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키복을 벗고 양복을 차려입은 허승욱. 새색시를 서울에 남겨두고 홀로 스키장을 오르내리고 있는 그는 인터뷰를 위해 두 차례나 ‘하산’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스키복을 입고 활강하는 사진으로만 봤던 터라 매니저의 얼굴을 몰랐더라면 누가 허승욱인지 분간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말끔하게 양복을 차려 입고 사람 좋은 얼굴로 활짝 웃으며 기자를 반기는 수수한 모습에선 ‘한국 스키의 제왕’이란 화려한 타이틀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흔히 매스컴에서 비인기 종목으로 치부되는 스키 선수로 10여년간 국가대표 생활을 해온 ‘짬밥’ 때문이었을까. 그는 만만치 않은 내공으로 함박눈 같은 라이프 스토리를 쏟아냈다.
한국에선 더 이상 이룰 게 없어 국가대표에서 은퇴를 했다는 허승욱과의 두 차례에 걸친 ‘취중토크’를 정리해 본다.
허승욱을 처음 만난 건 강남의 유명한 순대집에서였다. 고기보다는 순대를 좋아한다는 취재원의 식성에 따라 순대집을 찾았는데 순대를 통해 얼마나 다양한 요리가 만들어질 수 있는지를 눈으로 확인하며 맛나고 푸짐한 안주 속으로 푹 빠져 들어갔다.
‘술 마시며 인터뷰하는 건 처음’이라는 허승욱의 ‘실체’가 소주 2병이 비워졌을 무렵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의 입을 통해 나오는 선수들 이름이 ‘태릉선수촌’을 방불케 했다. 비록 스키 선수라는 ‘지역구’의 한계는 있지만 스키장을 벗어난 대인관계는 ‘전국구’나 다름없었다. 기자들이 다른 선수의 안부를 허승욱에게 물어볼 만큼 그의 오지랖 넓은 인간관계는 선수들 사이에서 명성이 자자했다.
“박지은이 그렇게 유명해요?”
채워놓기 무섭게 잔을 털던 허승욱이 대뜸 프로골퍼 박지은의 ‘유명세’를 확인하고 나섰다. 박지은과는 몇 다리를 걸쳐 알게 된 이후 편안한 오빠 동생 사이로 지내고 있는데 어느날 박지은이 허승욱의 홈페이지에 가벼운 안부 인사를 올린 후 조회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걸 보면서 새삼 박지은이 얼마나 유명한 선수인지 궁금했다고 한다.
그는 농구 선수 서장훈과 의형제를 맺었을 만큼 절친한 사이다. 서장훈이 유니폼 벗고 가장 마음 놓고 만나는 사람 중 한 명이 허승욱이다. 서장훈의 사생활을 허승욱만큼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없을 정도라고 하니 두 사람의 관계가 얼마나 끈끈한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초반 분위기를 띄우는 차원에서 시작한 허승욱의 주변인 탐방은 스키 이야기로 화제를 옮기면서 가라앉았다.
▲ 허승욱의 경기모습. | ||
“스키 배운 지 얼마 안 돼 전국체전에 나갔는데 2등을 차지했어요. 그 후론 줄곧 정상의 자리를 놓치지 않았죠. 너무 빨리, 그리고 쉽게 1위에 올라섰고 자연스레 자만에 빠지기 시작했어요. 솔직히 어느 대회에선 술이 채 깨지 않은 상태에서 스키를 탔는데도 1등 먹은 적도 있어요. 그러면 안되는 줄 알면서도 라이벌이 없다보니까 어떻게 하든 제 세상이었죠. 만약 라이벌이 있었더라면, 제가 견제할 만한 선수가 1명이라도 있었더라면 지금과는 또 달랐을 거예요.”
허승욱은 ‘우물 안 개구리’ 시절이 더 행복했다고 솔직히 털어놓았다. 국제 대회에 나가 20~30등을 차지하면 더 이상 도전할 마음이 안 생겼다고 한다. 모든 게 허승욱 위주로 흘러갔던 한국에서의 스키 대회가 맞춤복처럼 편했고 또 자신감을 부추겼다는 것.
