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씨름협회(회장 신도연)는 내년 일부 경기에서부터 모래판 대신 매트를 깔고, 도복을 착용한 채, 서서 샅바를 잡는 방식으로 경기를 진행키로 했다. 씨름 경기장의 대명사이던 ‘모래판’이 ‘매트’로 바뀌는 것이다.
또한 웃통을 벗고 하던 기존의 경기방식과 달리 유도나 태권도의 도복 같은 복장에 샅바를 부착시킨 씨름용 ‘도복’을 도입하고, 무릎을 꿇고 앉아서 샅바를 깊숙이 잡던 기존의 방식도, 맞서서 샅바를 가볍게 잡는 것으로 변하게 된다. 이밖에 1단에서 10단까지 차별적으로 단증을 부여하는 단증 제도도 도입되며 ‘씨름 도장’도 설립된다.
이 같은 조치는 협회가 침체된 씨름을 부흥시키기 위해 고심 끝에 내놓은 자구책이다. 씨름협회 강현한 부장은 “이미 오래전부터 논의가 돼 왔던 부분이고, 씨름의 국제화와 대중화를 위해서는 불가피한 조치”라며 “시행 초기의 어려움은 있겠지만 협회가 의욕을 갖고 추진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씨름인들의 반발이 만만찮다. 협회의 조치가 “씨름의 전통을 말살한다”며 일선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협회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경남의 한 고등학교 씨름팀 감독은 “1980년대 씨름이 한창 인기가 있을 땐 모래판에서 안하고 매트에서 경기했었느냐?”고 반문하며 “일본의 스모가 복장이나 경기장, 방식에서 전통성을 고수하기 때문에 일본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인기가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씨름인들이 가장 크게 우려하는 부분은 ‘전통성’의 훼손이다. 여기에는 북한 씨름과의 무분별한 연계가 아니냐는 비판적 시각이 담겨 있다. 이번에 협회가 제시한 경기방식의 변화는 사실상 현재의 북한 씨름과 동일한 내용들이다. 매트 위에서 상의를 입고, 서서 샅바를 잡는 북한 씨름과 똑같다는 것. 일부 지도자들은 “협회 지도부가 북한 씨름계와의 협의를 일방적으로 따라가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실제로 협회는 지난 10월 제주에서 열린 민족평화축전에 참가한 북한 씨름계 인사들과 씨름경기 규칙을 ‘통일’했다. 하지만 협회 관계자는 “북한 방식을 일방적으로 따른 것이 아니라 현대적이면서 화끈한 기술씨름으로 볼거리를 만들려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일선 지도자들은 대부분 1983년 프로씨름 출범 이후 선수생활을 했기 때문에 매트 위에서의 경기에 거부감을 가질 뿐이지 그 이전에는 대부분 매트 위에서 경기를 진행했다”고 덧붙였다.
협회의 이번 조치가 나온 과정에 대한 비판도 불거지고 있다. 일선 지도자 등 씨름인들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고 협회가 일방적으로 ‘개혁안’을 내놓았다는 것이다. 물론 협회측은 이사회 등의 논의를 거쳤다고 말하고 있지만 폭넓은 여론수렴과정이 없었던 것이 사실.
이로 인해 프로씨름을 주관하고 있는 한국씨름연맹(총재 이호웅)측과의 관계도 껄끄러워졌다. ‘전통 무술’인 씨름이 아마와 프로에서 그 형태가 전혀 다르게 보여질 것이기 때문이다. 연맹측 관계자는 “민감한 부분이기 때문에 현재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을 수는 없지만 함께 협의안을 마련했으면 좋지 않았겠느냐”며 에둘러 섭섭한 감정을 표시했다.
또한 일각에서는 단증 제도 도입 등이 영리추구를 위한 게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협회가 내년부터 시행키로 한 씨름 단증 제도가 현실성이 없는데도 협회가 영리를 위해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 상당수 일선지도자들의 주장이다. 한 지도자는 “현재도 씨름을 하려는 초등학생들이 거의 없는데 누가 돈을 내면서 도장을 다니고, 심사비를 주고 단증을 따려고 하겠느냐”며 “협회가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말했다.
하지만 협회는 “다른 종목들도 초기에는 이 같은 반발과 어려움이 있었다”며 “단증 제도 도입에 따른 수입은 협회에서 일체 사용하지 않고, 별도 기금으로 적립, 초등학교 씨름 육성 등에 사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과연 모래판에서 이는 파란이 매트 위에서 멈출게 될지 좀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안순모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