축구협회 골키퍼 전임지도자로 활동중이다. 이문영은 1993년 돌연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것을 계기로 축구와 인연을 끊었다.
당시 김종부 신연호 못지않게 인기을 끌었던 스타 선수가 수비수 김판근(39). 역대 최연소 대표기록(17세)을 갖고 있는 김판근은 그 뒤 대표팀 부동의 수비수로 진가를 알리며 1994년 미국월드컵에도 출전했다. 그는 국내 프로리그 생활을 마치고, 30대 후반의 나이에 호주 세미프로리그에서 선수생활을 마감했으며 현재 현지에서 축구전문학교를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