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의 인민영웅이라 불리는 리명훈(위)과 뛰어난 기량에도 불구, KBL에서 퇴출당할 뻔했던 안드레 페리. | ||
지난 10월7일 평양에서는 류경정주영체육관 개관 기념 통일농구대회가 열렸다. 이 행사는 SBS가 엄청난 돈을 쏟아부어 평양에서 생중계했다.
이때 발생한 리명훈 관련 비화 하나. 당시 SBS 스포츠국의 한 기자는 세계 최장신 센터로 유명한 리명훈(36·235cm)을 경기에 앞서 인터뷰해야 했다. SBS 독점행사인데 북한의 간판선수인 리명훈을 취재하지 못해서는 안되는 처지였다. 며칠을 따라다니며 마이크와 카메라를 들이밀었지만 리명훈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혔다. 마이크로 목소리를 따는 것은 물론이고 카메라로 촬영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위에서 불호령이 떨어졌고, 결국 그 기자는 ‘눈물작전’을 썼다.
“꼭 인터뷰를 해야 한다. 내 처지를 이해해달라. 한 번만 도와주면 결코 은혜를 잊지 않겠다.” 감동적인 읍소에 결국 리명훈은 인터뷰에 응했다.
하지만 압권은 며칠 후의 사건이었다. 공식행사 중 그 기자가 화장실로 가 ‘볼일’을 보고 있는데 리명훈이 슬쩍 따라왔다. 엄청난 신장 차이를 새삼 실감하며 일을 끝내려는 찰나 그토록 입을 안 열어 속을 썩이던 리명훈이 먼저 말을 건넸다. “저, 개인적으로 80유로(약 10만원·북한에서는 2002년 말부터 달러 대신 유로를 공식화폐로 사용하고 있다)가 필요한데….”
약속은 약속인 터. 기자는 지갑을 열어 리명훈에게 돈으로 ‘결초보은’했다. 결과적으로 북한의 인민 영웅의 인터뷰 비용은 80유로가 된 셈이다.
90년대 아시아 최고의 선수로 활약했던 A선수. 이름을 대면 농구팬이 아니더라도 알 수 있는 스타플레이어다. 한국 여자농구의 아시아제패 및 세계 4강을 이끌어 국제무대에서 명성이 자자했다. 결혼 후에도 선수생활을 계속해 ‘아줌마 파워’를 과시하기도 했다.
A는 지난해 출산으로 은퇴했고, 올해 복귀를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지만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걸출한 기량의 A가 재기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후배들이 격렬히 반대했기 때문이라는 후문이다. A는 워낙 기량이 뛰어나고 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보니 ‘후배들이 벌벌 떨었던 호랑이 선배’였다. 심지어 팀 숙소와 가까운 곳에 신접살림을 차리고, 가끔 남편을 숙소로 불러와 밥을 먹이고, 심지어 후배들에게 살림집 청소까지 시켰다는 악성루머까지 나돌았다.
그래서였을까. 기존 소속팀은 물론이고, 다른 팀들도 팀워크를 해친다는 이유로 A의 영입을 포기했다고 한다.
연말 각 팀의 순위경쟁이 치열한 프로농구에서 가장 큰 화제를 모으고 있는 선수는 용병 안드레 페리(32·197cm)다. 부산 KTF가 부상으로 퇴출시킨 후 12월 복귀를 준비했는데 엉성한 KBL 규정 탓에 대구 오리온스와 서울 삼성이 서로 자기 선수라며 치열한 장외경쟁을 펼쳤기 때문이다(결국 삼성행).
올스타전 덩크슛 콘테스트 1위를 차지하기도 했던 페리는 항상 잡음이 끊이질 않아 ‘KBL의 악동’으로 손색이 없다.
페리는 TG삼보에서 뛰던 2001∼2002시즌 좋은 기량을 펼치고도 통제가 안 된다는 이유로 버림받았다. 특히 2002년 초 발생한 용병들의 마약복용 파문에 연루되면서 대부분의 구단이 2002년 여름 드래프트에서 페리 선발을 꺼렸다. 하지만 구단의 재정난으로 밑질 게 없던 코리아텐더의 이상윤 감독대행이 냉큼 페리를 택했고 2002∼2003시즌 페리는 코리아텐더(현 KTF)의 ‘헝그리 돌풍’을 이끌며 특급용병으로 다시 태어났다.
페리는 2003∼2004시즌도 재계약했지만 이상윤 감독이 부자구단 서울 SK로 가면서 새 감독 추일승으로부터 다시 버림받았다. 상무 사령탑 출신답게 추 감독은 사생활이 난잡한 페리를 ‘아무리 잘해도 그런 선수는 필요 없다’며 내친 것이다.
페리는 부상치료 기간 중 각 구단에 연락을 해 규정된 연봉(월 1만달러)에 웃돈을 주면 열심히 뛰겠다고 제의하기도 했다. 결국 정규리그 3연패를 노리던 대구 오리온스와 데릭 존슨이 고장난 삼성이 페리 영입에 나섰고, 한판 승부를 벌이게 된 것이다.
악동 덩크왕 페리. 어쨌든 그는 2003년 말 다시 KBL로 돌아왔다. 다음엔 무슨 일이 생길까. 또 국보급센터 서장훈과 함께 얼마나 좋은 활약을 펼칠까. 페리 스토리는 2004년까지 이어지게 됐다.
유병철 스포츠투데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