“요즘엔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따기도 힘들어요. 왜냐하면 중동 국가에서 오스트리아 출신의 선수를 영입해선 귀화시킨 후 자국 선수로 출전시키거든요. 오스트리아 선수들한테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길 수가 없어요. 1년에 10개월 이상 만년설에서 스키를 타는 선수와 겨울에 ‘한철 장사’하는 저와는 비교가 안 되죠. 물론 눈을 찾아 외국으로 전지훈련을 다니지만 출생지의 한계는 노력으로도 해결이 안 된다는 걸 여러 차례 깨달았습니다.”
1987년 14세의 나이로 최연소 스키 국가대표에 발탁된 후 지난 2003년 아오모리 동계아시안게임을 끝으로 대표팀에서 은퇴해 ‘보통 선수’로 돌아오기까지 허승욱은 아시아는 물론 국제대회에서도 코리아의 이름을 알리는 데 톡톡히 제몫을 해냈다. 1986년부터 2002년까지 동계올림픽에 5회 출전했고 동계아시안게임에서 2관왕을 달성했으며 호주 FIS컵, 일본 재팬시리즈 등 국제대회에서도 ‘출신 성분’의 한계를 극복하고 우승을 차지했던 것.
독보적인 스키 국가대표 선수였지만, 또 그 스스로도 자만심이 생겼다고 말했지만 허승욱은 절대로 기본실력만 믿고 놀고 먹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하체의 근육을 발달시키기 위해 주변 사람들 입에서 ‘지겹다’는 소리가 절로 나올 만큼 웨이트 트레이닝을 했고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여자와 가깝게 지내면 운동을 망친다는 아버지의 ‘세뇌 교육’ 덕분에 여자와의 교제는 꿈도 꾸지 않았다고 한다. 담배는 당연히 안 피웠고 술도 대학 2학년 때 처음 마시기 시작했다는 믿기 어려운 그의 과거사를 풀어놓았다.
“아내를 만날 때 처음으로 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느꼈어요. 카페에 들어서는 아내를 보고 첫눈에 반한 뒤 쫓아다녔거든요. 열 번의 데이트 신청 끝에 정말 어렵게 만났는데 정작 제가 스키 선수라는 걸 알고서는 바로 뒤돌아 가버리더라고요. 아마 비전이 없다고 생각한 모양이에요. 결국 결혼에는 성공했지만 아내가 속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뭔가를 보여줘야 할 것 같습니다.”
허승욱과의 두 번째 만남은 지난 8일 시내의 한 횟집에서 이뤄졌다. 허승욱은 이전보다는 훨씬 편안한 표정이 되었고 그동안 숱한 술자리에서 벌어진 다양한 에피소드를 고백하는 바람에 참석자들을 ‘기절’ 직전까지 몰고 갔다.
“예전에 하루는 술을 떡이 되도록 마시고 집에 들어가서 잔다며 잠을 자고 있는데 아침에 눈을 뜨려고 하니까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거예요. 주변이 무척 시끄럽고 강렬한 햇빛 때문에 제대로 눈을 뜰 수가 없었어요. 부스스 몸을 일으켜 세우니 글쎄, 제가 어느 공사판의 스티로폴 위에 누워 있었던 겁니다. 양말도, 구두도 모두 한 짝씩 없어진 상태였고 사람들은 신기한 물건 쳐다보듯이 저에 대해 시선을 거두질 않았죠. 일어설 수가 없었어요. 너무나 창피해서. 그때의 일은 절대로 잊을 수가 없을 것 같아요.”
겨울만 되면 신나는 남자, 허승욱은 태극마크를 벗어 던진 대신 스키의 대중화를 위해 한시적으로 코치 생활을 겸임하기로 했다. 오는 29일부터 2월6일까지 대명스키장에서 MBC스키캠프 강사로 나서며 초보자들에게 신바람 나는 스키를 가르칠 계획이다.
“가장 큰 바람이 있다면 제가 못다 이룬 꿈을 이뤄줄 후배들을 직접 키워보는 거죠. 우리나라 스키가 한번 더 업그레이드될 수 있도록 능력을 펼쳐 보이고 싶어요.”